전염병은 홀로 오지 않았다. 14세기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페스트)는 인구의 3분의 1을 휩쓸어 갔다. 최초 증상이 나타난 후 빠르면 수시간, 수일 내로 사망하는 전염병은 인류를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 죄여오는 공포 속에 누군가는 남을 탓하고, 비난했다. 21세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해외에서는 동양인 폭행 뉴스를, 국내에서는 확진자에 대한 조롱을 흔하게 접한다. 하지만 수백년 전과 달리 인류는 전염병과 싸우는 법을 안다.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그래서 누구나 혐오할 수 있는 세상에서 페스트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고 ‘공동의 선’을 찾아낼 수 있는 희망이 있는 이유다.  <뉴스포스트>는 코로나19 시대 혐오를 넘어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짚어 본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혐오의 대상은 얼굴을 바꿀 뿐이었다. 처음엔 최초로 2차, 3차 감염을 일으킨 3번 확진자였고, 그 다음엔 31번 환자를 비롯한 특정 종교 신도였다. 지난 5월에는 이태원 클럽을 대표하는 ‘젊은이’가 질타의 대상이었지만 8월에는 광화문 집회에 방문한 ‘어르신’이 문제가 됐다. 이제 혐오의 화살은 모두를 향하고 있다.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사회는 ‘누구나 혐오할 수 있는’ 사회가 됐다.

(그래픽=뉴스포스트)
(그래픽=뉴스포스트)

개인에서 사회로 퍼진 혐오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사생활침해 논란은 확산 초기부터 제기되던 문제였다.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대응방법은 확진자 동선 파악와 접촉자 검사로 감염력이 높은 코로나19의 초기 전파를 차단하는 것이 골자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국민들의 협조와 방역 당국의 노력으로 빠르게 확산세를 억제했지만, 사생활 침해라는 비판이 따라왔다. 확진자의 동선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개인이 ‘특정’ 됐고, 동선이 공개된 지자체 SNS에는 비판 댓글이 따라왔다. 초기 개인 확진자들은 ‘슈퍼 전파자’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최초로 2차, 3차 전파자가 나왔던 3번 확진자와 감염경로가 오리무중이었던 16번 확진자가 그랬다. 특히 16번 확진자의 경우 지자체에서 의료정보 등 개인정보가 노출돼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확진자의 개인정보 노출 우려가 지속되자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확진환자의 이동경로를 알리는 과정에서 내밀한 사생활 정보가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노출되는 사례가 발생하는데 대해 우려를 표한다”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에 근거를 둔 확진자의 동선 공개는 최근 최소한의 정보만 노출하는 식으로 개선된 상태다. 확진자 동선은 접촉자가 모두 파악됐을 경우 장소를 공개하지 않고, 방역 후 2주가 지났을 경우 정보를 삭제한다.

그러나 개인에게 향한 혐오는 집단으로 옮겨 붙었다. 지난 3월 신천지발 집단감염을 시작으로 특정 종교에 대한 혐오가 퍼지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이태원 코로나 확산은 성소수자 확진자에 여론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이들을 향한 분노의 표출은 마치 ‘정의를 구현하는 것’처럼 포장됐다. 급기야 인천 한 아파트 현관문에는 “XX동 XX라인에서 나온 (확진자) 부모님. 당신도 사람이냐. 이태원 업소 가서 날나리처럼 춤추고 확진자 돼서 좋겠다”는 비난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클럽발 확진자가 속속 나오자 ‘젊은이들이 문제’라는 식의 세대갈등도 빚어졌다.

코로나19는 ‘젊은이 문제’에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8·15광화문 광장에서 보수 시위가 대규모로 열리면서 순식간에 ‘어르신 문제’로 바뀌었다. 신천지 등 특정종교를 향한 비난도 이제는 성북구 소재 특정 교회의 집단감염과 일부 교회들의 대면예배 강행이 문제가 되면서 교회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경현 한국인사이트연구소 소장은 지난 9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개최한 ‘감염병 시대의 인권’ 토론회에서 지난 1~5월 코로나19 관련 혐오표현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인종, 성소수자, 지역, 종교에 대한 혐오 표현이 코로나19에 영향을 받은 것을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재난 상황에 대한 공포가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혐오발언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발현됐다”며 “혐오에 대한 단순 해명보다 대중의 의식을 전환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집단감염, 방역과 혐오 사이

코로나19와 관련한 사회 분열은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하며 더욱 거세졌다. 특히 지난 8·15 광화문 광장 집회와 성북구 소재 특정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전국적인 코로나19 확산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집단감염 사례를 상세히 발표하면서 코로나19 확산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전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역 당국은 매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코로나19 집단감염 사례를 발표하고 있는데, 특정 단체를 지목해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달 14일부터 18일까지 닷새 동안 광복절 집회와 관련된 확진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면서 “(코로나19) 재확산 원인을 특정 집단에 전가하려는 마녀사냥은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5일 광화문광장에 모인 보수 단체. (사진=김혜선 기자)
15일 광화문광장에 모인 보수 단체. (사진=김혜선 기자)

