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수도 이전을 둘러싼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지난 1971년 대선부터 시작된 수도 이전의 불씨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대통령과 정부가 주도했던 앞선 1970년대와 2000년 초반과는 달리 이번에는 국회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사태 해결의 목적으로 여당이 행정수도 이전을 들고 나오면서 의제 자체가 정쟁화됐기 때문이다. 이미 한 차례 위헌 결정이 났던 행정수도 이전이 또 다시 국론 분열의 불씨로 재점화 된 상황. <뉴스포스트>는 본 기획을 통해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쟁점과 최선의 해법 등을 4회에 걸쳐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그래픽=김혜선 기자)
(그래픽=김혜선 기자)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수도 이전과 관련한 논의는 ‘수도권 과밀화’ 문제와 떼 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대비 수도권 인구의 비중은 이미 지난해 50.002%를 넘어 국민 절반이 서울과 수도권에 모여 사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이 수도권 과밀화 해소 카드로 수도 이전을 눈여겨 본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19대 대선에서도 각 후보들은 수도를 이전한다거나 국회를 이전하는 등 행정수도를 강화하는 공약을 걸었다.

19대 대선 당시 행정수도 공약은 ‘국회 이전’이 대세였다.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대선 공약에서 국회 분원을 설치해 세종시의 행정수도를 완성하겠다고 약속했다.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는 개헌을 전제로 국회 분원이 아닌 통째로 세종시로의 이전을 약속했다. 가장 파격적인 공약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것이었다. 당시 안 후보는 개헌을 전제로 청와대와 국회 모두 세종시로 이전하는 공약을 내놨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들이 앞 다퉈 국회 이전을 골자로 하는 행정수도 공약을 내놓은 것은 개헌이라는 장벽을 피하기 위한 차선책에 가까웠다. 지난 2004년 헌법재판소에서는 세종시 수도 이전을 ‘위헌’ 판결 내면서 “수도를 설정하거나 이전하는 것은 국회와 대통령 등 최고 헌법기관들의 위치를 설정하여 국가조직의 근간을 장소적으로 배치하는 것”이라고 명시해뒀다. 결국 청와대와 국회 이전은 곧 ‘수도이전’을 뜻하게 되어 개헌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실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여당인 민주당에서는 청와대와 국회 모두를 세종시로 옮기는 수도 이전 청사진을 꺼내들었다. 민주당은 지난달 김태년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연설을 통해 “국회, 청와대, 정부 부처가 통째로 세종시로 내려와야 한다”고 선언한 뒤 ‘행정수도완성추진단’을 결성해 수도 이전 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행정수도 이전 논의는 정말 손에 잡히는 그림일까.

국회 세종의사당이냐, 국회 세종분원이냐

청와대·국회의 세종시 이전 계획 중 국회 이전 부분은 예비 부지가 거론될 정도로 구체적으로 논의가 진행돼왔다. 민주당 추진단이 출범 직후 세종시 호수공원 인근에 위치한 부지를 탐방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도 그동안 쌓였던 국회 세종시 이전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만 추진단의 세종시 국회 부지 탐방은 기록적인 폭우로 중단됐다.

지금까지 논의된 국회 세종시 이전 계획은 ‘국회 세종 분원’ 설치를 중점적으로 연구돼왔다. 지난 2017년 국회 사무처가 한국행정연구원에 의뢰해 작성한 ‘국회 분원 설치의 타당성 연구’ 보고서에서는 국회 완전 이전보다는 분원을 설치해 어디까지 국회 기능을 세종시로 이전해야 하는지를 따져봤다. 지난해 7월 국회사무처 의뢰로 국토연구원이 제출한 ‘업무효율성 제고를 위한 국회분원 설치 및 운영방안’ 역시 분원 설치를 기준으로 한 연구였다.

국토연구원 연구보고서에서 선정된 국회 세종 분원 후보지. (사진=업무효율성 제고를 위한 국회분원 설치 및 운영방안, 국토연구원)
국토연구원 연구보고서에서 선정된 국회 세종 분원 후보지. (사진=업무효율성 제고를 위한 국회분원 설치 및 운영방안, 국토연구원)

국회 세종 분원은 그 위치와 설립 면적까지 상당히 세세하게 검토됐다. 특히 국토연구원의 연구 보고서에서는 국회 분원 입지 후보만 5개를 뽑아 장단점을 분석했다. 이 중 가장 유력한 후보지는 세종 호수공원에 인접한 50만㎡ 부지다. 이 곳은 정부 세종청사 등 행정기관과 인접해있고 국무조정실과도 도보로 15분 내에 위치했다. 상업시설 역시 인근에 위치해 접근성과 업무효율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서 민주당 추진단이 둘러보기로 한 부지도 바로 이 곳이었다.

세종 분원에 ‘얼마큼의 국회 기능이 이전해야 하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기본적으로 국회 세종 분원은 위헌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에 불과하다. 행정연구원 연구에서도 이러한 위헌 소지를 피하기 위해 국회의 본질적 기능은 서울에서, 기타 기능은 세종 분원에서 수행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결과 △예산결산위원회만 이전하는 안 △예결위+중앙행정기관 관련 상임위 10개가 이전하는 안 △예결위+중앙행정기관 관련 상임위 10개 회의만 개최하는 안 △국회 완전이전 안 등으로 제시됐다. 국토연구원 연구에서도 비슷하게 국회 입법 기능을 제외한 국정감사와 예결위 심사는 세종으로 옮기되, 입법안을 논의하는 상임위를 얼마나 세종으로 옮길 것인지 5개 안을 구분해 들여다봤다.

