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출산에 대한 남녀 인식 차이 
가사와 돌봄 노동의 평등 필요
다양한 가족 형태 차별 없는 환경 조성 시급

지금 대한민국은 저출산·고령화라는 위기 상황에 놓여있다. 최근 발간된 유엔인구기금의 ‘2020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전 세계 198개국 중 198위다. 고령화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르다. 출산율이 감소하면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어 국가 성장이 둔화되고,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 납세자는 줄고 의료복지비용은 증가해 사회 갈등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곧 저출산·고령화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짓누르는 국가적 위기 상황을 의미한다. 뉴스포스트는 기획 3부작을 통해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과 출산에 대한 인식 등 저출산 현상에 대한 원인 규명 및 해결책 등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우리나라의 저출산 현상은 최근 몇 년 사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한 국가가 현재의 인구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 2.1명 이상의 합계출산율을 기록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1980년대 2.1명 이하로 하락했으며, 2001년 이후 초저출산율(합계출산율이 1.3명 이하) 수준에 진입했다.

정부는 2006년부터 3차례 걸쳐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1명이 채 되지 않는다. (사진=뉴스포스트DB)

3차례 걸친 정부 출산 장려 정책 

합계출산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자 위기감을 느낀 정부는 2006년부터 본격적인 지원책 마련에 돌입했다. 출산율 저하를 막기 위한 사업비로 2006년부터 1~3차에 걸쳐 총 185조 원을 쏟아부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2006~2010년 1차 기본 계획 때 19조 7,000억 원, 2011~2015년 2차 기본 계획 때 60조 5,000억 원을 사용했다. 2016~2020년에 해당하는 3차에는 5년간 108조 4,000억 원을 투입하는 등 예산 규모를 확대하며 적극적인 투자에 나섰지만 합계출산율은 오히려 2006년 1.13명에서 지난해 0.92명으로 0.21명이나 줄어들었다. 

매년 수십조 원의 예산을 투입해 출산장려금, 보육지원정책,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제도 등을 시행하고 있지만 저출산 문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시행한 저출산 대책이 여타 국가에서 효과적이었다고 평가받는 정책들을 도입한 것에 지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우리 사회 특색에 맞는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저출산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성인남녀가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은 더 이상 결혼을 당연시 하는 사회가 아니고 선택적으로 바라보는 방향으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자료=통계개발원)

여성에 편중된 가사노동 및 돌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4월 만 19~49세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아이를 낳지 않은 첫 번째 이유로 미혼과 기혼 모두 ‘경제적 어려움’을 꼽았다. ‘아이 양육 및 교육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아이 없이 생활하는 것이 여유롭고 편해서’, ‘아이 돌봄 시설 및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아이 키울 주거환경이 마련되지 않아서’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결혼에 대한 인식은 성별의 차이를 보였다. 통계개발원의 ‘한국의 사회동향 2019’를 보면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남성의 40.8%, 여성의 33.2%가 ‘결혼을 하는 것이 좋다’고 응답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이유로는 가사노동 및 자녀 돌봄의 부담이 여성에게 편중돼 있는 한국 고유의 가족문화가 꼽힌다. 

직장인 A 씨(29세, 여) “어린아이를 두고 출근할 때 주위에서 들리는 비난과 육아휴직에 대한 눈초리 및 돌아왔을 때의 소외 등 우리 사회는 아직도 주 양육자가 엄마가 될 수밖에 없다는 시선이 팽배하다”라며 “자녀 양육에 있어 엄마 개인이 한 아이를 키워내는 것이 아닌 양성이 평등한 사회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가족 내 역할분담 평등하게

전문가들은 돌봄의 성별 공유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가족문화 조성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기존 어머니의 부담이 큰 돌봄이 공동육아의 실현으로 부양과 돌봄의 ‘책임 공동체’가 돼야 한다. 국가는 보편복지로서 돌봄 체계의 전체 운영에 대한 책임을 진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저출산의 위기를 겪은 프랑스의 경우는 1990년도 합계출산율이 1.6명까지 떨어졌다. 프랑스 정부는 대대적인 출산 육아정책을 펼쳐 2006년 합계출산율 2명에 도달했고, 출산율은 여전히 한국의 두 배에 달한다. 

주목할 점은 프랑스 정부의 출산 및 육아정책이 다른 유럽 국가와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프랑스가 출산 강국이 된 이유로 ‘아이는 여성이 낳지만 사회가 함께 키운다’는 패러다임이 정착됐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프랑스는 수십 년 이상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를 통해 남녀의 평등한 가사 분담과 육아 분담을 확산했고, 특히 남성 참여형 육아 문화를 만들어나갔다. 

