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전 대표, 과방위 국감서 '윤석열 정부 압력' 증언
이 대통령 '성장과 통합' 상임고문단 활동하며 '친명' 행보
'낙하산 논란' 김영섭 대표 사임에 차기 대표 후보로 거론
사외이사 대부분 윤석열 정부 인사인데다 새노조도 반대
정무감각보다 통신 인프라 이해도 중요…정치적 외풍 끊어내야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정관에 따라 우선 연임을 도전했는데 대통령실에서 엄청 화를 냈다는 얘기가 있었고, 이관석 정무수석이 사퇴를 바란다는 얘기도 있었다. 절차를 문제 삼는 게 아니라 개인을 문제 삼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현모 전 KT 대표이사는 지난달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가 주최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구 전 대표는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장이 이례적으로 보도자료까지 배포해 저에게 사퇴를 압박했고, 직권남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윤석열 정부의 압박에 대해 증언했다.
"건진법사와 연 없어서 쫓겨난 것…윤석열 정부 뒷배 작용"
KT 이사회는 2022년 12월 구 전 대표를 차기 주주총회에 추천할 최종 후보로 내정했지만, 국민연금은 당시 대표이사 공모·경선 절차를 문제삼으며 구 대표의 연임에 대해 반대 뜻을 표명했다. 구 전 대표는 KT 대표로 재임하며 영업이익 2년 연속 1조6000억원 이상 달성, 주가 55% 상승 등 성과를 이뤄낸 바 있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건진법사가 KT 고위관계자와 강남에서 만나 수십억원대 금품을 요구했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구 대표가 건진법사를 통하지 않아서 떨어졌다는 얘기도 있다"며 정치적 압력을 주장했다. 특히 김영섭 KT 대표이사의 친형과 이 수석과 고등학교 동문이었던 만큼, 윤석열 정부의 뒷배가 작용했다는 시각이다.
대표이사 6개월 공백이 이어진 이후 김 대표가 취임하자 일각에서 '정권 낙하산'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배경도 이에 기인한다. KT 새노조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과 여당, 검찰까지 동원해 KT의 경영 인사에 개입한 정황이 확인됐다"며 "정권이 민영 통신기업을 정치적 전유물로 취급하면서, KT의 공공성과 기업 독립성이 근본적으로 훼손됐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무단소액 결제 및 개인정보 유출 사태 책임을 지겠다며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까지만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KT 이사회는 이달 16일까지 대표이사 공개 모집을 진행해 주총 이전까지 대표이사 후보 1인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구현모, 차기 대표 공모 참여할까…이사회·노조서 반대 가능성
윤석열 정부의 강한 압박으로 연임을 포기한 구 전 대표가 공모에 참여해 기사회생할지 주목된다. 구 전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의 제 21대 대선 후보 시절 싱크탱크 '성장과 통합'의 상임고문단에 합류해 정부 조직개편과 관련해 자문하며 정무적 감각을 쌓았다. 이에 이재명 정부 초대 'AI 정책수석' 후보로도 거론된 바 있다.
사법리스크도 해소했다.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 '쪼개기 후원' 의혹은 지난 6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벌금 700만원 처벌을 받았는데, '금고 이상의 형'에 해당하지 않아 KT 대표가 되는 데 문제가 없다.
여당의 신임도 어느 정도 받고 있다. 김현 의원은 "구 전 대표는 완벽하게 일 잘해서 연임에 성공했는데 윤석열 정부 압박으로 쫓겨났다"고 옹호했다. 최민희 과방위원장도 "이석채·황창규 회장 시절 주가가 반토막났는데 구 전 대표는 주가를 55%나 올리며 좋은 성과를 냈는데도 압박해서 물러나게 했다"고 거들었다.
다만 KT 현 이사회에서 사외이사 8명 중 7명이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데다 일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 자문위원회 출신이라 복귀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존재한다.
특히 <노컷뉴스> 단독 보도에 따르면 최근 KT 이사회가 대표이사 인사·조직 개편 전 이사회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의 정관을 의결하는 등 이사회의 권한이 확대되고 있어, 차기 대표로 내정돼도 '바지 사장'에 불과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KT 새노조는 구 전 대표가 경영공백 사태에 책임이 있는 데다 KT를 더 위험하게 만든 당사자라며 반대하는 모양새다. 새노조 관계자는 "정치적 압박이 있었다면 당시 상황을 소상히 밝혔어야 했는데 침묵하고 후보에서 사퇴했다"며 "침묵하다가 정권 바뀌니 나온다는 건 비겁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통신강국' 위상 회복 위해 정치적 외풍 끊어내야
KT의 지분 구조는 현대차그룹이 8.08%, 국민연금과 신한은행이 각각 7.67%, 5.66%를 보유하고 있다. 최대 주주인 현대차그룹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단순 투자인 만큼 '주인 없는 회사'로 꼽힌다. 바꿔 말하면 이사회나 경영진을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는 주주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주주 대신 정치적 외풍에 취약한 구조다. 연임 임기를 끝마친 대표이사는 현재까지 황창규 전 회장에 불과하며, 과거 KT 회장은 정권 창출에 큰 역할을 한 관료 출신들이 자리를 꿰찼다. 정권이 바뀐 후에는 자연스레 정치권에서 사퇴 압박을 받아야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이번 KT 대표이사 선임은 정치적 외풍에서 벗어날 기회다. 이재명 정부는 아직까지 KT 대표이사 공모에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므로 이번에는 정치적 외풍을 끊어낼 지도 모르겠다. 문재인 정부에선 "인사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원칙 아래 내부 출신인 구 전 대표가 대표이사에 선임될 수 있었다.
KT는 공공재인 통신망을 빌려 사업을 하고 있고, 국가기간통신망 사업도 주관하는 만큼 정무적 관점도 필요하지만, 디지털 플랫폼 기업 도약을 위해선 IT 사업과 AI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더 중요한 시점이다. 스타링크로 대표되는 6G 위성통신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미래 통신 인프라에 대한 이해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KT 이사회가 '윤심'과 '명심'이 아닌 회사에 대한 '진심'을 지닌 이를 내정하길 바라 본다. 무엇보다 AI 강국 도약을 위해선 안정적인 통신 인프라가 선행돼야 한다. 통신인프라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고, 관련 기술자를 대우하는 문화도 정착되길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