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갈등의 골…급식 계약까지 조기 종료
LG화학-SK이노 영업비밀 침해소송 연상
소송 장기화 속 양사 LFP 경쟁력 뒤처져
하이브리드 본딩 위주 재편 시 타격 우려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이 자사 TC본더 4 장비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한미반도체)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이 자사 TC본더 4 장비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한미반도체)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이 TC본더 특허 침해 여부를 두고 소송이 진행 중인 가운데, HBM(고대역폭메모리) 선단 공정의 핵심으로 평가받는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 경쟁에서 두 회사가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분쟁 프레임에서 벗어나 두 회사가 실질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SK하이닉스 갈등 일단락…한미-한화 분쟁은 심화


한화세미텍의 TC본더 'SFM5-Expert' (사진=한화세미텍)
한화세미텍의 TC본더 'SFM5-Expert' (사진=한화세미텍)

30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한미반도체는 최근 SK하이닉스와 장비 거래와 인력 파견을 재개하며 갈등이 일단락됐다. 회사는 품질·서비스 대응 등을 두고 SK하이닉스와 여러 잡음을 빚었다. 하이닉스에 배치했던 고객서비스 엔지니어 수십명을 철수시키고, TC본더 장비의 가격 인상을 통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이닉스는 복수 공급사로 한화세미텍을 선정해 리스크를 줄였다. 한화비전은 지난 16일 자회사 한화세미텍과 SK하이닉스가 385억 규모 TC본더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같은 날 한미반도체도 하이닉스와 428억 규모 공급계약을 맺었다. 이후 한미반도체는 엔지니어들을 하이닉스에 다시 복귀시키고, 서비스 대응 개선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한미와 한화의 갈등은 되려 심화되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자사 연구원들이 한화세미텍 이직 이후 핵심 기술을 유출했다며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법 위반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한미반도체가 승소했다. 한미는 한화가 자사 특허를 무단 사용해 TC본더 장비를 개발했다는 소송도 제기했다.

한화는 반면 하이닉스에 맞춤 개발했다며 특허 무효 심판을 청구했다. 여기에 한미가 올해 말까지 예정된 아워홈과의 급식 계약을 오는 7월 조기 종료하기로 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아워홈은 한화 계열사의 급식과 식자재 유통 부문을 책임질 핵심 회사로, 최근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부사장이 지분 58.62%를 8695억원에 인수했다.


LG-SK, 소송 이후 배터리 점유율 하락세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양사 분쟁이 과거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연상시킨다는 시각도 있다. LG는 SK로 이직한 인력들로 인해 영업비밀이 유출됐다며 2019년 4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소송을 제기했다. ITC는 2021년 2월 SK이노베이션 배터리의 미국 생산과 수입을 10년 간 금지하는 초유의 판결을 내렸다.

소송 과정에서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회동이 무산된 것과 국내 1심에서 SK가 패소한 점도 한미-한화의 분쟁과 닮아 있다. 양사는 최종 판결 이후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다가 미국 정부의 압력과 우리 정부의 중재로 SK가 2조원의 합의금을 지불하기로 하면서 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분쟁은 끝났지만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다. 소송의 장기화로 피로감이 누적됐고, 결과적으로 중국 배터리 업체의 공세를 막지 못했다. 법률 대응에 자금이 소모된 데다 포드·GM 등 북미 고객사 대응 역량 감소로 저가의 리튬인산철(LFP) 위주로 재편되는 시장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포드·GM 등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 단가를 낮추고자 CATL 등 중국 업체의 LFP 배터리를 채택하기 시작했고, 테슬라도 주력 차 배터리를 중국 LFP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2020년 SNE리서치 기준 배터리 사용량 점유율에서 LG화학은 23.5%, SK이노베이션은 5.4%였으나 올해 1분기 기준으로는 각각 10.7%, 4.7% 수준까지 떨어졌다.   


한미-한화 '하이브리드 본딩' 경쟁력 상실 우려


김동선 한화세미텍 미래비전총괄 부사장(오른쪽)이 지난 2월 '세미콘코리아 2025' 부스를 돌며 기술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한화세미텍)
김동선 한화세미텍 미래비전총괄 부사장(오른쪽)이 지난 2월 '세미콘코리아 2025' 부스를 돌며 기술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한화세미텍)

한미-한화의 소모적인 분쟁도 이같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LFP 위주 재편으로 국내 기업의 점유율이 지속 감소했듯이, 양사가 분쟁에 골몰한 사이 차세대 장비 시장에서 주도권을 상당 부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장비를 구매할 수 있는 고객사는 한정적이라 신뢰 문제에 민감할 수 밖에 없고, 갈등이 장기화되면 결국 서로에게 좋을 게 없다"며 "당장의 TC본더 수주 성과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기술개발이나 인수·합병(M&A)을 통해 미래 장비 경쟁력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실제로 더 높은 집적도와 성능을 요구하는 미래 반도체 공정에서 TC 본딩보다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의 각광이 전망되고 있다. 칩 적층 시 칩과 칩 사이 범프를 형성하지 않고 직접 접합하는 해당 기술은 칩 전체 두께를 줄일 수 있어 고단 적층이 용이하다. HBM3E 16단 이상의 제품에서 필요성이 검토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TSMC는 SOIC를 통해 하이브리드 본딩을 가장 먼저 구현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HBM4 등 선단 HBM 적층 공법에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W2W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 시장은 오스트리아 EVG, 일본 TEL 등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가 최근 지분 9%를 인수한 네덜란드 기업 BESI는 하이브리드 본딩에 필요한 첨단 다이 어태치 장비를 거의 독점 공급 중이며, 홍콩 ASMPT도 미국 핼러 인더스트리와 협력해 관련 장비를 준비 중에 있다.

한미반도체는 올해 말 '마일드 하이브리드 본더'라는 이름으로 관련 장비를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한화세미텍도 최근 차세대 반도체 장비 개발 조직 신설로 하이브리드 본더 기술개발에 집중해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을 선도한다는 계획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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