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500곳, 내년 투자 미정·축소 비율 높아
경기 둔화·고환율·공급망 리스크에 투자 위축
멕시코 관세 예정대로 부과 시 국내 기업 타격
韓 '부자 나라'로 지칭… 반도체 수출도 타격 우려
계엄에 컨트롤타워 부재… 고환율 상황도 점검 필요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고환율 인플레이션 등 대내외 경제환경이 악화되면서 기업들이 내년 투자 계획을 정하지 못하거나 투자를 줄이는 등 기업 경기의 위축이 이어지고 있다.
이웃국가·동맹국에도 고관세를 예고한 트럼프 행정부 출범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투자를 결정하는 데 변수가 되는 관세·인플레이션감축법(IRA)·반도체 수출규제 등 협상에 컨트롤타워 공백으로 인해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내년 투자 감소 응답이 투자 증가 응답 2배
9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하여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68%는 내년도 투자계획을 아직 수립하지 못했거나 투자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계획 미정'(56%) 기업 비중은 지난해 조사(49%) 때보다 6%p 늘었고 '계획 없음'(11%)도 지난해(5.3%) 대비 6%p 늘었다.
투자계획을 수립한 기업(32%)도 내년 투자를 올해보다 줄일 것이란 응답(28%)이 늘릴 것이란 응답(12.8%)의 2배 이상이었다. 지난해에는 증가(28%) 응답이 감소(10.2%) 응답보다 많았는데 한해 사이 역전된 것이다.
경기 둔화·고환율·공급망 리스크에 투자 위축
기업들은 내년도 기업 투자에 큰 영향을 미칠 주요 리스크로 ▲글로벌 경기 둔화(42%)를 ▲고환율 및 물가상승 압력(23.0%) ▲보호무역주의 확산 및 공급망 교란 심화(13.7%)를 들었다.
한경협 측은 "내년도 글로벌 경기가 올해보다 소폭 둔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며 "기업들은 보호무역주의 심화에 따른 글로벌 교역 위축, 지정학적 리스크 지속에 따른 공급불안 등 경제 하방 위험에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멕시코 관세 부과 시 국내 기업 타격… 韓 '부자 나라'로 지칭
이런 가운데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첫날 이웃 국가인 멕시코와 최우방국인 캐나다 상품에 25%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위협했다. 이는 무관세가 적용되는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위반이라 더욱 논란이 돠고 있다.
멕시코는 무관세를 이점으로 외국 기업들을 유치해 중국을 제치고 최대 대미 수출국으로 발돋움했다. 삼성전자·기아자동차·LG전자·포스코 등 한국 기업들도 멕시코에 공장과 법인이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말이 실현될 경우 타격이 클 수 밖에 없다.
트럼프 당선인은 동맹국인 한국 또한 '부자 나라', '돈 버는 기계'로 칭해왔다. 주한 방위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수사적 표현으로도 볼 수 있지만, 관세 부과에도 똑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미국의 한국 무역수지 적자는 445억 달러(약 63조원)에 달하는 만큼 '부자 나라'인 한국이 관세를 더 부과해야 한다는 논리다.
"반도체에 관세 부과하자" 반도체 수출도 타격 우려
우려는 현실이 될 수 있다. 반도체가 그 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10월 인터뷰에서 "미국에 오는 반도체에 많은 관세를 부과하자는 것"이라며 "반도체 기업은 매우 부유한 기업들이다. 그들은 우리 사업의 95%를 훔쳤고 그게 지금 대만에 있다"고 주장하며 가장 대표적인 예로 TSMC를 언급했다.
대만 외에 삼성전자 등 기업이 언급될 수도 있다. 삼성전자도 TSMC만큼 많은 보조금을 지원받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법에 따라 최대 TSMC 66억달러(약9조4782억원), 삼성전자 64억달러(약 9조1910억 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말대로 반도체에 관세가 부과된다면 반도체 기업에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에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반도체를 수출할 수 없도록 하는 미국 당국의 규제까지 겹치면 반도체 수출에 비상이 걸릴 수 밖에 없다.
자동차·배터리 등 핵심 산업도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제품은 미국서 만들어라"는 기조를 펼치고 있는 만큼, 미국 현지 투자를 강하게 압박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보조금을 주는 IRA 축소를 시사하는 등 기업들이 투자에 뛰어들 유인은 줄어들고 있다.
계엄에 컨트롤타워 부재… '고환율 상황' 점검 필요
이런 가운데 계엄 등 국내 정치 상황이 관세 협상에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한국이 정치적 혼란에 빠지면서 한국의 증시는 인공지능(AI) 열풍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주요 기술 경쟁국인 대만에 더욱 뒤처질 위기에 처해 있다"며 "내년에 양국은 트럼프의 관세 위험에 직면했는데 투자자들은 미국 기업들이 대만의 기술에 의존하는 만큼 덜 취약하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교와 통상을 담당하는 컨트롤타워 부재도 이어질 전망이다. 현재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나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대외일정을 최소화하고 있고, 차관들도 정해진 출장을 보류하거나 조기 귀국하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당선인 취임 이후의 한미 정상회담과 고위급 대화도 연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고환율 등 리스크 대비에 나서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4일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 "국내외 상황이 긴박하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각사 사장들은 비상경영상황에 준하는 인식을 가져야 하며, 특히 환율 등 재무 리스크에 대해 집중적으로 점검해달라"고 주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