통계청이 지난 7월 발표한  ‘2019 생활시간조사결과’ 중 19세 이상 성인의 가사노동 시간. (사진=통계청)

우리나라도 가족 내 남성과 여성의 고정적인 역할분담에 대한 의식 수준이 달라지고 있다.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부부가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응답 비율은 2006년부터 꾸준히 증가해 2018년에는 남성 54.6%, 여성 63.4%에 이른다. 

하지만 실제 가사분담 실태를 살펴보면 갈 길이 멀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 생활시간조사결과’를 보면 남성의 평일 가사노동시간은 5년 전보다 9분 증가한 48분으로 1시간도 채 안 됐다. 반면 여성의 평일 가사노동 시간은 5년 전보다 12분 감소한 3시간 10분으로 조사됐다. 여성의 가사노동 비율은 평일, 주말 모두 92% 내외로 5년 전과 비교했을 때 거의 차이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저출생 극복을 위한 각종 정책들도 선진국들 못지않게 잘 구비돼 있다. 이러한 정책들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기 위해선 하루빨리 평등한 역할 분담이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저출산’에서 ‘저출생’으로 용어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출산이라는 것은 여성이 출산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돼 개별 여성에게 책임과 부담이 전가된다. 저출생은 우리 사회에 아이가 덜 태어나는 것으로 저출생 부담을 개인이 아닌, 국가와 사회 모두의 책임으로 보자는 의견이다. 

(사진=뉴스포스트DB)
(사진=뉴스포스트DB)

다양한 가정에 대한 편견과 차별 없애야

아울러 비혼 출산, 다문화 가정, 한 부모 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는 포용력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근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1998~2018년 사이 남성과 여성 모두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모두 절반 이상 감소했다.

통계청의 ‘2018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48.1%, ‘결혼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 56.4%의 응답률을 보였다. 13세 이상 국민 중에서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비율은 줄어들고 있는 반면, 동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동거도 괜찮다’라고 응답한 사람 중 30.3%는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혼과 동거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로 남녀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보편혼의 개념은 깨진지 오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비혼 출산과 미혼모, 한 부모 가족, 입양 가족, 다문화 가족 등에 대한 비난과 차별적 인식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는 저출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비혼 출산 비중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2014년 기준 한국의 전체 출산 가운데 엄마가 비혼 상태인 출생아 비율(비혼 출산율)은 1.9%로 27개 OECD 국가 평균 40.5%에 크게 못 미친다. 프랑스의 경우 전체 출산에서 비혼 출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56.7%다.

우리 사회의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가 아이를 낳았다’라는 부정적 인식이 출산 포기로 이어지고, 출산하더라도 다른 곳으로 입양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6년 입양 아동 가운데 비혼모 아동은 전체의 91.8%를 차지했다.

또한 인구보건복지협회가 2018년 미취학 자녀를 양육하는 미혼모 3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양육미혼모 실태 및 욕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혼모 10명 중 4명은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학교에서는 자퇴를 강요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이러한 불이익으로 재정적 어려움까지 겪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미혼모의 82.7%가 ’아이를 양육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고 답했다.

비혼, 사별, 이혼 등의 사정으로 한 부모가 아이를 기르는 가정도 비혼 양육에 대한 편견과 열악한 경제적 여건으로 자립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현재 한부모 가정의 47%는 저소득(중위소득 52% 이하) 가구로 집계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8년 비혼 출산과 한 부모 양육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없애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저출산이 주거비와 교육비 등 경제적인 부분과 경력단절, ‘독박 육아’ 등에 대한 걱정으로 젊은 세대의 결혼·출산 기피가 발생하고, 비혼 상태의 임신이 대부분 출산 포기로 이어지는 것이 사회문화와도 관련이 크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정부는 한 부모에게 지급하는 양육비를 인상하고, 사실혼 부부도 난임시술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하는 등 비혼 및 한부모 출산, 양육 지원책을 마련했다. 

전문가들은 “아동들이 차별 없는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이 마련돼야 출산에 대한 고려가 뒤따르는 것”이라며 “결혼이 출산으로 이어지는 정책과 출산과 양육을 잇는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참고 자료

송헌재 외, 새로운 형태의 출산 및 보육정책과 기대효과 분석

박정미, 피에서 문화로, 가족에서 사회로: 가족, 국적과 성원권의 젠더 정치1)
배은경, '저출생'과 젠더관계의 변화: 돌봄의 패러다임 전환을 향하여
한국의 사회동향 2018, 2019 - 통계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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