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수출기업 고민을 듣는다:반도체 산업' 간담회 개최
공급망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 주도의 산업단지 구축
국내 소부장 육성을 위한 테스트베드(시험 무대) 조성
인력 양성 지원과 주 52시간 규제 철폐 등 지원 호소
도널드 트럼프 47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이 초읽기에 들어섰다. 관세 폭탄과 전기차 보조금 폐지, 반도체 현지 생산, 망 중립성 폐기 등 국내 주요 산업계에 타격이 예상된 가운데, 국내 기업의 대응 전략을 살펴본다.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트럼프 당선인은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면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아도 미국에 팹(Fab, 반도체 제조시설)을 지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에 핵심 광물 수출 금지, 엔비디아 반독점 조사 등을 추진하고 있는데 양국의 강대강 정책에 국내 기업의 피해가 우려됩니다."
이안재 삼성글로벌리서치 부사장은 13일 국회의원회관 정책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트럼프 2.0시대 수출기업 고민:반도체 산업'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 부사장은 "국내 기업에 관세 부과 등 차별적 조치가 부과되지 않도록 지원이 필요하다"며 "미중 패권경쟁의 희생양 되지 않고 중국의 팹에서도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신경 쓰고 지원해주길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공급망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 주도의 산업단지 구축 ▲국내 소부장 육성을 위한 테스트베드(시험 무대) 조성 ▲인재 확보 위한 취업 지원과 주 52시간 규제 철폐 등 크게 세 가지 축에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최대 적국은 중국… "中 공급망 100% 배제 가능성"
트럼프 당선인 2기 무역 체제에서 최대의 적은 단연 중국이다. 트럼프 당선인 1기 시절 미국 국방부는 최상위 지침인 국방전략보고서(NDS)에서 1순위 위협을 러시아가 아닌 중국으로 지목했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당선인은 전기차, 철강 의약품 등 중국 제품에 고관세를 예고했다"며 "대중 관세는 중국의 성장률을 0.5~2% 낮추는 효과가 있지만 미국 물가 상승이라는 부정적 요소도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자국으로 다시 생산시설을 옮기도록 하는 리쇼어링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인텔·마이크론 등 미국 기업 간 협력을 통해 자국 위주로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할 방침이다. 보조금도 미국산 장비·부품 사용과 전문 인력을 미국 대학가에서 육성하는 등의 조건 충족 시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정 위원은 "국내 기업이 반도체 제조에 있어 이용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 위원은 또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를 최대 적국으로 설정한 만큼 중국을 공급망에서 완전히 배제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트럼프 당선인은 아예 공급망에서 배제할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경우 중국에서 생산한 반도체는 미국에 수출 시 고관세가 부과되며, 동맹국 등과 다자화 수출 통제를 추진할 수 있다. 가령 엔비디아는 GPU A800를 중국용으로 우회 수출했지만 통제 조치로 인해, 중국 팹리스 업계가 GPU를 직접 설계해 TSMC에 생산을 위탁하기도 했다.
단순히 중국의 피해만 있는 게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중국 시안과 우시에서 각각 낸드플래시와 D램의 상당량을 생산하고 있는 만큼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산업용 전기 요금을 인하해 생태계도 강화하고 있다. 정 위원은 "중국은 자국 기업 위주로 공급망을 재편해 국내 기업의 점유율이 0%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경우 국내 기업이 중국 시장을 철수할 수 있지만, 팹을 국내와 미국으로 다 옮길 수가 없기에 생태계가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위원은 국가 산업단지를 적극 조성해 진입장벽을 낮추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만은 TSMC가 사용할 산단을 국가가 개발해 땅을 살 돈으로 기술과 장비에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며 "첨단 공정 개발에 돈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만큼 이 방식이나 외국 기업 투자 유치를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삼성·SK하이닉스 국내 소부장 기피…테스트베드 구축해야"
앞서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 초격차 확보를 위해 2030년까지 총 171조원을 투자하고 생산라인 구축과 첨단 파운드리 공정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시스템 반도체는 팹리스(설계), 파운드리(위탁생산),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패키징(후공정)으로 나뉘는데, 제조에 필요한 소부장에서 국내 경쟁력이 미약해 위기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우리나라가 반도체 1위 제조국가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뛰어난 반도체 장비, 소재를 썼기 때문인데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며 "소부장 강국인 미국, 일본, 유럽은 반도체 제조 시설이 없었는데 현재 제조시설을 짓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렇게 되면 우리에게 가장 먼저 소재와 장비를 공급하던 업체들이 우리보다 자국에 우선으로 공급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 전무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이 61%를 점유하고 있지만, 장비 시장은 미국이 46%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외국 장비에 대한 의존도도 심화될 수밖에 없는데 국내 기업이 장비를 개발하려 해도 후발주자라 투자 규모가 적기 때문"이라며 "기업의 투자 여력도 부족한데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야하는 현실이기에 국회 차원에서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위기 요인만 있는 건 아니다. 국내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팹이 많이 위치한 만큼 소부장을 검증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안 전무는 이를 넘어 패키징에서도 테스트베드를 통한 실험 환경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지방에 연구소를 지으면 기피 현상이 심해 수도권에 지어야 하는데 이 경우 규제가 심하다"며 "규제 완화를 부탁드린다"고 제언했다.
