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건설사, '불법 하도급' 자체 조사에 본격적으로 돌입
경영진 회의에서도 전수 조사 등 강력한 메시지 공유돼
조사 방법 두고 혼선 우려도…"뾰족한 방법 없어 업무 마비"
업계 "근절돼야 맞지만…협력사 이탈·공사비 문제 등 걱정"

서울 남산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건설 현장의 모습 (사진=뉴시스)
서울 남산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건설 현장의 모습 (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최문수 기자] 우리나라 중대형 건설사들이 불법 하도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자체 조사에 줄줄이 돌입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포스코이앤씨의 잇따른 건설 노동자 안전사고 관련 원인 중 하나로 불법 하도급을 꼽은 이유가 크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는 불법 하도급 집중 단속을 실시하겠다고 공표한 뒤 전국 곳곳의 현장을 순회 중이다.

건설 업계는 사실상 비상이다. 하지만 정부의 강경한 기조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일부 중견사의 입장도 들린다. 대형사 대비 건설 현장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 회사의 감시를 피해 불법 하도급, 안전 관리 미흡 등 비위 행위를 저지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불법 하도급' 자체 조사 돌입한 건설사


13일 <뉴스포스트> 취재를 종합하면, 다수의 건설사는 회사가 시공하고 있는 건설 현장 대상으로 불법 하도급 유무를 파악하기 위해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 각 지자체를 비롯한 국토교통부 등 정부 기관이 특별 단속을 나선 것과는 별개로 각사가 직접 나서 사태를 확인하겠다는 취지다.

건설사 대부분의 내부 사정은 급박하다. 임원급 직원이 모이는 긴급회의에서 불법 하도급 여부를 파악하라는 등 강도 높은 의견이 오가는 것은 물론, 아래 직원들의 위기의식을 높이기 위한 메시지도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져 종합적으로 비상 상황이라는 해석이다.

서울 시내의 건설 현장 노동자들이 야외에서 근무를 하는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서울 시내의 건설 현장 노동자들이 야외에서 근무를 하는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한 중견사 관계자는 "회사 내부적으로 비상이다. 저번 주부터 전사적으로 각 현장에 불법 하도급이 있는지를 조사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된 게 없지만 우선 파악하라는 목적이 큰 걸로 보인다"고 내부 분위기를 설명했다.

또 다른 중견사 관계자도 "정부가 불법 하도급에 대해서 강하게 조사를 한다고 하니, 우리도 협력 업체에게 현장별로 모두 조사할 수 있도록 지시하라는 얘기가 본부 회의에서 나왔다.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 건설사들도 불법 하도급 현장이 있는지 다 체크하고 조사하라는 오더가 밑으로 내려갔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형사도 돌입…실효성에는 물음표


대형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중견사 대비 시공 중인 현장이 많아 정부의 대응 기조에 훨씬 더 기민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그러나 한정된 인력으로 모든 현장의 불법 하도급 계약 현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사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어 사실상 실효성에 의구심을 드러내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대형사 관계자는 "불법 하도급 관련해서 회사 차원으로 문제가 있는 계약이 있는지 자체 점검은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 외에 특별한 추가 조치들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어떤 업체들과 계약을 어떻게 진행했는지까지는 알기가 어려워 실효성이 있는 조사가 될지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귀띔했다.

중견사 관계자도 "많은 부분 공감을 하지만 방법적인 측면에서 불법 하도급을 어떻게 파악할 건지에 대한 의구심은 든다. 뾰족한 수가 없고 두루뭉술하게 지시가 내려와 업무가 마비된 상태다"라고 답했다.

한 건설 현장 노동자가 더위를 식히기 위해 이온음료를 마시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 건설 현장 노동자가 더위를 식히기 위해 이온음료를 마시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대로 정부의 기조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일부의 입장도 눈에 띈다. 현재 회사에서 가동할 수 있는 직원 수를 고려해 사업을 적절하게 수주했기에 현재까지 불법 하도급과 관련하여 자체적으로 파악된 사안이 없다는 것.

한 중견사 관계자는 "최근 사망 사고를 시작으로 안전을 두고 촉각이 곤두서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심지어는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여름철이다. 그런데 우리는 불법 하도급 관련 지침이 내려온 건 없다. 반대로 온열질환 제로 캠페인을 포함해 안전과 관련된 캠페인만 준비하고 있다. 많은 회사들과 달리 회사 차원에서 자체 조사 지시가 내려오지 않았다는 건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 않겠냐"라고 했다.


"근절돼야 하지만 시간이 필요"


대부분 건설사들은 불법 하도급이 근절돼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지금처럼 정부의 몰아붙이기식 제제 예고는 건설사에게 큰 부담이라고 입을 모은다. 당장 해결하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게 종합적인 의견이다.

이 가운데, 건설 업계의 길어지는 불황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과거 호황일 때는 공사비 및 차기 프로젝트 보장 등을 통해 하도급 업체의 실태를 관리하는 게 수월했지만 현재는 원가율 보존, 협력사 폐업 등이 반복돼 이들의 업무 현황을 감시하는 게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킨다는 뜻이다. 이는 나아가 협력사의 이탈로 이어지는 한편, 장기적으로 공사기간 연장, 공사비 인상 등 부수적인 여파를 부축일 수 있다는 후문이다.

서울 시내의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건축자재를 나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 시내의 건설 현장 노동자들이 건축 자재를 나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 중견사 관계자는 "업황이 좋았던 과거에는 하청 업체에게 공사비도 충분히 제시하고 다음 현장까지 데리고 가는 방식으로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프로젝트도 줄었을뿐더러, 원가율도 좋지 않아 오히려 협력사로부터 아쉬운 소리를 들어야 하는 형국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정부의 강력한 메시지를 시작으로 협력사를 모두 조사하면서 압박하면 원청과 하도급 업체를 포함한 업계는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라고 토로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불법하도급 예방을 위한 건설사업자용 매뉴얼'에 따르면, 불법하도급의 주요 유형은 ▲무등록자 및 무자격자 하도급 의심 현장 ▲일괄하도급 위반 ▲전문공사 하도급 위반 ▲재하도급 위반 ▲10억 미만 공사 하도급 위반 ▲교차수주현장 하도급 위반 등으로 구분된다. 이는 「건설산업기본법」, 「건설기계관리법」, 「근로기준법」,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등에서 규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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