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와의 전쟁' 선포한 이재명 정부…건설사는 긴장 상태
업계 관계자 "사망사고 없어야 하지만…허탈한 것도 사실"
제재 중심의 1차원 접근은 지양…건설의 본질적 이해 필요

"날이 갈수록 안전사고에 대한 제재 수위는 높아지고, 현장에서는 무리한다 싶을 정도로 여러 방안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게 사고를 덜 유발할 수도 있겠다는 위험한 생각이 듭니다. 뾰족한 요철이 많은 바닥 위에 통행을 금지하기 위해 철판을 깔아 놓으면, 오히려 더 많은 노동자가 그 위를 지나다닙니다. '낙서를 하지 마세요'라고 적힌 구역에 낙서가 제일 많은 것과 같은 논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울 시내 한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업무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서울 시내 한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업무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최문수 기자] 최근 정부가 건설 노동자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건설사 대상으로 강도 높은 제재를 예고한 것과 관련한 한 실무자 A씨의 극단적인 토로다.

앞선 2022년 노동자 생명 및 안전을 보호하고 기업 경영 책임자에게 산업재해에 대한 형사적 책임을 부과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아직까지 현장에서는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내비치고 있다.

책임론을 강화하면 안전사고가 줄어들 거라는 이론과 다르게, 여러 예측불가한 요소가 존재하는 건설 현장 특성상 옥죄기 방식은 되레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게 그 이유다.

위에서 언급한 A씨의 한탄도 이와 마찬가지다. 건설 현장의 안전과 관련해서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건설 현장이 밟아온 성장 과정과 본질에 대한 이해가 선행된 이후 각 현장의 데이터 평균값을 토대로 여러 정책이 마련되어야 하며, 단순히 사고가 났으니 사업주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1차원적인 논리로 접근하면 결코 개선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복적인 업무가 이뤄지는 제조업과 달리, 건설업은 수주한 프로젝트마다 맞닥뜨리는 상황이 가지각색이다. 특히, 대부분 작업이 야외에서 이뤄지는 것은 물론 사업 규모, 발주처 요구를 포함한 날씨, 주변 환경, 프로젝트 참여 구성원 등 고려해야 할 요인이 만만치 않다.

반대로 얘기하면 여러 돌발변수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기 때문에 각 건설사는 프로젝트별로 안전 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새롭게 정해야 하고, 공사진행 상황에 따라 수정이 반복된다는 의미다.

정부는 포스코이앤씨의 노동자 안전사고를 시작으로 건설사에게 엄포를 놨다.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건설사에게 금고나 영업정지 또는 연 매출 3% 이내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행정적 체재와 함께 최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형사적 처벌의 가능성도 열어놨다.

찬반 논쟁이 뜨겁지만, 중대재해처벌법보다 책임론 수위를 높여 안전사고를 예방하겠다는 게 정부의 본 취지다.

하지만 건설사도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안전 관련 조직을 개편 및 강화하는 한편, 작업중지권 도입, AI(인공지능) 등 신기술을 활용한 대안 마련, 안전 의식 고찰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 구성 등 고군분투해왔다.


정책 제정부터 전담 조직까지 구축


현대건설은 지난해 안전보건경영 정책(Safety & Health Management Policy)을 제정했다. 대표이사가 직접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선포하고, 모든 임직원과 협력사가 준수해야 할 9가지 핵심 원칙을 설정했다. 여기에는 위험성 평가 기반의 선제적 안전 관리, 협력사 지원, 근로자 참여 보장 등이 포함된다.

당시 현대건설은 "안전보건 최우선 경영을 통해 안전보건 성과를 지속적으로 개선함과 동시에 사업활동 및 가치사슬 전반에서 발생 가능한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본 안전보건정책을 제정한다"라고 밝혔다.

현대건설의 안전보건경영 정책 일부 발췌 (사진=현대건설)
현대건설의 안전보건경영 정책 일부 발췌 (사진=현대건설)

GS건설은 올해 연구개발 담당 조직인 미래기술원 산하에 안전진단팀을 꾸렸다. 그간 미래기술원은 건축기술 연구센터, 기반기술 연구센터, 그린·에너지 연구센터 등 기술을 중심으로 운영돼 왔지만 이번에는 안전을 전면에 내세운 팀을 만든 셈이다.

안전진단팀은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전사적으로 진단하고 객관적인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안전기술 연구, 안전사고분석,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는 등 안전에 대한 연구도 진행한다.

GS건설의 이 같은 움직임은 단기적 차원이 아닌 연구개발(R&D) 기반의 중장기적이고 과학적인 안전관리 체계를 전사적으로 구축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업계는 높게 평가한다.

대우건설은 안전조직을 최고경영자(CEO) 직속으로 재편했다. 그러면서 기존 품질 조직은 각 사업본부 지역품질팀으로 배치하는 등 조직개편과 정기 임원인사를 병행했다. 위기대응과 책임경영에 방점을 찍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 불확실한 경영환경을 극복하겠다는 복안이다.


스마트 기술로 안전 관리 전폭 지원


스마트 안전 기술 고도화 및 현장 적용 확대 사례도 주목받는다.

