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되지만 어르신은 NO"...다시 등장한 '노시니어 존'
분노 보다는 본인 모습을 살피는 현명한 시니어 되어야

[뉴스포스트=강대호] ‘어른’은 나이가 많은 사람을 의미한다. 또한 ‘어른’은 세상을 오래 산 만큼 경험이 많아 현명한 사람, 그래서 젊은 세대가 본받을 만한 사람을 은유하기도 한다. 제59회 백상예술대상 교양작품 부문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에서 제목으로 사용한 ‘어른’이 그 용례다.

나이가 많다는 건 다른 세대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는 자격이었다. 한때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가 들수록 주변 속 자기 모습을 잘 살펴봐야 한다. 말조심, 행동 조심. 그렇지 않으면 배제되는 세상이 되었다.

서울의 한 카페에 걸린 '노 시니어 존' 안내.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서울의 한 카페에 걸린 '노 시니어 존' 안내.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사람들 귀에 거슬린 어느 전문가의 발언

시인이면서 다양한 매체에서 문화평론가로 소개되는 김갑수는 5월 1일 유튜브 채널 <팟빵 매불쇼>에 출연해 지난 4월 28일 개최된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 대해 언급했다. 이 자리에서 김갑수는 상을 받은 배우들의 자세를 지적했다.

그는 "거의 전 수상 소감 멘트 80~90%가 누구누구한테 '감사합니다'라고 한다"라며 포문을 열며 "진심은 개인적으로 표하면 안 되나. 3시간짜리 시상식 자체도 하나의 프로그램이다. 개인적으로 감사한 거야 알아서 할 일이고, 자기의 생각이나 작품 할 때의 어려움 같은 여러 가지 얘기할 게 많을 것 같은데"라고 지적했다.

그러며 "대상을 받은 박은빈 씨. 훌륭한 배우고 앞으로도 잘하겠지만 울고불고 코 흘리면서 아주"라고 박은빈을 콕 집어 언급했다.

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박은빈은 떨리는 목소리로 소감을 전했었다. 그가 맡은 배역, 사회적 약자를 연기하며 혹시 ‘자폐스펙트럼’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누가 될까 봐 고민했던 마음과 드라마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달라지고 사회적 약자를 ‘다름이 아닌 다채로움’으로 바라봤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었다.

박은빈은 울먹이긴 했지만 자기의 소감을 분명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평한 문화평론가의 지적이 대중들에게는 거슬렸던 모양이다. 김갑수의 해당 발언을 편집한 동영상에는 그의 발언을 비판하는 취지의 댓글들이 달렸다. 

연예 미디어들도 김갑수의 발언에 대해 비판적 논조로 기사를 내보냈다. 배우의 나이를 들먹이며 과거의 덕목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시각이 옳다고 주장한 면들을 지적했다. 무엇보다 문화평론가라는 지위로 방송에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전문가답지 못한 의견을 공개한 점들을 비판했다. 

김갑수는 자신의 발언을 두고 비판이 일자 한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소명했다. 오해의 소지가 있었고 당시 말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는 취지였다. 그래도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결국 그는 사과했다. 

김갑수는 8일 방송된 유튜브 채널 <팟빵 매불쇼>에 출연해 “박은빈 씨를 저격 의도가 없었음에도 그렇게 들렸다면 말한 제가 잘못한 거다”라며 사과했다. 

미디어를 통해 공개된 전문가의 발언이, 공인으로서 연예인에게 ‘준비’를 강조했던 문화평론가로서의 발언이 사실 정제되지도 않았고 준비되지도 않은 발언이었음을 고백한 셈이다. 

평론가는 자기 나름의 렌즈를 통해 특정 분야를 들여다보는 전문가를 말한다. 비전문가들이 미처 바라볼 수 없는 영역까지 능히 볼 수 있는 식견을 가진 이들이 평론가로서 자격이 있다. 다만 사회에서 평론가라고 인정해준 전문가들은 정제된 언어로 자신의 성찰을 비전문가들에게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이번 김갑수의 발언은 전문가 차원의 발원이라기보다 대중에게는 어른, 단순히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 수준의 발언으로 비쳤을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발언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마치 맘에 들지 않는 부하 직원을 질책하는 상사나 뭘 해도 얄미운 며느리를 타박하는 시부모 같은 모습이 보였다는 지적이 있기도 했다. 

이 논란과 더불어 어릴 적 학폭 의혹이 불거져 하차하게 된 어느 오디션 참가자를 두고 "전 세대는 온갖 곳이 폭력적이었다“며 감싸는 듯한 발언을 해 지탄받은 몇 주 전 발언이 다시 조명되기도 했다. 이 발언에서도 과거의 덕목을 자기 의견의 논리로 내세웠었다.

지금 세상에서 존중받고 싶은 전문가라면, 혹은 어른이라면 자기 세대의 가치를 의견으로 내세우기 전에 다른 세대의 관점에서도 현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걸 문화평론가 김갑수의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21년 논란이 일었던 서울의 한 식당에 걸린 '49세 이상 출입금지' 안내. (사진=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지난 2021년 논란이 일었던 서울의 한 식당에 걸린 '49세 이상 출입금지' 안내. (사진=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안내견은 환영, 노인은 사절

8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노시니어존'이라는 제목의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거기에는 '노시니어존', '60세 이상 어르신 출입 제한'이라는 문구가 적힌 카페의 출입문 사진이 담겼다. 그 문구 옆에는 '안내견을 환영합니다'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수년 전 서울의 한 식당에 ‘49세 이상 정중히 거절합니다’라는 안내가 붙어 있어 논란이 일었었는데 또 다른 ‘노 시니어 존’이 등장한 것. 

물론 SNS에 돌아다니는 사진 한 장으로 전후 맥락을 파악할 수는 없다. 다만 SNS에 이 카페 단골로 보이는 이가 ‘남자 노인 손님들이 카페 여사장을 성희롱했다’는, 평소의 진상 손님이 문제였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사실 ‘진상 손님’ 하면 ‘나이 많은 손님’이 떠오르는 건 사실이다. 마침 지난 6일 인천의 한 카페에서 행패를 부린 중년 남성 손님들 사례가 논란을 일으켰다. 

뉴스에 공개된 동영상에는 50대로 보이는 중년 남성 2명이 금연 구역인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우다 직원에게 제지받자 항의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잡혔다. 한 명은 테이블 위에 커피를 부은 뒤 카페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고, 다른 한 명은 커피가 가득 담긴 잔을 외부 인도를 향해 던졌다.

이 영상뿐 아니라 중장년이나 노인 손님들이 식당이나 카페에서 다른 손님이나 직원들에게 불편을 주는 행동을 하는 사례가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심심치 않게 알려져 있다.

어쩌면 과거에는 허용됐던 것들이 지금은 무례한 것이 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때는 그렇지 않았다’고 목소리 높이기보다 가치와 방식이 달라졌음을 인정하고 적응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건강하고 현명하게 나이 들어가는 이들의 공통점은 ‘변하는 사회와 함께 달라지는 세상 사는 방식’에 잘 적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본질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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