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은 도시의 빽빽한 사유지 속에서 숨통처럼 트여있는 ‘공공공간’이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광장에 모여드는 사람들 자체가 공간의 성격을 결정한다. 언제는 시장통으로, 언제는 혁명의 근원지로, 언제는 문화와 축제의 장으로 분하는 것이 광장이 가진 포용성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광장은 누구나 모이는 공간이 아닌, ‘내 편’이 모이는 공간이 돼 버렸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대표되는 광장 정치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뉴스포스트>는 우리 사회가 건강한 ‘소통의 광장’을 되찾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을 3회에 걸쳐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사진=김혜선 기자)
(사진=김혜선 기자)

[뉴스포스트=이해리, 김혜선 기자] 지난 14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전격 사퇴를 발표한 것은 ‘광장 정치’가 이뤄낸 것이었다. 조 전 장관은 사퇴의 변에서 “검찰개혁을 응원하는 수많은 시민의 뜻과 마음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고 서초동 집회를 언급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수보회의에서 “결과적으로 국민들 사이에 많은 갈등을 야기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우회적으로 광장이 두 개로 갈라진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광화문 광장은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이끌어냈고, 서초동 광장은 그에게 위로가 된 셈이다. 광장 정치의 현장에서 국민들은 서로의 광장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광화문 집회

지난 9일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투쟁본부)’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조 전 장관의 사퇴를 주장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날 광화문 광장부터 시청역까지 연결되는 대로변은 태극기를 든 집회 참가자들로 가득 메워졌다.

이날 집회에서 만난 대부분의 국민들은 현 정부가 보수 성향 국민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울분을 가슴에 품었다. 각자 현 정부에 가진 불만은 사실관계를 떠나 ‘현 정부가 좌파 편만 든다’는 소외감에서 시작됐다.

지난 9일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보수 집회 참가자들. (사진=김혜선 기자)
지난 9일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보수 집회 참가자들. (사진=김혜선 기자)

서울에 거주하는 A 씨(60대·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좌파 쪽에서는 자신이 선의고 정의고 평등이라고 말한다. 문 대통령도 ‘기회는 공평하고 결과는 정의롭다’고 맨날 떠든다”며 “자기만 선이고 한국당은 악이라고 하다가 조국 사태를 보니 위선적이고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자기 쪽만 감싸니 싫은 것”이라고 토로했다.

충청도에서 올라왔다는 B 씨(60대·여)는 “문재인의 공약이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만든다면서 위선적인 행태에 분노해 집회에 나오게 됐다”며 “문 정권은 너무나 자기 정당만 옳다는 그릇된 생각을 바꿀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실명을 밝힌 김종우(60대·남) 씨는 “모든 게 다 화가 난다. 현 정부는 너무 편파적이다”며 “솔직한 이야기로 깨끗한 사람은 세상에 없지만, 그래도 우리 국민이 원하는 정도의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국민이 다 함께 원하는 사람을 앉혀야지 자기네 편이라고 앉혀서는 되겠나”고 했다.

김종우(60대·남)씨는 광화문 집회에 나온 이들이 모두 자발적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김혜선 기자)
김종우(60대·남)씨는 광화문 집회에 나온 이들이 모두 자발적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김혜선 기자)

이들은 모두 광화문 집회에 ‘자발적’으로 나온 것임을 강조했다. A 씨는 “서초동 집회에도 가 본 적 있다. 그 분들은 관제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김종우 씨 역시 “서초동은 데모로 이력이 나 있는 사람들”이라며 “그 분들은 박정희 시절 전두환 시절부터 데모만 하던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하고 우리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집에서 나오고 싶어 나온 평범한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광화문에서는 서초동을 어떻게 바라볼까.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서초동 집회 사람들이 조 전 장관을 감싸는 것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가족과 함께 집회에 나온 C 씨(60대·남)는 “서초동 집회는 이념이나 다른 논리를 떠나서, 불의한 자를 옹호한다는 것 자체가 도덕·윤리적으로 볼 때 문제가 있다”며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다. 수신제가가 되지 않는 사람을 세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초동 사람들이야 나름대로 자기들이 옳다고 하지만, 우리는 여야 좌우를 떠나서 진정한 양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조국을 옹호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검찰개혁 해야 하지만, 그것을 조국이 해야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D씨(50대·여)는 “억울해서 나왔다. 조국 일가가 너무 위선적이고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게 아무것도 없다. 부모로서 창피해서 나왔다”며 “서초동 집회는 그쪽 나름대로 의견이 있지만 그래도 정의는 올바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국 이야기는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서초동 집회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서초동 집회는 지난 12일 마지막으로 무기한 중단됐다. 조국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달 30일 폭발적으로 늘어난 집회 참석 인원은 서초역~대법원 정문 앞, 서초역~교대역까지 거리를 가득 메웠다.

