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은 홀로 오지 않았다. 14세기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페스트)는 인구의 3분의 1을 휩쓸어 갔다. 최초 증상이 나타난 후 빠르면 수시간, 수일 내로 사망하는 전염병은 인류를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 죄여오는 공포 속에 누군가는 남을 탓하고, 비난했다. 21세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해외에서는 동양인 폭행 뉴스를, 국내에서는 확진자에 대한 조롱을 흔하게 접한다. 하지만 수백년 전과 달리 인류는 전염병과 싸우는 법을 안다.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그래서 누구나 혐오할 수 있는 세상에서 페스트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고 ‘공동의 선’을 찾아낼 수 있는 희망이 있는 이유다. <뉴스포스트>는 코로나19 시대 혐오를 넘어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짚어 본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벌써 절반이 훌쩍 지난 2020년. 올 한 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를 꼽자면 단연 ‘코로나19’다. 지난해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확인된 코로나19는 올해 들어 대륙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했다. 중국과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한국은 비교적 빨리 코로나19가 도달했다.
국내에서는 1월 20일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이후 2월과 3월 특정 종교 신도들을 중심으로 대구·경북 지역에서 대규모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했다. 5월에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 유흥시설에서, 8월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를 통해 집단 감염이 확산했다. 감염 확산의 불씨가 약 3개월을 주기로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상황임에도 전 세계는 한국의 방역 시스템을 추켜세웠다.
방역 당국은 확진 환자의 동선을 세밀히 추적하고, 빠르게 진단 검사를 진행해 숨은 확진 환자들을 발굴했다. 기업은 진단 검사에 쓰인 키트 역시 속전속결로 생산해냈다. 체계적인 방역 시스템과 발달한 기술력이 있었지만, 일명 ‘K방역’의 일등공신은 단연 묵묵히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대구에서 집단 감염이 확산하자 생업을 제치고 달려간 의료인들의 사연은 코로나19의 공포가 잠식한 상황에서도 국민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보건의료인으로 분류되는 간호조무사들 역시 코로나19 전쟁 최전선에서 9개월째 묵묵히 헌신하고 있다. 코로나19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조무사들은 격무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감염 위험에 장기간 노출되고 있다. 실제로 병원 집단 감염에 노출된 간호조무사들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례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의료인들과 달리 이들의 노고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다.
<뉴스포스트>는 누구보다도 코로나19 전쟁에서 최전선에 싸우고 있으면서도 노고가 알려지지 않은 간호조무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천의료원에서 근무 중인 이삼순 간호조무사와 강원대학교 병원에서 근무하는 김윤 간호조무사와의 인터뷰를 이달 8일과 12일에 진행했다. 인터뷰는 코로나19 예방과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서면으로 이뤄졌다.
간호조무사들이 전하는 코로나19 병동 풍경
이삼순, 김윤 간호조무사에 따르면 보건의료인들의 업무 환경은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한 이후 급격히 달라졌다. 인천의료원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이후 이 간호조무사는 음압 병동에 투입됐다. 외래진료를 맡던 김 간호조무사는 기존 업무 외에도 코로나19 워킹 스루(Walking through) 선별 진료소에 파견 나가 검체 체취를 돕고 있다. 이들을 가장 먼저 고통스럽게 한 것은 방호복이었다.
이삼순 “N95 마스크와 방호복은 꼼꼼하게 착용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 숨 쉬기도 힘들다. 하루에 속옷을 2~3벌 가지고 다니면서 샤워를 해야 한다. 방호복을 입는 순간 땀이 나고, 고글에도 땀이 고여 출렁인다. 옷은 흠뻑 젖는다. 음압 병동에 근무하면 독한 소독제와 음압으로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 처음엔 바닥이 굴곡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환자들의 입원과 퇴실이 중복되면서 음압 병동만 4번 입실했다. 샤워만 3번을 했다”
김윤 “선별 진료소 인력을 따로 채용하지 않아 부족한 상황이다. 이번 여름은 긴 장마 때문에 유독 습하고, 찌는 듯한 더위에 방호복 안으로 땀이 계속 흘러 속옷이 다 젖었다. 하지만 근무가 끝날 때까지 모두 감수해야 한다. 일하는 중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을까 봐 선별 진료소 업무 시간이 끝날 때까지 물 한 모금도 먹지 못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입는 것은 물론 숨 쉬기 조차 힘든 방호복을 입고 근무한 지 반년이 넘었다. 현장 간호조무사들의 피로 누적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이들은 증언한다. 아픈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이들의 건강은 도리어 악화하기까지 했다. 신체는 물론 정신 건강까지 위협받고 있다.
