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韓‧美 협업 '마스가 프로젝트'에 시선 쏠려
이달 29일 '경주 APEC CEO' 써밋 막 오른다
행사의 서막 '퓨처테크 포럼'에 600여명 몰려
정기선 회장, 지난 17일 승진한 이후 첫 공개석상
27일 포럼에서 연사로 참여…조선업 미래 전하다
"AI는 전례 없는 방식으로 산업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혁신이 현실화되고 있다. 인공지능(AI)은 선박의 지속가능성 및 디지털 제조에도 큰 영향이 가해지는 만큼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산업의 경계를 넘어서는 긴밀한 글로벌 혁신 동맹이 필요하다."
[뉴스포스트=김주경 기자]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이하 APEC) 최고경영자 서밋에서 인공지능(AI)을 화두로 내세우며 강조한 메시지다.
APEC 수퍼 위크가 27일 'CEO 서밋 퓨처테크 포럼'을 시작으로 본격 막을 올렸다. 이 가운데 HD현대는 27일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에서 '조선업의 미래를 만들다'라는 주제로 '퓨처 테크 포럼: 조선'포럼'을 개최하며, APEC 2025 KOREA의 첫 시작을 알렸다.
APEC CEO 서밋은 이달 29일 공식 개막한다. 이번 행사에 APEC 회원 16국 정상과 전 세계 1700여 명의 글로벌 재계 리더들이 경주로 집결하고 있다.
한·미 협력에서 다뤄지고 있는 핵심 키워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가 전면에 떠오른 가운데, CEO) 서밋 '퓨처 테크 포럼: 조선' 행사에는 국내외 조선 업계와 학계 관계자 6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기조연설 화두는 '인공지능(AI)'…자회사 '아비커스' 행보 소개
정기선 회장은 이날 기조 연설 연사로 나서며, AI 요소를 상용화한 대표적인 사례로 자율운항 선박의 혁신성을 내세웠다. 정 회장은 "자율운항 기술은 도로 위 자율주행차보다 바다 위 자율운항 선박이 현실에 훨씬 더 가까워졌다"고 전했다.
그는 HD현대의 자율운항 기술 개발 중인 자회사 아비커스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3년 전 2022년 당시 세계 최초로 상용 선박에 자율운항 기술을 적용해 태평양 횡단에 성공했다"면서 "액화천연가스(LNG)를 가득 실은 대형선박이 미국 휴스턴에서 출항해 한국까지 인간이 개입하지 않고, 완전 자율운항으로 항해한 세계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HD현대는 지난 2020년 자회사 아비커스를 설립한 이후 지금까지 총 700억원을 투자했다. 지난 7월 아비커스 증자에 130억원을 쏟아부으며,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HD현대가 아비커스에 각별한 이유는 잠재적 성장이 매우 크다고 판단해서다.지난해 아비커스가 거둬들인 실적은 매출 69억원, 영업손실 139억원에 그치는 등 아직 기대에 부합하는 수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정 회장은 "아비커스의 자율운항 기술은 전 세계 수백 척의 선박에 적용되고, 운항 중 연료 사용량을 5% 이상 절감시키는 등 성과를 거뒀다"며 아비커스의 성과에 힘을 실어줬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미국과 협력할 마스가 프로젝트의 성공도 자신했다. 그는 "첨단 역량을 총동원해 미국의 해양 르네상스 파트너로 함께할 준비가 돼 있다. 미국 측도 (HD현대가) 전 세계에서 가장 준비가 잘된 파트너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첨단 역량을 기반으로 HD현대는 미 해군을 필두로 하는 차세대 함대 건조와 조선소 재건 등 해양 지배력과 번영에 참여하고자 한다"며 "미국의 새로운 해양 르네상스 시대를 함께 여는 파트너로서, 혁신의 여정에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헌팅턴 잉걸스와 협력…美 함대 건조·조선소 재건에 참여"
앞서 HD현대는 지난 26일 헌팅턴 잉걸스와 공동으로 한국 조선사 중 처음으로 미 해군 군수 지원함 건조에도 도전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에릭 추닝 헌팅턴 잉걸스 부사장은 이날 포럼에서 "HD현대와 자율 운항 기술 등에 관한 노하우를 공유할 것"이라고 비전을 소개했다.