또 최근 2주 간(8월27일~9월8일) 확진자 중 감염 경로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깜깜이 감염’ 사례가 737명으로 총 22.2%를 차지한 만큼 코로나19 확산을 모두 특정집단의 과오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의 집단감염 공개는 특정 집단만을 향하고 있지 않다. 9일 현재 정부는 집회 참석자, 종교시설, 물류센터, 친목모임 등 다양하게 발표하고 있다. 또한 최근 2주 간 확진자 중 ‘집단감염’ 사례는 41.5%로 대부분을 차지해 국민들로 하여금 집단감염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또 코로나19 재확산과 ‘광복절 집회’의 연관성은 보건 당국 통계로 충분히 증명된다. 9일 중앙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광화문 집회 관련 확진자와 추가전파자는 총 551명(8일 0시 기준)으로 수도권은 물론 비수도권에도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성북구 소재 교회 관련 확진자는 1,163명(7일 0시 기준)이었다.

그럼에도 정부의 집단감염 사례 발표는 신중해야할 필요가 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지난 5월 코로나19 혐오표현 대응에 관한 지침서를 내고 정부, 특히 고위급 정부 관료가 대국민 메시지를 낼 때 “바이러스 발생 및 전파의 책임을 특정 지역사회나 공동체에 전가하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치화된 코로나19 사태

또 다른 문제는 현재 코로나19 재확산 사태가 정치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여당과 야당에서는 수도권 코로나19 재확산의 원인을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광화문 집회 이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손을 놓고 있는다면 통합당과 전광훈이 ‘감염병의 부활’의‘공범’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셈이 될 것”이라며 야당에 책임을 돌렸다. 반면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서는 “국민들은 국가를 믿고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자발적으로 속박하면서 지금껏 참고 인내하고 있었음에도 정부는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았음을 탓하고 있다”며 “정작 정부는 쿠폰을 발행하고 임시공휴일을 지정하면서까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을 무장 해제시켰다”고 지적했다.

여당과 야당의 서로를 향한 비난은 우리 사회에 혐오표현이 더욱 만연할 위험을 줄 수 있다. 유엔 인권사무소 지침서에도 “(혐오표현은) 주로 개인에 의해 확산되지만 정치지도자, 공직자, 종교지도자, 그 밖의 저명인사들이 전파하거나 개인이나 집단이 혐오확산이나 폭력선동의 목적으로 힘을 합칠 때 가장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경고했다.

확진자가 발생한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도 문제지만, 해당 집단의 ‘음모론’ 제기 등 비이성적인 대응도 문제다. 광복절 집회 관련 단체는 급기야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청장)을 ‘살인 혐의’로 고발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지난 지난 4일 자유민주국민운동·정치방역고발연대·공권력감시국민연합·공권력피해시민모임 등 보수단체들은 정 본부장을 직권남용과 강요, 직무유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불법 체포 및 감금 교사,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교사 등 6개 혐의로 고발했다. 정 본부장이 중국 국경을 폐쇄하라는 전문가의 의견을 듣지 않아 코로나19가 확산,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이유다.

17일 이날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앞에서 사랑제일교회 및 전광훈 목사 공동변호인단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혜선 기자)
17일 서울 성북구 교회 앞에서 공동변호인단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혜선 기자)

성북구 소재 교회 역시 변호인단을 구성해 전방위적인 ‘고발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정세균 국무총리와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장하연 서울지방경찰청장, 박유미 서울시 시민건강국장 등을 고발하는 등 과도한 소송전을 불사하는 모양새다. 이들은 ‘국민소송 변호인단’으로 확장해 전 국민적 소송을 이어가겠다며 △코로나 확진자 △맘카페 회원들로 인한 피해자 △전국 교회 교인들 등을 대상으로 권리를 구제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유엔 인권사무소는 정부 뿐 아니라 시민사회에도 코로나19 혐오표현과 관련한 권고를 내리고 있다. 특히 종교지도자, 종교인, 노조위원장, 비정부기구 대표 등 시민사회 단체는 코로나19 관련 허위정보나 음모론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결국 코로나19 와 함께 찾아온 혐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 사회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서는 감염병이 닥친 마을에 도피하거나, 저항하거나, 체념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리고 있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는 “페스트가 생겼으니 막아야 한다는 건 뻔한 이치”라며 성실히 자기의 직분을 수행하는 소시민이 등장한다. 그 단순한 이치에는 여당에도 야당에도, 진보에도 보수에도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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