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월풀 비호하며 LG전자 비판 선례
과거 세탁기 세이프가드 재현 우려
멕시코 제품 관세 25% 부과로 현실화
몬테레이 냉장고 라인 테네시 공장 이전 유력
도널드 트럼프 47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9일(현지 시간) 취임했다. 보편관세 부과, 전기차 보조금 폐지, 2차 전지(배터리) 세액공제 축소, 반도체 현지 생산, 망 중립성 폐기 등 국내 주요 업계에 타격이 예상된 가운데, 국내 기업의 대응 전략을 살펴본다.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한국 기업들이 노골적인 불공정무역을 통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인 2020년 8월 오하이오주 북부의 월풀 세탁기 공장을 방문해 이같이 주장했다. 해당 공장은 당시 약 3400명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는 세계 최대 수준의 세탁기 공장이었다. 월풀은 1911년 미시간 주에서 설립된 미국 토종 가전기업으로, 세탁기·냉장고 등 백색 가전이 주력이다.
여전히 '자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금 월풀을 밀어줄 수 있다. LG전자가 2021년부터 월풀을 제치고 전 세계 생활가전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LG전자를 괴롭혔던 세탁기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의 배경에도 월풀의 견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LG전자는 멕시코 생산라인의 미국 이전을 검토한다는 입장인데,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제조업·일자리·美 우선주의…트럼프와 내통하는 월풀
월풀은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 최대 가전 기업 중 하나다. 세탁기·건조기, 냉장고, 에어컨, 공기청정기 등 생활 가전 외에도 미국인들의 가정 필수품인 오븐과 전자레인지 등 주방가전도 취급하고 있다. 한국에도 월풀코리아라는 법인을 세워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현재는 사실상 유일한 미국 가전 업체인데,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제너럴 일렉트릭(GE)의 백색가전 부문이 지난 2016년 6월 중국 최대 가전업체 하이얼에 54억달러(현재 환율로 약 7조7603억원)에 매각됐기 때문이다. 하이얼은 미국 내 법인 GE어플라이언스를 세워 중국 이미지를 희석시키긴 했지만, 미국 가전 업체가 중국에 넘어갔다는 사실은 씁쓸한 뒷맛을 선사했다.
월풀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블루 칼라(육체 노동자)에 소구할 수 있는 기업이다. 토종 제조업 기업으로 일자리를 늘리면 블루 칼라들의 지지를 끌어올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장 방문 당시 "'미국 내 생산(Made In USA)'이란 영광스러운 문장을 새기고 있는 여러분 모두를 만나야 했다"며 이들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막무가내 관세에 美 테네시 주 세탁기 공장 건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ITC는 한국 등 국가의 경쟁 기업이 미국 시장에 세탁기를 덤핑한 혐의에 대해 유죄라고 결정하고 79%라는 높은 반덤핑 관세를 매겼다"고 밝혔다. 미국 상무부는 2013년 2월 LG전자가 미국에 수출하는 세탁기에 13.2%의 반덤핑·상계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2016년 세계무역기구(WTO)가 덤핑이 아니라는 최종 판정을 내렸음에도 관세는 계속 부과했다.
더 나아가 2018년 1월엔 외국 수입 가정용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미국 측 세이프가드는 용량 10㎏ 이상 대형 세탁기에 대해 연간 120만대까지는 20%의 관세를 매기고, 초과하는 분량에 대해선 50%가 넘는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이었다. 세탁기 부품 역시 5만개를 넘기면 50%의 관세가 붙었다.
세이프가드 발동은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LG 세탁기에 대한 월풀의 견제 심리가 먹힌 탓도 있었다. 한국은 WTO에 세이프가드의 부당함을 제소해 2023년 5월 승소했지만, LG전자는 이미 미국 내 공장을 완공해 세탁기를 생산하고 있었다.
LG전자는 세이프가드 발동 전인 2017년 2월 미국 테네시에 7만4000㎡규모의 세탁기 생산공장을 설립하기로 하고, 테네시주와 투자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2019년 공장이 완공돼 현재 세탁기 120만대, 건조기 60만대 가량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이프가드 대신 멕시코 관세? "테네시에서 냉장고 생산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이 '세이프가드' 카드를 다시 꺼내들 수도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에 따르면 2023년 미국 생활가전 시장 점유율 1위는 삼성전자(21%), 2위 LG전자(19%)였고 월풀은 GE(16%) 다음인 4위(15%)에 그쳤다. 미국 소비자가 구매할 때 고려하는 브랜드에서도 28%로 삼성전자(32%)와 LG(29%)에 밀렸다.
이 경우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세탁기가 아닌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냉장고에 세이프가드를 취할 수 있다. 시장 조사기관 글로벌 트레이드 아틀라스의 '미국 내 냉장고 수입 동향'에 따르면 멕시코에서 수입하는 비율은 2021년 48.8%에서 2023년 57.4%로 높아지는 추세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 제품에 이르면 내달부터 25%의 관세를 매기기로 하면서 냉장고에도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한 것과 다를 바가 없어졌다.
이에 LG전자는 멕시코에서 만드는 냉장고를 테네시주 공장에서 생산하는 방식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공장 뒤편에 이미 추가 부지를 확보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인건비 등 비용은 증가할 전망이다. 가전 제품은 매출액에서 인건비 비중이 높은 편인데 미국의 평균임금은 멕시코의 4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멕시코보다 높은 인건비를 가진 테네시 주 공장에서 수익성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인 셈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스윙 생산체제(생산량 조절), 생산지 조정 등을 통해 시장 변화에 대응할 계획"이라며 "직면한 이슈 별로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최적의 대응책을 찾는 플레이북을 준비해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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