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올해 대형 M&A 가능성…반도체·전장·로봇 등
SK의 'AI 퍼스트'…HBM·에이닷 성과와 탄소중립 잰걸음
현대차 "기술발전 선도·경쟁자와 협력"…5대 신사업 투자
LG "차별적 고객가치 중요"…가전·배터리 등 위기 극복

2025 을사년을 맞이하는 국내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 경제성장률 1%대의 저성장 국면 예상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인상 예고로 수출 기업엔 비상등이 켜졌다. 고환율에 따른 원자재·에너지·운임비 상승은 기업의 수익성 악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500대 기업이 올해 투자를 작년보다 축소할 것이란 응답은 확대할 것이란 응답의 2배를 넘어서며 연구개발(R&D)·벤처 투자 또한 크게 위축될 여지가 커졌다. 이같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기업들의 출구 전략은 어떤 것인지, 올해 주목해야 할 산업은 어떤 것인지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기업인 등이 3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박수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기업인 등이 3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박수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올해 국내 대기업의 신년사를 살펴보면 '위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위기가 아닌 적이 있었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지만, 실제 통계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지난달 기업심리지수(CBSI)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34개월 연속 하락하는 추세다.

인수·합병(M&A) 시장도 위축됐다. CEO스코어가 국내 매출 상위 기업 보고서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M&A 투자규모는 전년 대비 39% 감소했다. M&A 건수도 총 50건으로 전년(87건) 대비 42% 떨어졌다. 미중 갈등, 고환율 ·고금리, 중국 경기 부진에 따른 공급과잉, 통상 정책변화에 따른 고관세 우려 등 위기도 장기화될 조짐이다.

그럼에도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라는 말이 있듯이, 새로운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인공지능(AI) 퍼스트'를 기조로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 창출과 연구개발(R&D) 투자로 위기를 극복할 방침이다. 올해 신년사를 통해 국내 주요 기업들이 주목하는 분야와 투자 흐름을 알아본다.


삼성전자, 100조 현금성 자산 풀까… 반도체·로봇 투자 가속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인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삼성전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인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는 AI 시장 확대에 따른 고부가 메모리 수요로 지난해 흑자를 냈지만 업황 부진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4분기 DS부문의 예상 영업이익을 기존 5조8000억원에서 3조6000억원으로 하향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의 적자 행진, 수요처 부진과 AI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주가 회복에 시간이 걸릴 것이란 우려도 내비쳤다.

삼성전자는 신년사에서 기술력 복원을 강조했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부회장)와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은 올해 임직원에게 보낸 신년사에서 "AI가 만들어가는 미래는 우리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우리 사업의 근간인 기술과 품질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난해 AI와 품질 관련 조직을 한층 더 강화했다. 미래 기술 리더십과 철저한 품질 확보에 만전을 기하자"고 당부했다.

구체적으로 삼성전자는 차세대 AI 칩에 탑재될 HBM4(6세대 고대역폭메모리) 개발을 위해 1c D램 등 최선단 메모리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HBM은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메모리반도체인 만큼 D램 기술력을 높여 최근 제기되고 있는 위기론을 정면돌파한다는 방침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7일 'CES 2025'에서 공개하는 프리미엄 모니터용 QD-OLED 신제품.
삼성디스플레이가 7일 'CES 2025'에서 공개하는 프리미엄 모니터용 QD-OLED 신제품.

디바이스경험(DX) 부문에서는 AI를 통한 사용자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CES 2025'에서 선보일 '삼성 비전 AI'는 사용자의 요구와 취향, 의도를 파악해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출시한 AI폰 '갤럭시 S24'에 이어 갤럭시 AI 적용 기기와 지원 언어도 확대할 방침이다. 가전에선 '스마트싱스'의 초연결 기반의 '비스포크 AI'를 통해 연결성과 사용성을 높이고 있다.

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M&A에 나설 수도 있다. M&A 후보군으로는 헬스케어, 핀테크, 로봇, 모빌리티, 차량용 반도체 기업 등이 언급된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03조776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조원 가량 늘어난 만큼 실탄은 충분하다.

실제로 지난달 말 로봇 기업에 투자를 늘리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868억원을 투자해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지분을 35%로 늘려 최대 주주가 됐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국내 최초로 2족 보행 로봇 '휴보'를 개발한 카이스트 휴보 랩 연구진이 2011년 설립한 로봇 전문기업이다. 삼성전자는 이 회사를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휴머노이드 등 미래로봇 개발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SK "AI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 AI 협업·탄소중립 잰걸음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의장. (사진=뉴시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의장. (사진=뉴시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AI를 강조했다. AI 산업 급성장에 따른 글로벌 산업구조와 시장 재편은 거스를 수 없기에, AI를 실제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따로 또 같이' 정신 아래 SK의 각 멤버사들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함께 만들어내고 고객에게 제공하면 AI 밸류체인 리더십 확보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계열사도 제품과 서비스에 AI를 접목한다. 지난해 AI 칩 선두 주자 엔비디아에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 공급을 이뤄낸 SK하이닉스는 올해 6세대 HBM을 조기 상용화해 AI 반도체 리더십을 이어갈 방침이다. SK텔레콤은 '글로벌 AI컴퍼니' 도약을 위한 AI 개인비서 'A.(에이닷)'을 상용화해 가입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데이터센터도 AI 학습·추론에 특화된 AI 데이터센터로 사업을 전환하고 있다.

