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벨리온 2대 주주로 AI 가속기 시장 공략
브로드컴에도 HBM 공급, 올해 6세대 양산
SK실트론 웨이퍼 공급망 안정, 신공장 기대
2028년까지 103조원 투자…"'따로 또 같이"

과거 SKT 산하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이었던 사피온의 AI 반도체 X330. (사진=사피온) 
과거 SKT 산하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이었던 사피온의 AI 반도체 X330. (사진=사피온)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SK그룹에서 만든 인공지능(AI) 가속기가 자사 데이터센터에 탑재될 수 있을까. 그룹 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은 없지만 AI 가속기 개발 기업인 리벨리온에 투자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가속기의 핵심인 HBM(고대역폭메모리)을, SK실트론은 반도체의 원료인 웨이퍼를 공급 중이다. 

SK스퀘어도 반도체·ICT 투자 전문회사로 자리 잡은 만큼, 계열사 간 공급망을 강화해 반도체 수직계열화를 이뤄낼 복안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선제적인 투자가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SKT, 리벨리온에 2대 주주로 투자 가속화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오른쪽)와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이사가 리벨리온에 사피온 코리아가 합병되는 본계약을 지난해 8월 체결했다. (사진=SKT)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오른쪽)와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이사가 리벨리온에 사피온 코리아가 합병되는 본계약을 지난해 8월 체결했다. (사진=SKT)

팹리스 스타트업 리벨리온은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AI 가속기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고성능·저전력 AI 칩 개발을 목표로 2023년 데이터센터향 NPU(신경망처리장치) '아톰'을 상용화했고, 삼성전자의 12단 HBM3E가 탑재된 차세대 NPU '리벨'도 올해 선보일 방침이다.

리벨리온의 2대 주주는 SKT다. SKT는 앞서 2020년 데이터센터에 탑재할 수 있는 AI 반도체 'SAPEON X220'를 국내 최초로 출시했고, 2022년 AI 반도체 전문 기업 '사피온'을 분사시켜 AI 가속기 시장을 공략하고자 했다. X220 대비 4배 이상의 연산 성능을 제공하는 'X330'도 이듬해 출시했다. 

하지만 산하 법인 '사피온 코리아'가 글로벌 AI 인프라 경쟁력 제고를 목표로 작년 12월 리벨리온에 합병됐다. 합병 이후 리벨리온 기업 가치는 1조3000억원으로 평가받으며,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등극했다. SKT는 합병 이후 2대 주주로 경영권 없이 투자만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에 위치한 사피온 본사는 제품 개발을 하고 있지 않은 가운데, 리벨리온 하에서 사피온 AI 반도체가 양산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사피온은 내년 HBM과 칩렛이 탑재된 'X440'을 출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에는 경쟁 기업이었지만 현재는 같은 회사인 만큼 최적화를 위해 '리벨' 양산에 보다 몰두할 수 있어서다.

SKT 관계자는 "합병 이후 자사는 투자만 진행할 뿐 리벨리온에 대한 경영권은 행사하지 않는다"며 "X430 등 양산도 리벨리온에서 자체적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리벨리온, 하이닉스와 AI 반도체 협력…HBM 공급 가능성


SK하이닉스가 지난해 9월 공개한 5세대 HBM3E.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9월 공개한 5세대 HBM3E. (사진=SK하이닉스)

향후 리벨리온에 하이닉스의 HBM 공급이 이뤄질지도 관심이다. 앞선 언급대로 리벨-쿼드에는 삼성전자의 HBM이 탑재된다. 다만 하이닉스와도 AI 반도체 관련 협력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추후 공급될 여지는 있다.

앞서 출시 예정인 사피온 'X430' 제품에는 하이닉스의 HBM3E 탑재를 계획 중이며, 국내 팹리스 스타트업 퓨리오사AI가 출시한 2세대 AI 반도체 '레니게이드'에도 하이닉스의 HBM3이 들어가 있다.

하이닉스는 올해 6세대 HBM(HBM4)을 조기 상용화할 예정인 가운데, 엔비디아에 이어 구글, 메타에 AI 칩을 납품하는 브로드컴에도 HBM을 대거 공급하기로 했다. 회사는 이를 통해 AI 반도체 리더십을 이어갈 방침이다. 


日 기업이 장악한 웨이퍼 시장서 SK실트론 약진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2월 1일 경북 구미 SK실트론을 방문해 반도체 웨이퍼 증설 투자 협약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2월 1일 경북 구미 SK실트론을 방문해 반도체 웨이퍼 증설 투자 협약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웨이퍼를 제조하는 SK실트론도 반도체 공급망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동 신에츠 화학, 섬코 등 일본 기업이 장악한 글로벌 반도체 웨이퍼 시장에서 SK실트론은 매출액 기준 4~5위(점유율 12~14%)의 시장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고용량 메모리 등 첨단 반도체에 사용되는 300mm 웨이퍼 기준 시장지위는 3위(점유율 17~19%)로 파악된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업체와 협력을 지속 중이고, 특히 하이닉스 웨이퍼 매입액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SK그룹의 반도체 수직계열화를 상당 부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공장을 방문해 격려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2023년 2월 SK실트론 구미 공장을 찾아 "뛰어난 기술 경쟁력으로 해외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웨이퍼 분야에서 국산화를 이루고, 공급망 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며 "양질의 웨이퍼로 우리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 온 SK실트론의 임직원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SK는 방문에 맞춰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웨이퍼 생산 공정을 증설하기로 했다. 한국신용평가 측은 "주요 고객사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부진으로 구미 신공장 양산 개시가 늦어지고 있으나, 사업경쟁력과 웨이퍼 수요의 구조적인 성장세를 고려하면 중기적으로 양산이 개시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SK스퀘어-하이닉스 시너지, 2028년까지 103조원 투자


지난 1월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CES 2025’에 참석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사진=SK그룹)
지난 1월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CES 2025'에 참석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사진=SK그룹)

SKT에서 인적분할된 투자 전문회사 SK스퀘어도 반도체 관련 포트폴리오를 강화할 방침이다. SK스퀘어는 올해도 무차입 경영을 이어가며 현금성자산을 1.3조원 이상 확보해 AI∙반도체 분야 신규투자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SK하이닉스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투자처를 신중히 물색하고 있다.

SK스퀘어의 '24년 말 현금성자산은 5363억원이다. 올해는 SK하이닉스 배당수익(약3550억원)과 SK쉴더스 잔여 지분매각대금(약5000억원)으로 확보한 현금유입분에, 추가적인 비핵심자산 유동화를 통해 총 1.3조원 이상의 투자재원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SK그룹은 계열사 간 반도체 협력 강화를 위해 작년 7월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 '반도체위원회'를 신설하고,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을 위원장으로 내정했다. 2028년까지 AI와 반도체 분야에 2028년까지 103조원을 투자해 HBM 등 AI 관련 사업 분야에 약 82조원, AI 데이터센터 사업에 3조4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최 회장은 올해 SK그룹 신년사에서 "AI 반도체 기술, 글로벌 AI 서비스 사업자들과 협업하는 역량, 에너지 설루션 등 우리가 가진 강점은 AI 시장의 주요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며 "'따로 또 같이' 정신 아래 SK의 각 멤버사들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함께 만들어내고 고객에게 제공하면 AI 밸류체인 리더십 확보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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