지난 12일 서초동 일대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집회 참가자들. (사진=김혜선 기자)
지난 12일 서초동 일대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집회 참가자들. (사진=김혜선 기자)

이날 저녁 7시 경 서초동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검찰이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를 과도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봤다. 수원에서 집회에 참석한 ㄱ 씨(70대·여)는 “검찰이 조국을 너무 탈탈 털어서 나왔다.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인데 인정도 안 해주고, 마구잡이로 가족들까지 몰살하는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전라도 광주에서 올라온 스님 ㄴ 씨는 “권력으로 한 가족을 지나치게 괴롭히는 모습이 생중계되듯이 뉴스에 나온다. 이런 것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서 나오게 됐다”고 했다.

ㄷ 씨(30대·남)는 “조국을 수사하는 것을 보면 검찰이 헌법기관으로서 작용하지 않고 자기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이익집단처럼 보인다”며 “조국을 떨어트려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거기에 맞춰서 수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서초동에서는 오히려 광화문 집회가 ‘관제집회’에 가깝다는 입장이다. ㄷ 씨는 “광화문 집회는, 물론 자기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간 분도 계시겠지만 순수한 의도를 갖고 가신 분들로만 이뤄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이 쪽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광화문은 관광버스까지 대절해서 집회에 간다. 그것부터가 관제집회로 보인다”고 했다. ㄹ 씨(60대·남)는 “광화문은 종교적으로 많이 모였는데 그것만 봐도 동원집회”라고 주장했다.

(사진=김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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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집회에 대한 생각을 물으니 ㄴ 씨는 “사람마다 자신의 이익과 자기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은 자유고, 전부 존중받아야 한다”며 집회 자체에 대해서는 바람직하다고 봤다. 그는 “대신 변화해야 할 때 변화는 해야 한다”며 “과거에 우리는 동학의 민중 혁명의 정신을 탄압했기 때문에 일제 36년을 겪었다. 외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변화를 해야만 일제 36년 같은 그런 고통을 안받는다”고 설명했다.

ㅁ 씨(50대·여)도 “광화문 집회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나이대 되시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신다”고 했다. 그는 “저희 어머니도 한글날 광화문으로 나가셨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고 했다. 함께 집회에 나온 20대 커플은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면서도 “다시 한 번 자신들이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진짜 자기네들 마음속에서 이 상황이 정당한지 정의로운 상황이 맞는지를 다시 한 번 돌이켜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광화문과 서초동의 공통분모

‘조국 반대’와 ‘조국 수호’라는 극단적인 의견표출임에도 불구하고 광화문과 서초동 집회의 공통분모가 있다. 집회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다.

광화문에서 만난 A 씨는 “옛날 같으면 한두 번 집회로 끝났겠지만 국민들이 촛불의 힘을 봤다. 집회가 계속되면 세상이 변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같은 집회에 참석한 70대 E 씨는 “당연히 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안 되면 끝까지 집회에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초동도 마찬가지다. ㄴ 씨는 “변화하리라고 확신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됐을 때처럼 이번에도 역사가 변할 것이다. 매우 중요한 순간에 동참하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ㄱ 씨 역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국 가족 수사를 어느정도 선에서 마무리해 윤석열도 살고 조국도 법무부 장관하고 대통령도 지지율이 올라서 정치를 잘하고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온다”고 전했다.

광화문과 서초동의 또다른 공통분모는 광장 정치를 ‘국론분열’이 아닌 ‘정치적 의견 표출’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던 B 씨와 C 씨를 제외하고 본지와 대화를 나눈 모든 이들은 자신들의 집회를 “정치적 의견일 뿐 국론분열이 아니다”고 답했다.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A 씨는 “정권이 잘못되면 국민이 일어서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나 있어왔던 것”이라며 국론분열이 아니라고 봤다. 김종우씨 역시 “물론 우리가 하나가 되면 좋겠지만 억지로 정치적 성향을 바꿀 수 없는 것 아니냐”며 “광화문과 서초동은 서로의 길이다. 자기 정치적 주관이니 뭐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D 씨는 “국론분열이라고 말하긴 조금 그렇다. 진실만 가려지고 정의만 살아나면 괜찮다고 생각한다”며 “서초동에서 말하는 검찰개혁은 저도 인정한다. 하지만 조국에 대한 의혹은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서초동 집회에 참석한 ㄱ 씨는 “집회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ㄴ 씨 역시 “사람마다 자신의 이익과 자기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은 자유다. 상호 존중해야 한다”며 “부처님 말씀 중 ‘착함으로 악함을 이겨라’는 말이 있다. 과거에는 비리와 권력 폭력 등 악으로 먹고 사는게 더 강했지만 지금은 급속하게 선으로 먹고 사는 세상이 돼가고 있기 때문에 선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ㄷ 씨는 “애초에 국론이라는 게 하나로 뭉쳐질 수 없다. 공산주의도 아니고 꼭 하나로 뭉쳐져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국론분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보였으면 하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보는게 아닌가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ㄹ 씨는 “언론에서 보면 둘이 나눠졌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둘이 나눠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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