DL이앤씨 소속 한 근로자가 안전 삐삐를 지급받은 후 안면인식 시스템을 거쳐 현장에 출입하고 있다. (사진=DL이앤씨)
DL이앤씨 소속 한 근로자가 안전 삐삐를 지급받은 후 안면인식 시스템을 거쳐 현장에 출입하고 있다. (사진=DL이앤씨)

DL이앤씨는 지난해 AI(인공지능) 영상인식 솔루션, 정밀 위치 감지 장비(안전 삐삐), 위험 알리 시스템 등을 통합한 플랫폼을 개발하여 현장 적용을 시작했다. 특히, 중장비와 근로자 간 충돌 위험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경고하는 기능이 핵심이다.

인적 오류를 기술로 보완해 중대재해 발생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기술 중심의 안전관리 강화 사례로 꼽힌다.

대우건설은 올해 초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기업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안전혁신정책을 발표하면서, 지난 2023년 개발한 모바일기반 안전관리 앱 '스마티(SMARTy)'의 수준을 높였다.

고도화된 '스마티'를 통해서 근로자는 작업중지권을 요청할 수 있으며, 관리자는 실시간 안전 점검 및 조치 결과 공유, TBM(Tool Box Meeting)' 회의록 관리 등 현장의 모든 안전 활동을 모바일 앱 하나로 통합 관리할 수 있게 됐다.

형식적인 안전관리가 아닌 실시간 소통 기반의 실질적인 안전관리가 가능하게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평가다.


임직원·협력사 '안전 의식 고취' 캠페인도


건설사는 회사를 비롯한 노동자의 안전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여러 캠페인 활동을 펼쳤다. 꾸준히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특정 현장이 아닌 건설 생태계 전체의 안전 수준을 향상시키겠다는 목적에서다. 회사 근로자를 포함한 협력사의 참여 확대도 꾀했다.

SK에코플랜트는 '추락재해 예방 집중 캠페인'을 가졌다. 사망사고 비중이 가장 높은 추락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경영진이 직접 현장을 찾아 시설물을 확인하고 근로자는 특별 교육을 받았다.

임재욱 SK에코플랜트 CSO(왼쪽에서 세 번째)가 광명자이힐스테이트SK뷰 신축공사 현장을 방문해 작업장 안전관리 실태와 예방활동 이행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SK에코플랜트)
임재욱 SK에코플랜트 CSO(왼쪽에서 세 번째)가 광명자이힐스테이트SK뷰 신축공사 현장을 방문해 작업장 안전관리 실태와 예방활동 이행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SK에코플랜트)

HDC현대산업개발은 매년 실시 중인 안전·재해 예방 교육 'HDC SAFETY-I ACADEMY'의 전문화 과정을 올해 초 추진했다.

이 과정은 'HDC SAFETY-I ACADEMY 4기' 교육의 일환으로 안전관리자를 비롯한 경영진, 현장소장, 관리감독자, 협력회사 대표이사·안전 관계자 등 1400명을 대상으로 안전보건 업무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직무별 맞춤 커리큘럼으로 진행됐다.

어성원 HDC현대산업개발 안전환경기획팀장은 "다 함께 참여하는 안전보건 교육을 통한 현장 안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올해 SAFETY-I ACADEMY의 커리큘럼을 확대·개편했다"고 설명했다.


고위험 공종 관리에 회사가 직접 개입


건설사는 본사 차원에서 고위험 작업을 정의하고 직접 통제 및 관리하는 시스템을 속속 도입했다. 근로자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현장의 자체적인 판단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회사가 직접 고위험 작업의 계획 단계부터 깊숙이 관여하여 안전성을 확보하겠다는 심산이다.

다른 건설사 대비 인명사고가 유독 적은 것으로 알려진 삼성물산 건설부문(이하 삼성물산)은 본사 건설안전연구소 산하에 'DfS(Design for Safety) 그룹'이라는 전문 조직을 배치했다.

'DfS 그룹'은 공사 시작 전 설계 단계부터 참여하여 추락, 충돌 등 위험성이 높은 고위험 공종에 대한 안전 대책을 미리 설계에 반영한다. 구체적으로 이동식 크레인 작업, 굴착 작업 등 사고 위험이 큰 13개를 고위험 작업으로 정의하고 관리한다.

현대엔지니어링 주우정 대표이사(왼쪽에서 두 번째)가 현장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엔지니어링)
현대엔지니어링 주우정 대표이사(왼쪽에서 두 번째)가 현장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엔지니어링)

현대엔지니어링(이하 현대ENG)도 위험도가 높은 작업 10개를 선별하고 본사의 사전 검토 및 승인을 의무화했다. 매주 안전품질본부장, 사업본부장은 '리스크 모니터링 회의'를 개최, 사전 승인이 없는 작업은 개선 후 재검토 과정을 거치는 식이다.

현대ENG가 뽑는 10대 고위험작업은 건설기계 사용, 철거, 터널 굴착 등 안전보건공단과 동종업계 사망재해 다발 공종을 기준으로 선정됐다.


정부 "산재와의 전쟁"…업계 "본질적 이해가 선행돼야"


정부는 '산재(산업재해)와의 전쟁' 중이다. 과태료와 과징금 제도를 도입하는 등 강력한 경제적 제재 추진에 착수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건설사에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는 법안까지 발의됐다.

정부의 기조는 명확하다. 반복되는 산업재해 뿌리를 뽑겠다는 것. 그러나 현장의 이해가 없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대책은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할 거라는 입장도 여전하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업계에 경각심을 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시행을 고려한 예고인지 단언할 수는 없다"라며 "노동자가 사망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건설 업계의 생리현상에 대한 이해가 없는 강경 정책은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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