기업이 국내 소부장을 쓸 수 있도록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안 전무는 "삼성·SK하이닉스는 첨단 공정을 위해 세계 최고 장비를 쓸 수 밖에 없어 국산을 쓰는 게 꺼려진다고 한다"며 "인센티브를 제공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반도체를 안보 산업으로 인식해서 여러 가지 법과 정책으로 지원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성혁 산업통상자원부 첨단산업정책관은 "삼성·SK하이닉스가 국내 소부장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면서 "작년 말에 정부·하이닉스·지자체가 약 1조원을 투자해 용인 산단에 트리니티 팹(소부장 검증 테스트베드)을 구축하도록 하는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시켰다"고 전했다.
전문 인력 품귀… "연구시간 확충·특별연장근로 간소화 필요"
이날 참석자들은 반도체 전문 인재의 품귀 현상이 심각하다며, 개발 환경에선 주 52시간 근무제의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안 전무는 "국내 소부장 기업에 취업하려는 청년들이 많지 않다고 들었다"며 "연구하는 시간을 늘려야 외국 기업들을 따라갈 수 있는 만큼 반도체 종사 인원이 군인처럼 일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부사장은 TSMC의 성공엔 R&D 인력의 24시간 교대근무를 통해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 문화가 있다고 바라봤다. 엔비디아도 새벽까지 근무를 하고 주 80~100시간 근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기업과 협력해야 하는 국내 입장에서도 특별연장근로와 인가절차 간소화 등 지원이 있어야 CAPA(생산 능력)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다는 것이다.
TSMC가 패권을 가진 시스템반도체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데 우리나라는 1~3의 점유율로 경쟁력이 낮은 편이다. 이 부사장은 "최선단 공정 전환에 최소 2~3년의 시간이 소요되고, 양산 직전 6개월은 집중 근무가 필요하다"며 "대만 TSMC를 추월하려면 적시에 투자와 야근, 주말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에선 13만명의 반도체 인력 부족을 예상하며 2031년까지 반도체 전문인재 15만명을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윤 정책관은 ▲반도체 특성화대학원 6개교(성균관대·카이스트·울산과기대·경북대·포항공대·한양대) 지정 ▲현장 인력 교육 위한 '반도체 아카데미' 운영 등을 계획을 제시했다.
김원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간사(민주당)는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계 전문직을 쫓아내고 있다는 말이 있는데 미국에서 쫓겨난 이들에 대해 특례를 고민해보자는 고동진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말이 있었다"며 "비록 당은 다르지만 이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 "전부 지원에 대한 기재부 반발 설득 필요"
한편, 이날 국회에선 지원을 위한 예산 확보에서 기획재정부의 반발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김 간사는 "정부와 지자체가 국가 산단을 만들어서 전력, 용수, 도로를 전부 지원하도록 합의했는데 기재부가 전부 지원에 대해 반발하고 있어 어떻게 설득할지가 문제"라고 밝혔다.
간담회를 주재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경제안보특별위원회 위원장도 "기재부의 반발로 전부 지원할 것인지 일부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정부 내 논의가 있다"고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환영사에서 "반도체 산업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하나 반도체는 여전히 우리의 강력한 무기"라며 "반도체 산업이 다시 새로운 신화를 써내려갈 것이라 믿고 응원한다"고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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