이전 대상 기능·기관 선정의 틀에 따라 국회, 행정부처, 전문가 설문·인터뷰·업무특성 분석을 통해 도출된 업무연계성과 기능지수를 기준으로 대안A와 대안B로 구분. (사진=업무효율성 제고를 위한 국회분원 설치 및 운영방안, 국토연구원)
이전 대상 기능·기관 선정의 틀에 따라 국회, 행정부처, 전문가 설문·인터뷰·업무특성 분석을 통해 도출된 업무연계성과 기능지수를 기준으로 대안A와 대안B로 구분. (사진=업무효율성 제고를 위한 국회분원 설치 및 운영방안, 국토연구원)

반면 국회의 완전한 이전은 아직까지 검토된 연구가 없다. 기존의 행정연구원에서 이전 안 중 하나로 검토됐지만, 헌재 판결 위배 가능성이 높고 ‘개헌’을 전제로 추진돼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이에 민주당은 올해 세종 분원 설계 용역비로 책정된 예산 20억 원 안쪽에서 ‘국회 세종의사당’ 설계 용역이 가능한지 검토해볼 예정이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은 행정수도 이전 계획에 대해서는 ‘정해진 게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우원식 행정수도완성추진단 단장은 지난 4일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행정수도 완성 추진단 서울 지역 국회의원 간담회’에서 “균형발전 전략 속에 추진될 행정수도 완성은 여야 간 합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여야 합의를 통해서 국회 특위도 구성되지 않았는데 미리 검토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행정수도완성추진단 단장이 지난 4일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행정수도 완성 추진단 서울 지역 국회의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혜선 기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행정수도완성추진단 단장이 지난 4일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행정수도 완성 추진단 서울 지역 국회의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혜선 기자)

청와대 세종집무실, 아직 그림도 없다

국회 세종 이전은 ‘분원’의 형태라도 논의가 지속돼왔지만 청와대 이전의 경우 ‘백지’ 상태로 봐도 무방하다. 지난해 1월 이춘희 세종시장이 청와대에 방문해 대통령 세종집무실 설치를 정부에 건의했지만, 청와대에서 이를 검토하다가 흐지부지됐다. 원래 문재인 대통령의 제2집무실 공약은 광화문에 설치되는 것이었는데 경호 등 문제로 불발됐고, 세종 집무실을 설치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이전까지는 차기 정부에서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추진단 역시 청와대 세종 집무실 등 이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우원식 단장은 “우리 추진단이 청와대 이전, 또는 대통령 제2 집무실 설치를 검토한 것 같이 보도되고 있는데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개헌이냐 국민투표냐 특별법이냐

결국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완전히 이전하기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한 상황이다. 헌재에서 국회와 청와대 등 헌법기관이 위치한 장소가 수도임을 명시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지난 2018년 대통령 개헌안을 내놨을 때 ‘수도를 법률로 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도 수도 이전을 염두에 둔 조항이었다.

하지만 수도 이전을 위한 개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지난 1987년 개헌 이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헌법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 모두 논의됐지만 모두 불발됐다. 특히 수도 이전 외에도 권력구조 개편 등 논의할 사항이 많아 개헌 논의는 모든 현안을 무력화시키는 ‘블랙홀’ 취급을 받아왔다.

두 번째 방법은 국민투표다. 앞서 노무현 정부 당시 신행정수도 건설은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을 근거로 위헌 판정을 받았는데, 헌재는 수도 관련 사항을 국민투표에 붙여 국민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제시했다.

문제는 국민투표가 찬반으로 갈리는 투표인만큼, 정치쟁점화 되기 쉽다는 것이다. 당장 오는 2022년 대선을 앞둔 정부 여당은 수도 이전을 국민 투표에 붙일 경우 ‘현 정권 재신임’ 투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국민 투표 결과 수도 이전이 부결되면 불어 닥칠 정치적 후폭풍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보수 논객인 권오현 변호사는 지난 12일 미래통합당 측에서 연 ‘수도이전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행정수도 이야기로 인한 국론분열이 없겠느냐”며 “영국에서도 브렉시트를 결정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시행했지만, 그 후 세대 간 대결로 비화돼 현재까지도 봉합이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민주당 추진단에서는 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특별법 제정’으로 의견이 기우는 모양새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를 거쳐 행정수도와 관련한 특별법을 만든 뒤, 다시 헌재에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얘기다. 앞서 우원식 단장은 행정수도 완성 서울지역 국회의원 간담회에서 “특별법, 국민투표, 개헌, 그 어떤 것도 여당이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면서 여야가 함께하는 행정수도 완성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민주당 단독이 아닌 여야 합의로 특별법안이 나온다면, 헌재 역시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 특별법안이 ‘국민의 의견’으로 판단해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특별법 추진도 개헌과 국민투표처럼 모험에 가깝다. 우선 노무현 정부 당시 특별법이 위헌 판정을 받는 ‘아픈’ 과거가 있고,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직 통합당은 행정수도 관련한 당론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최근 이재오 전 의원은 ‘수도이전반대범국민투쟁본부’를 만들고 수도이전에 반대하는 토론회를 국회에서 열었다. 이 자리는 배현진 통합당 의원 주관으로 열렸고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이달곤 미래통합당 의원도 참여했다.

이재오 전 국회의원이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수도이전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혜선 기자)
이재오 전 국회의원이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수도이전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혜선 기자)

다만 민주당 추진단은 오는 9월 열리는 정기국회 일정과 연말 예산안 심사 일정 등을 고려해 두 달 내로 특위 구성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또 특위 구성 전 ‘전국 순회토론회’를 열고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국민적 여론을 모아갈 예정이다. 우원식 단장은 “국민적 합의 절차. 지역별 균형발전 전략. 글로벌 경제 수도 서울 구상 등을 위한 지혜를 함께 모아보자”며 “민주당은 두달 간 전국 순회토론회를 거치며 국토균형발전 구상을 구체화해 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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