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이면에 자리한 과도한 근무시간
극단적 선택·이직 증가 등 부작용
"최대 실적에도 근무환경 개선 요원"
"경쟁환경 바람직"…하반기 2나노 양산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TSMC의 성공 신화 이면엔 월급 100만원 가량의 수많은 계약직들의 피땀눈물이 있습니다. 소수만 정규직 전환을 해주는 형식이라 피터지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며, 주 80시간까지도 일합니다. 대만 경제의 TSMC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 지적하기도 힘든 현실입니다." (대만 팹리스 기업 개발 엔지니어 A 씨)
폭스콘 뒤흔든 극단적 선택…애플 리스크로 비화
2010년 5월, 대만 기업 폭스콘의 정저우(중국) 공장에서 18명의 근로자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다. 14명이 사망했고, 4명은 목숨은 건졌지만 큰 상해를 입는다. 이들은 농촌에서 상경한 25세 이하의 젊은 청년이었다.
12~14시간 이상의 장시간 근무, 고강도의 반복 작업, 월 100달러 수준의 낮은 임금, 폐쇄적인 기숙사 생활로 인한 고립감, 성과 압박 등에 시달리는 등 스트레스가 누적됐다.
폭스콘의 기업 이미지는 크게 실추됐고, 애플도 큰 타격을 입었다. 폭스콘은 최대 고객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애플이다. 애플은 실리콘밸리에서 제품 연구개발을 진행하지만 생산은 외주업체에 전량 위탁생산을 맡기고 있다.
폭스콘은 아이폰·아이패드·맥북 등 애플의 주력 제품을 생산하며 크게 성장했다. 현재도 아이폰 전체 물량의 70% 가량을 생산한다. 과거 선전에 이어 청두, 충칭 등 중국 공장을 늘리며 고용을 확대했고, 중국 정부 또한 인프라 구축 비용을 지원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노동 착취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힌 이후 폭스콘은 최대 2배의 임금 인상과 임직원 심리상담 등 노동환경을 개선한다고 밝혔다. 애플은 "40만 명에 달하는 공장 직원들의 수를 감안하면 미국 전체 자살율보다 낮다"라며 책임을 회피하면서도 공급망 안에서 자행되는 인권 유린에 대해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미성년자 실습생의 초과근무, 근로자 자살 사고 등 여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22년 정저우 공장에선 열악한 근무조건과 코로나19 방역 미비 등을 이유로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상명하복, 과도한 근무시간…자유경쟁하는 문화 필요"
TSMC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명하복을 강요하는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주당 60~80시간에 달하는 과도한 업무량, 무노조 경영 등의 문제로 대만의 시민·노동 단체들은 근로 환경 개선을 촉구했다.
최근에는 미국 애리조나, 독일 드레스덴 공장 파견 인력에 저임금을 책정해 논란을 빚었다. 영어와 독일어 구사가 가능한 어학 전문 엔지니어를 선발함에도 평균 연봉은 75만 대만달러(약 3438만원)로 책정했다. TSMC 해외 공장은 연간 수천억원대의 적자로 현지 연봉을 맞춰주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해진다.
두 기업은 지난해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TSMC는 지난해 연매출 2조8943억대만달러(132조원), 순이익 1조1733억 대만달러(53조원)로 사상 최대였다. 폭스콘은 지난해 매출 2조1300억대만달러(97조원), 올해 1분기 매출은 1조6400억대만달러(75조원)이었다. 인공지능(AI) 붐에 따른 AI 칩 수요 증가와 클라우드·네트워크 제품 부문 매출 증가가 호실적을 견인했다.
그럼에도 고강도의 근무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젊은층의 기피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A 씨는 "계약직을 갈아넣어 경쟁시키는 현재의 문화가 워라밸을 중시하는 젊은층에게도 소구가 될지 의문"이라며 "세계 1위라는 자부심과 높은 연봉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입사하지만 최근 이직률이 높아진 것도 이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삼성전자 직원들의 SK하이닉스 이직 러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SK하이닉스의 근무 환경이 개선되면 삼성전자도 근로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대만은 TSMC의 독점 시장 형태를 띠고 있어 이같은 구조가 정착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A 씨는 "TSMC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선 막강한 경쟁 기업이 있어야 하는데 대만에선 그만한 기업이 없다"며 "빅테크 인재들과 교류하고, 이들 기업들의 사고 방식을 배울 수 있는 실리콘밸리 이직이 각광받고 있고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하반기 2나노 양산…삼성전자도 건곤일척
한편, TSMC는 올해 하반기 2나노(nm) 공정에서 제품을 양산할 방침이다. 업계에 따르면 TSMC는 고객사를 상당 부분 확보했고, 첫 고객은 애플로 예상되고 있다. 궈밍치 대만 TF인터내셔널증권 애널리스트는 2나노 제품의 시험생산 수율을 70% 이상으로 분석한 바 있다.
삼성전자도 3나노부터 적용한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기술을 2나노에 적용해 올 하반기 양산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은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파운드리는 3나노와 2나노 등 선단 공정에서 PPA 개선을 통해 고객을 확보함과 동시에 성숙도를 확보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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