헌팅턴 잉걸스는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로 손꼽힌다. 미시시피주에 미국 최대 수상함을 만드는 조선소인 '잉걸스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다. 이곳에서 미 해군이 최근 발주한 이지스 구축함 물량 70%와 대형 상륙함과 대형 경비함을 건조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불가능했던 자율운행선박 현실에 더 가까워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4월에는 미국 AI 방산기업 안두릴과 무인수상정 개발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양사의 역량이 결집된 선박 자율운항 기술과 자율임무수행 기술이 융합되면 해군 작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 회장은 조선 공정을 개선하는 지능형 조선의 중요성도 알렸다. 그는 "HD현대 조선소는 초정밀 최첨단 용접 로봇을 활용해 고질적인 숙련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며 "조만간 휴머노이드 로봇을 도입해 공정에 혁신을 이룰 것"이라고 전했다.
정기선 회장은 지능형 조선에 '디지털 트윈'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사용자가 선박 설계에 대한 아이디어를 말로 하면 대규모 언어모델(LLM)이 이를 자동으로 해석해 관련 규정·기준에 부합하는 구조 설계를 자동으로 수행한다"며 "선박 건조의 모든 과정은 빅데이터 플랫폼을 통해 정밀하게 관리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래 'K-조선 사업 방향' 소개…美 페르소나와 '용접 로봇' 개발
정기선 회장은 조선소를 IT 시스템이 대거 적용된 '미래 첨단 생산 기지'로 만들겠다는 포부도 전했다. HD현대는 미국 페르소나AI와 손잡고 현재 AI를 비롯해 최첨단 IT시스템이 대거 탑재된 AI 기반 용접 휴머노이드 개발을 추진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국내에서는 첫 시도인 것으로 알려진다. 니컬러스 래드퍼드 미국 페르소나이 최고경영자는 "이 로봇은 10개월간 기초 설계를 거친 후 단계별로 훈련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외에도 HD현대는 독일 지멘스와도 선박 설계부터 생산까지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통합 관리할 수 있는 플랫폼을 공동 개발 중이며, 미국 방산 테크 기업 안두릴과 '무인 수상정'을 제작해 한미 시장에서 선보일 방침이다.
존 킴 안두릴 한국 대표는 "드론과 미사일 등 무인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차세대 방위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고 했다.
HD 현대, 정기선 회장 체제로 전환…30년 만에 오너 경영
한편 HD현대는 최근 정기선 회장 체제를 공식화했다. 정 회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HD현대, HD한국조선해양, HD현대사이트솔루션 등 3사의 대표이사를 겸직하며 계열사를 거느리게 된다. 최근 통합 HD현대중공업, HD건설기계 등 합병이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 만큼 지주사의 오너 중간지주사의 대표로서 책임 경영과 지배력을 동시에 강화하려는 포석이기도 하다.
앞서 HD현대는지난 17일 정 수석부회장의 회장 승진과 함께 사장단 인사를 발표한바 있다. 올해 인사는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의 합병을 앞두고 조직의 혼선을 줄이고자 계열사 인사도 함께 발표했다.
HD현대그룹은 합병에 따른 시너지를 극대화하고자 예년보다 빠른 시기에 단행됐다.
권오갑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추대됐으며 내년 3월 주주총회를 끝으로 HD현대 대표에서 사임한다. 이에 따라 HD현대그룹은 30여년만에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오너 경영 체제로 전환하게 됐다. 정기선 수석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한 것은 조선·건설기계 사업 재편과 함께 미국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반면 권오갑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다음 해 3월 HD현대 대표이사에서 사임하고 명예회장으로 추대된다.
정기선 회장은 기존에 영위해왔던 조선과 중공업 등 핵심 사업은 내실을 다져 리스크를 방어하는 반면 미래 기술과 신사업에는 공격적으로 투자해 성장 엔진을 확보하는 등 투트랙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정기선 회장이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HD현대마린솔루션을 통해 새로운 성장 엔진을 확보한 것이다. 조선업 불황이라는 위기 속에서 미래의 수요(AS, 친환경 개조)를 예측하고 기존 사업을 고부가가치 서비스 사업으로 전환한 전략적 공격 경영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