AI 협업은 CES에서 구체화된다. 최 회장은 주요 기업관을 관람하며 첨단 AI 기술 트렌드를 점검하고, 글로벌 선도 기업들과 만나 AI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협력 강화에 나설 예정이다. SK 전시관도 ▲AI DC(데이터센터) ▲AI 서비스 ▲AI Ecosystem 등으로 구성돼 관람객들이 실제 다양한 AI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도록 시연 중심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탄소중립 기조도 펼친다. 지난해 SK E&S를 합병한 자산 105조원의 SK이노베이션은 석유에너지와 화학, LNG(액화천연가스), 전력, 배터리, 신재생에너지 등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탄소 다배출 업종을 영위하는 회사이지만 강력한 탄소 감축 의지를 기반으로 매년 탄소중립 로드맵을 발표하고, 전사적 목표 달성 현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현대차, 전기차·수소·UAM·로봇·자율주행 투자… 토요타와 협력 가능성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6일 경기 고양시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2025 현대자동차그룹 신년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6일 경기 고양시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2025 현대자동차그룹 신년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혁신을 향한 의지의 표현으로 올해 최초로 외국인 CEO를 선임했다"며 "혁신을 향한 굳은 의지는 조직 내부를 넘어 외부로도 힘차게 뻗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산업 패러다임 변화와 기술 발전을 선도하고, 핵심 분야에 과감히 투자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경쟁자와도 전략적으로 협력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이 이끈 현대차그룹은 창사 최대 실적을 예고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 컨센서스(실적 전망치 평균)에 따르면 현대차그룹(기아 포함)의 작년 매출은 279조9141억원, 영업이익은 28조1926억원으로 집계돼 전년 대비 각각 6%, 영업이익은 5%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정 회장은 "작년에 잘 됐으니 올해도 잘 되리라는 낙관적 기대를 할 여유가 우리에게 없다"며 혁신 의지를 내비쳤다.

주력 분야는 전기차·수소·UAM·로봇·자율주행 등이다. 전기차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따른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 우려에도 품질을 높여 미국 기업보다 경쟁력을 확보할 방침이다. 수소에선 작년 현대모비스의 국내 수소연료전지 사업을 인수한 만큼 R&D에 힘을 실을 복안이다. 도심항공교통(UAM)도 상용화를 목표로 올해 2단계 실증과 KT 등 기업과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21년 미국 로봇 전문 기업인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공식 인수했다.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은 지난 2021년 미국 로봇 전문 기업인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공식 인수했다. (사진=현대차그룹)

로봇 분야에선 1조원을 들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지분율을 유상증자를 통해 기존 80%에서 85%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작년 11월에는 첫 산업용 웨어러블(착용형) 로봇 '엑스블 숄더'를 공개했다. 자율주행은 자회사 모셔널의 적자에도 유상증자 등을 통해 힘을 실어주고 있다. 모셔널은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레벨4에 부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할 포부를 내비쳤다. 

경쟁 회사와도 협력을 열어둔 만큼 토요타 등 기업과 수소 등 신사업 분야에서 손을 잡을 수 있다. 실제로 정 회장은 지난해 하반기 토요다 아키오 토요타자동차 회장과 두번이나 회동 자리를 가졌다. 정 회장은 기자들과 만남에서 "수소 쪽을 얘기해서 같이 좀 잘 협력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LG, 가전·디스플레이·배터리 위기에… "차별적 고객가치 중요"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달 19일 구성원들에게 보낸 신년사에서 LG의 창업초기 Day 1부터 이어 온 도전과 변화의 DNA를 강조하고 있다. (사진=LG그룹)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달 19일 구성원들에게 보낸 신년사에서 LG의 창업초기 Day 1부터 이어 온 도전과 변화의 DNA를 강조하고 있다. (사진=LG그룹)

구광모 LG 대표이사는 올해 신년사에서 "최고의 고객경험 혁신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차별적 고객가치에 대한 몰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남들과 다르게'의 수준을 넘어 새로운 생활 문화의 대명사가 되는 가치로, 구 대표는 트롬 스타일러와 건조기, 전기차 배터리, 올레드 등 사례를 소개했다.

LG그룹 사업의 불확실성은 높아지는 추세다. LG전자의 경우 트럼프 당선인의 보편 관세 부과 방침에 따라 세탁기 등 가전에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에 준하는 조치가 재연될 수 있다. LG디스플레이는 LCD(액정표시장치)에 이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까지 중국 업체의 약진 속에 점유율을 내주며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도 IRA 축소로 인한 보조금 삭감 우려가 존재한다.

구 대표가 '차별적 고객가치'를 언급한 맥락도 이와 맞닿아 있다. LG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고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생존을 넘어 시장을 주도하고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차별적 고객가치를 만들기 위해 전력을 쏟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LG에선 LG전자가 지난해 적극적인 M&A를 추진했다. 지난해 7월 네덜란드 스마트홈 플랫폼 앳홈을 인수한 데 이어 미국 자율주행 로봇 스타트업 베어로보틱스에 6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올해도 AI, 전장, 로봇 등 분야에 투자를 단행할 수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광저우 LCD 법인 지분을 매각해 2조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했다. 해당 자금은 올해 OLED 기술 고도화에 투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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