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마저 반도체 제조공장 건설 추진
美·中·日·유럽, 보조금으로 공장 유치 총력
우리 정부 지원 미흡…인프라 구축 정도만
핀셋형·적극 지원으로 공염불 우려 불식해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19일(현지 시간) 대만 타이베이 뮤직센터에서 ‘컴퓨텍스 2025’ 개막을 앞두고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19일(현지 시간) 대만 타이베이 뮤직센터에서 '컴퓨텍스 2025' 개막을 앞두고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중국은 우리 뒤에 있지 않다.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이며, 끝이 없는 경쟁이다. 승패를 따지기도 힘들다. 5000억 달러(약 680조원) 규모의 AI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선 엄청난 투자와 협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많은 협력사들을 영입했고, 자체 공장도 지을 것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대미 투자 행사 후 약식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중국의 인공지능(AI) 격차가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언제든지 중국에 추월당할 수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강화된 AI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엔비디아가 느끼는 위험은 결코 작지 않다. 엔비디아가 데이터센터에 탑재되는 자사 AI 칩 '블랙웰'을 차세대 LLM(대형 언어 모델) 개발의 핵심이 되도록 적극 키우는 사이, 중국은 엔비디아가 사양을 낮춰 개발한 H800 칩을 통해 생성형 AI '딥시크'를 개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엔비디아는 하반기 12단 HBM3E(5세대 HBM)를 탑재한 최신형 AI 반도체 'GB300'를 출시할 방침이다. GB300은 주요 고객사(주로 클라우드사업자)에게 샘플도 공급했다. 2027년 출시 예정인 차세대 AI 칩 '루빈'에는 현재보다 8배나 많은 그래픽장치(GPU)를 탑재한다고 밝혔다.


건설비 50% 지원…자국 공장 유치 위한 쇼미더머니


지난해 4월 일본 남서부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에 새로 건설된 대만 반도체 제조 회사 TSMC의 공장. (사진=뉴시스)
지난해 4월 일본 남서부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에 새로 건설된 대만 반도체 제조 회사 TSMC의 공장. (사진=뉴시스)

AI 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반도체 공급망을 잡기 위한 각국 정부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일본 정부는 토지 제공, 세금 감면 등 혜택으로 공장 준공을 장려한 결과로 마이크론이 히로시마, TSMC는 구마모토현에 공장을 건설했다. 특히 공장 건설비의 절반 가까이를 보조금으로 지급하며 공급망 강화 의지를 적극 피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관세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자국으로 다시 생산시설을 옮기도록 하는 리쇼어링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인텔·마이크론 등 자국 기업을 위주로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할 방침이다. 보조금도 미국산 장비·부품 사용과 전문 인력을 미국 대학가에서 육성하는 등의 조건 충족 시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유럽도 글로벌 반도체 생산 점유율 20%를 목표로 총 430억 유로(약 66조원)을 투자하는 반도체법을 제정했다. 인텔의 독일 마그데부르크 공장 건설에 독일 정부가 100억 유로(약 15조원) 이상을 지원하고, 지난해 8월 착공한 TSMC 드레스덴 공장에도 50억 유로(약 8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프랑스도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글로벌파운드리스가 설립하는 공장에 29억 달러(약 4조원)을 지원한다.

중국도 반도체 완전 자급을 목표로 하는 굴기를 내세워 지난해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 3단계 펀드에 역대 최대 규모인 3440억 위안(약 65조원)을 조성했다. 지방정부에서도 공장 부지 제공, 전기세 지원, 세제 혜택 등 대규모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SMIC, YMTC 등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자립화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결과는 우리에게 불리해지고 있다. 국제반도체산업협회(SEMI)의 '전 세계 반도체 신공장 건설 프로젝트'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미국 4곳, 일본 4곳, 중국 3곳, 유럽·중동 3곳, 대만 2곳에서 신공장 건설이 시작되는 반면 한국은 1곳에 불과하다. 


반도체 클러스터에 천문학 금액…대규모 보조금 無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현장. (사진=SK하이닉스)

올해 착공하는 국내 반도체 공장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일반산단)에 건설되는 SK하이닉스 1기 팹이다. 해당 팹과 업무 시설을 건설하는 데 하이닉스는 약 9.4조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고, 지난 2월 착공에 들어가 내년 5월 준공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일반산단)는 총 415만㎡(약 126만평) 규모 부지에 SK하이닉스 팹 약 60만 평, 소부장 업체 협력화단지 14만 평, 인프라 12만 평으로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조성되는 반도체 산업단지이다. 하이닉스는 첫 팹 건설 이후 나머지 3개 팹도 순차적으로 완공하고, 투입 자금은 총 122조원이 예상되고 있다.

삼성전자도 용인 남사 반도체 클러스터(국가산단) 조성에 360조원, 고덕 반도체 캠퍼스 증설에 120조원, 기흥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 단지 증설에 2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국가산단은 올해 토지 보상을 착수해 내년 착공하고, 2031년 준공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에서는 2030년 말에 첫 번째 팹의 가동을 추진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 조감도. (사진=용인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 조감도. (사진=용인시)

두 회사 모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지만 우리 정부 차원의 대규모 보조금 지원은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반도체 클러스터 송전선로 지중화 비용 분담과 인프라 국비 지원 상향, 투자 규모 100조원 이상 대규모 클러스터의 경우 국비 지원 한도를 500억원에서 1000억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다만 직접 보조금 지원 발표는 없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단의 사업은 2019년 시작됐지만 각종 규제 문제로 착공이 2년가량 늦어졌다. 현재 짓고 있는 1기 팹도 현장 사람들 사이에선 "예전 고덕만큼의 일자리가 없다"는 탄식이 흘러나오며 준공 지연이나 규모 축소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반도체 경기 불확실성 지속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진 영향으로 국가산단 착공이 무기한 연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고덕 반도체 공장 증설도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반도체 기업에 M&A(인수·합병)를 단행할 수 있다는 시각도 최근 DX사업부 강화를 위한 M&A 소식으로 동력을 잃고 있다.


'반도체 3강' 공허한 비전 아닌 핀셋형 지원 필요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후보 시절인 지난 4월 28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에서 열린 'K-반도체' AI메모리반도체 기업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후보 시절인 지난 4월 28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에서 열린 'K-반도체' AI메모리반도체 기업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지난 2월 "앞으로 대한민국은 민주당이 중도 보수, 오른쪽을 맡아야 한다"며 우클릭을 자처했다. AI·반도체로 세계 3강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공약으로는 △종합 반도체 생태계 허브 구축을 위한 시스템반도체 및 첨단패키징 지원 강화 △반도체 등 국가첨단전략산업의 국가균형발전 기여 강화 △RE100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으로 수출, 산업경쟁력 제고 △팹리스, 첨단패키징 및 소부장 기업 등 종합 반도체 생태계 강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도 대규모 보조금 지원 방침은 아직까지 밝히지 않았다.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등 국가가 인프라 구축 외에 보조금까지 대폭 지원하며 공장 유치에 나선 것과 비교되는 상황이다. 반도체 산업을 적극지원하겠다는 약속이 기업들에게 '공염불'처럼 다가올 수 있는 대목이다.

선심성 발언, 공허한 비전에 그치지 않으려면 결국 정부의 적극적인 인프라·자금 지원과 구체적인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가령 삼성·하이닉스가 국산 장비를 사용할 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어야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도 동반 성장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며 무엇보다 경제를 강조했다. 핀셋형 지원으로 기업 경기를 살리고, 민생 경제까지 회복되는 선순환 구조가 확립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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