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한화 TC본더 갈등 본질은 '솔벤더'
한미 '슈퍼 을' 우려 속 공급망 다변화 선택
하이닉스도 엔비디아 '슈퍼을'…다각화 가능성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솔벤더(독점 공급)는 기본적으로 위험성이 큽니다. 가격 협상력 약화, 기술 의존 등 리스크가 있어 이미 HBM 생산에 필요한 수십종의 장비는 듀얼벤더 등 다각화에 나선 상황입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최근 고대역폭메모리(HBM) 열압착장비(TC 본더) 수주와 관련한 여러 잡음에 대해 이같은 의견을 밝혔다. HBM은 베이스 다이 위에 D램을 적층한 뒤 실리콘관통전극(TSV) 기술로 미세한 통로를 뚫어 수직연결해 만드는 첨단 메모리다.
TSV는 2개 이상의 칩을 수직 관통하는 전극을 형성해 칩 간 전기적 신호를 전달할 수 있어, HBM 성능을 높이면서 크기는 줄일 수 있는 핵심 기술이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TSV 기술로 20나노급 D램을 4단 적층해 HBM을 최초 개발했다.
TC본더는 TSV를 통해 가공이 완료된 반도체 칩을 회로 기판에 접합하는 후공정 장비다. 고온·고압 환경을 조성해 정밀한 접합이 가능하며, 수율과도 직결돼 중요성이 높다.
'슈퍼 을 우려' 한미반도체와 잡음
한미반도체는 2017년 SK하이닉스와 '듀얼 TC 본더'를 개발해 장비를 단독 공급해왔고, 지난해 10월에도 1500억원 규모의 TC 본더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장비 품질·서비스 대응 등을 두고 SK하이닉스와 여러 잡음이 빚어졌다. 업계에 따르면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에 배치했던 고객서비스 엔지니어 수십명을 철수시키고, TC본더 가격도 20% 이상 인상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한화세미텍을 복수 공급사로 선정할 것이란 소식이 나오면서 한미반도체는 엔지니어들을 다시 복귀시키고, 서비스 대응 개선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복수 공급사 선정 소식은 지난 16일 한화비전이 자회사 한화세미텍과 SK하이닉스가 385억 규모 TC 본더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하면서 확정됐다. 같은 날 한미반도체도 하이닉스와 428억 규모 공급계약을 맺었다.
"솔벤더 위험 중요하게 인식…일종의 예행연습"
TC본더 수주를 둘러싼 잡음은 일단락됐지만, SK하이닉스는 당장의 잡음보다 솔벤더에 대한 위험을 더 크게 인식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미반도체가 극자외선 노광(EUV) 장비를 독점공급하는 ASML처럼 '슈퍼 을'이 될 시 가격 협상력이나 서비스 대응에 있어 주도권을 상당 부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다.
한미반도체가 '슈퍼 을'이 될 때 겪을 수 있는 일을 미리 경험했다는 점에서 이번 잡음이 SK하이닉스 입장에선 다행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반도체는 장비 산업으로 불릴 만큼 장비에 대한 의존도가 큰데, HBM 수율과 공급망 안정을 위해 듀얼벤더 이상으로 고객사를 늘리는 건 필수"라며 "솔벤더 위험에 대한 예행연습이라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 높은 집적도와 성능을 요구하는 미래 반도체에는 TC 본딩보다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의 각광이 전망되면서 구도가 더욱 변화될 수 있다. 칩 적층 시 칩과 칩 사이 범프를 형성하지 않고 직접 접합시키는 이 기술을 적용하면 칩 전체 두께가 얇아져 고단 적층이 가능하다. HBM3E 16단 이상의 제품에서 필요성이 검토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하이닉스도 엔비디아의 '슈퍼 을'
HBM4 등 선단 HBM도 솔벤더보다 듀얼벤더 형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HBM 구매에서 엔비디아의 비중은 73%(전년 58%)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며, 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HBM3E을 독점공급하며 사실상 '솔벤더'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회사는 앞서 지난 3월 HBM4 12단 샘플을 지난 3월 엔비디아에 제공하며 독점 공급할 채비를 갖췄다. 엔비디아 입장에선 HBM4 등 선단 제품에서 '슈퍼 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삼성전자·마이크론 등 기업의 퀄 테스트를 바랄 수 있는 대목이다.
SK하이닉스는 경쟁 기업의 HBM 생산능력(CAPA) 확대 방침에도 시장에서 자사 패권은 유지될 것이란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는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올해 공급할 HBM 물량은 이미 확정됐고, 내년 물량도 고객사와 긴밀한 대화 통해 상반기 중 확정될 것"이라며 "전통 메모리와 다르게 공정 연구 시간이 길다는 걸 고객사가 잘 알고 있어 오히려 가시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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