이삼순 “직원들의 웃음과 의욕의 사라진다. 어깨도 쳐진다. 저 역시 피로 누적으로 역류성 식도염에 걸려 이틀간 먹지도 못했다. 한 병원에 다니는 직원이 휴가를 다녀온 후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기도 했다. 그분이 병상에 누웠을 때는 눈물과 콧물, 땀범벅이 된 상태로 일했다. 해당 직원 분은 다행히 입원과 동시에 음성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김윤 “처음 2월 코로나19가 시작됐을 때는 여름 전에 끝나겠지 싶었다. 하지만 2차로 다시 확산하면서 피로 누적으로 체력적 힘듦은 물론이고, 피부 가려움증과 두통 및 불면증에 시달린다. 이 상태로 현장 출근하면 부담감이 크다. 오전에 선별 진료소에서 근무하고, 오후에 각자 본인의 외래진료 업무로 돌아간다. 쉴 시간 없이 일을 계속해서 퇴근 시간이면 체력이 다 방전된다. 몇 개월째 반복되다 보니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낀다. 언제 끝날지 모를 코로나19로 현장을 정신력으로 견디고 있다. 다들 우울감이 급증한다”
보건의료인들의 체력과 정신력이 한계에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지난달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린 이후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산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들은 보건의료인들의 피로감뿐만 아니라 병상 부족 문제도 피부로 느낀다고 말한다. 이 간호조무사가 근무하는 인천은 물론 김 간호조무사가 있는 강원도의 상황도 비슷했다.
이삼순 “전염병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하기 때문에 발 빠른 대처를 해야 한다. 확진 환자가 줄어들면 음압기를 제거해 일반 환자를 받아야 한다. (광복절 집회 이후) 음압기의 설치와 제거를 반복했고, 수차례 소독을 했다. 초기 코로나19 발병 환자는 1달 이상 입원하시는 분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증상이 없는 양성 판정자들의 경우 생활보호센터로 보냈다. 그래도 병실이 부족했다”
김윤 “광복절 집회 이후 저희 병원은 비상근무 체계로 전환했다. 서울 집회 현장에 다녀오신 환자 분들이 급증하면서 병원은 긴급 상황이 됐다. 매일 워킹 스루 선별 진료소는 북새통을 이룬다. 코로나19 확진 환자 분들이 증가면서 일반 환자 입원 병상 수가 현재 부족하게 운영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격무와 건강 악화, 병원 내 상황 등이 코로나19 현장 최전선에 있는 간호조무사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을 두렵게 하는 것은 바로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역시 가족들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행여 바이러스라도 전파할까 식사 등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코로나19가 보건의료인들의 업무 환경뿐만 아니라 일상마저 바꿨다.
이삼순 “처음에는 무서움과 두려움이 커서 주먹을 움켜쥐고 마음을 다잡으며 음압 병동에 들어갔다. (대화는 거의 하지 않고) 묻는 말에 대답만 하고 나온다. 퇴근 이후 식구들과 식사를 할 때는 반찬을 뷔페식으로 덜어먹고 있다”
김윤 “현장은 매일이 살얼음판이다. 언제 어느 때라도 나에게 바이러스가 전파될지 모른다.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계속 안고 일한다. 솔직히 두렵고 무섭다. 가장 힘든 것은 가족이었다. 여름에 해외 유학 중이던 딸아이가 귀국했는데, 제가 선별 진료소에서 일하니까 딸에게도 전파를 할까 봐 너무 스트레스였다. 두 번의 코로나19 검사 결과 모두 음성이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장기간 코로나19와 싸우면서 심신이 지쳤지만 이들은 현장을 떠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이삼순, 김윤 간호조무사에 따르면 이들이 근무하는 인천의료원과 강원대학병원에서는 간호조무사 인력이 현장을 떠나는 사례는 없었다. 생계와 경력 문제 등의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이들에게는 현장을 떠날 수 없는 ‘사명(使命)’이 있다. 이 간호조무사는 인천 시민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을, 김 간호조무사는 병원일은 자신의 운명이라고 말한다.
이삼순 “어느 날 간호조무사들은 물론 간호사, 수간호사 과장님까지 모두 합심해 청소를 하고 있었다. 청소 여사님들이 투입되지 않아서 청소일은 보통 간호조무사들이 담당하고 있다. (놀라서) ‘이게 웬일인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간호과장님께서 ‘인천 시민을 우리가 지켜야지’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늘 뇌리에 남아있다”
김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신종 바이러스다. 사스와 메르스와는 또 다른 핵폭탄 바이러스다. 현장에서 일하는 저만 힘든 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 저는 보건의료인으로서 28년 차 병원 근무를 해오고 있다. 병원 일은 제 운명인 거 같다. 끝까지 저의 책임과 사명을 다할 것이고, 현장을 꿋꿋하게 앞으로도 지켜낼 것이다”
사명을 가지고 코로나19 사태를 이겨내겠다는 이들은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 마스크 착용 ▲ 3밀(밀접·밀집·밀폐) 지역 가지 않기 ▲ 모임 가지 않기 ▲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적극 동참 ▲ 손 자주 씻기와 같은 손 청결의 생활화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말하는 방역 수칙과 지침 준수를 당부했다.
이삼순 “보건의료인들이 코로나19 감염병 환자에서 벗어나 일반 환자를 간호하게 해주시길 바란다. 특히 간호조무사들은 보이지 않은 곳에서 맡은 일을 해내고 있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방심이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한다. 정부의 지침에 따라주시면 된다. 저희 보건의료인들이 두 발 뻗고 편히 쉴 수 있도록 도와달라”
김윤 “지금도 선별진료소에서는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수많은 의료진들과 병원 관계자분들이 힘들게 하루하루를 견디면서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코로나19 수칙을 잘 준수하시고, 정부 방침에 적극 동참하시면서 생활해 나갔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전국의 각 현장에서 일하시는 간호조무사분들 지치지 않게 건강 유의하시길 바라며, 코로나19가 종식되는 그날까지 힘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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