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은 도시의 빽빽한 사유지 속에서 숨통처럼 트여있는 ‘공공공간’이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광장에 모여드는 사람들 자체가 공간의 성격을 결정한다. 언제는 시장통으로, 언제는 혁명의 근원지로, 언제는 문화와 축제의 장으로 분하는 것이 광장이 가진 포용성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광장은 누구나 모이는 공간이 아닌, ‘내 편’이 모이는 공간이 돼 버렸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대표되는 광장 정치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뉴스포스트>는 우리 사회가 건강한 ‘소통의 광장’을 되찾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을 3회에 걸쳐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지난달 서초구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사진=김혜선 기자)
지난달 서초구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사진=김혜선 기자)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전격 사퇴하면서 사그라질 것 같았던 광장 정치가 산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주말인 26일에는 광화문과 서초구 강남성모병원에서 보수 집회가, 여의도 국회 앞과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는 진보 집회가 열렸다.

분화된 광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두 가지다. 한 쪽은 광장의 분화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보고, 다른 쪽은 정치 양극화가 심화돼 국민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고 해석한다. 앞서 본지가 찾았던 광화문과 서초동 광장 현장 참여자들은 자신들의 집회가 전자에 더 가깝다고 봤다.

하지만 현재의 분화된 광장을 방치하는 것도 사회적 낭비다. 정치 양극화가 심화될 경우 법적인 규범조차 벗어나는 극도의 분열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 실제로 조 전 장관 사퇴 이후에도 이어진 각 광장 집회에서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부각됐다. 광화문 광장 집회와 결을 같이하는 강남성모병원 집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죄와 석방을, 서초동 광장은 구속된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특정한 사안을 놓고 찬반 집회가 갈리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영국은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브렉시트를 두고 수년 째 찬반 집회가 열리고 있고, 미국은 진보-보수, 민주당-공화당, 백인-유색인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 결국 영국은 ‘철의 여인’으로 불리던 메이 총리가 사퇴해야 했고, 미국은 내년 11월 재선 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여론이 과반을 넘는 등 부작용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호된 ‘광장 정치’를 겪었으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나라가 있다. 지난해 11월 일명 ‘노란조끼 시위’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등 몸살을 앓았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사례가 그것이다.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대. (사진=AP/뉴시스)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대. (사진=AP/뉴시스)

노란 조끼와 빨간 스카프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유류세 인상 정책에서 촉발됐다. 프랑스 정부가 환경 보호 명목으로 경유와 휘발유 세금을 대폭 올리겠다고 발표하자 차량 내 비치품이던 노란조끼를 입고 유류세 반대 시위에 나선 게 시초다.

노란조끼 시위는 초기에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시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지난해 11월~12월 프랑스 여론조사에서는 시위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70%를 상회할 정도였다. 여론조사업체 오독사(Odoxa)가 진행한 11월 28일 여론조사에서는 시위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84%였다. 취임 초기 60%에 달하던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20%대로 곤두박질쳤다.

이러한 지지에 힘입어 노란조끼 시위는 유류세 반대에서 점차 마크롱 퇴진으로 번졌다. 애초에 시민들은 이미 마크롱 정부의 일방적인 개혁 정책에 불만이 쌓일 도록 쌓인 상태였다. 마크롱 정부는 그동안 부유세와 자본소득세를 대폭 감세해주고, 노조의 권한을 축소하고 노동 유연성을 완화하는 등 친기업 정책을 써 왔다.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노란조끼 시위가 다소 주춤하게 된 시점은 12월부터다. 프랑스 정부는 12월 5일 유류세 인상 계획을 철회하고 같은 달 11일에는 마크롱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 나서며 노란조끼 시위의 요구사항인 최저임금 인상도 약속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노란조끼 시위의 분노는 깊고 정당하다”며 사회보장세 인상 계획과 초과 근무 수당 세금도 없애겠다고 했다. 다만, 부유세 부활 요구는 거부했다.

애초에 마크롱 대통령은 ‘일하는 프랑스를 만들자’는 정부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었던 듯하다. 새해가 밝자 마크롱 대통령은 그동안 진행하던 개혁을 계속 이어가겠다며 “일을 덜 하면서 돈을 더 벌 수는 없고, 세금을 줄이면서 정부지출을 늘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마크롱 대통령이 정책기조를 수정하지 않았음에도 노란조끼 시위를 지지하는 여론조사는 50%대로 줄어들었다. 유류세 인상 철폐와 최저임금 인상 등 반발 세력이 바라는 사안에 유연성을 발휘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마크롱 대통령이 사회적 대토론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1월 13일 대국민 서한을 통해 ▲세금 ▲국가와 공공기관 ▲환경 ▲민주주의와 시민권 등에 대한 대국민 토론회를 열겠다고 했다. 쉽지는 않았다. 노란조끼 시위대는 마크롱 대통령의 대토론도 불순하게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마크롱 대통령의 대토론은 약 두달 간 이어졌다. 1월15일 노르망디 지방의 한 소도시에서 열린 첫 토론회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약 6시간 정도 자리를 지키며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같은 달 24일에도 리옹 인근 소도시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3시간 동안 시민들의 질의응답에 성실히 답했다.

이런 와중에 노란조끼 시위의 폭력성에 회의를 느낀 친정부 성향의 ‘빨간 스카프 시위대’도 등장했다. 그동안의 노란조끼 시위 규모에 비하면 작은 수준이지만, 수개월째 지속되는 반정부 시위에 피로감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결국 노란조끼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점차 하락했고, 바닥을 치던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달 36%까지 반등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친정부-반정부로 나뉜 프랑스 사회에 ‘대토론’이라는 소통의 장을 마련해줬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분화된 광장에도, 그 광장에 몸을 맡겨버린 정치권에도 교훈을 주는 사례다. 정치권은, 혹은 정부는 광화문과 서초구를 잇는 대화의 장을 열어본 적이 있던가. 최근 마크롱 대통령의 RTL방송 인터뷰를 기억해야 할 때다.

“시간을 들여서 속도를 조절해가면서, 그리고 경청하고 시민의 의견을 존중해가면서 해야 한다. 왜 우리에게 개혁이 필요한지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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