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 = 도기천 기자] 지난 15일, 공식활동 만료 보름을 남긴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은 마지막 정리 작업에 분주해 보였지만 분위기는 침통했다. 책상을 정리하던 익명의 조사관은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2005년 12월 출범한 이후 현대사의 수많은 사건들을 다뤄왔으며,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 희생의 진실을 규명,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한계도 많았다. 그동안 위원장이 3번이나 바뀌었으며, 진실 규명을 통해 요구된 권고사항 이행이나 후속 조치가 정부의 무관심으로 인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유족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또 정치환경 변화에 따라 내부적으로 갈등을 겪기도 했다.
지난 1일 위원회의 마지막 공식행사인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에서는 유족회가 위원회의 조사내용이 미흡하다며 따로 추모제를 열어, 결국 두 군데서 행사가 진행되는 씁쓸함을 맛보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는 지금 5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최종보고서를 작성 중이며, 올해 말 발표를 끝으로 완전히 문을 닫게 된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진실화해위의 발자취를 짚어봤다.
진실화해위는 노무현 정부 때 과거사 청산 바람을 타고 2005년 5월 제정된 '과거사정리기본법'에 근거해, 일제 강점기와 광복 이후 있었던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통령과 국회가 추천한 15명의 위원과 200여명의 조사관으로 구성됐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5년여 동안 논란이 됐던 과거사건 11,174건을 접수 및 직권조사해 이 가운데 8,468건(75.4%)에 대해 ‘진실이 왜곡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유형별로 6·25 전쟁 때 국군·미군 등에 의한 민간인 희생과 관련한 신청이 8,175건 접수돼 가장 많았고, 빨치산·공비 등에 의한 테러나 폭력 사건이 1,761건, 인권침해 661건, 항일독립운동 관련 274건 등이었다.
위원회는 중앙정보부의 광고탄압에 굴복해 134명의 기자를 해고한 ‘동아투위’ 사건, 군사독재에 맞서던 교사들을 이적단체로 조작한 ‘오송회 사건’, 6.25당시 국군과 빨치산 등의 대량양민학살 사건,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등 한국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 대부분을 조사했다. 이 중 160여건에 대해 정부에 시정을 권고했으며, 재심을 권고한 59건 가운데 20여건은 무죄로 확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일부 사건들은 아직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마무리되지 않은 역사
그러나 아쉬움도 많았다. 전체 조사대상 사건 중 2198건(19.7%)은 각하, 취하, 이송, 중지 등의 결정이 내려졌다. 유가족 등 사건 신청자들이 이에 불복, 이의를 신청해 마무리되지 않은 사건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실화해위에서 꼬박 5년을 근무해온 익명의 조사관은 “최소한 이의신청건에 대해서는 국가가 답변을 해줄 의무가 있으며 그것이 ‘과거사정리법’의 취지”라고 꼬집었다. 그는 “오랜 세월 고통받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원히 역사 속에 영원히 묻히게 될지도 모른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진실화해위가 진상을 밝혀낸 대표적 사건들을 꼽아보면, 우선 1959년 간첩 혐의로 사형당한 조봉암 선생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사실을 밝혀내 국가에 조 선생과 유족에게 사과하고 피해 구제와 명예 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1981년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장관 등 지식인 25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 등 실형을 선고받았던 이른바 '학림(學林)' 사건도 수사기관의 고문 등을 통해 조작됐다는 조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전두환 정부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조작한 사실을 관련자 증언 등을 통해 확인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진실규명했으나 법원에서 “패소”
진실위가 이행권고를 했지만 가해자(국가 등)가 이를 이행하지 않아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도 여럿 있다.
유신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중앙정보부의 광고탄압에 굴복해 동아일보사가 134명의 언론인들을 대량 해고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사건도 진실화해위에 의해 전모가 드러났다. 위원회는 지난 2008년, 동아투위 사태가 정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 때문에 일어났다고 결론짓고 정부와 동아일보사가 피해 언론인들에게 사과하고 명예를 회복시켜줄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국가와 동아일보사는 이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다. 결국 당시 동아투위 소속 언론인들은 지난해 12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 현재 공판이 진행 중이다.
또 울산국민보도연맹 사건은 전쟁 중이던 1950년 8월 아무런 법적 절차없이 연맹원 870여 명을 울산 대운산과 반정고개에서 학살하고 암매장 한 사건. 2007년 11월 이들 중 407명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졌으며, 2008년 1월24일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공식사과도 했다. 하지만 배상문제를 놓고 희생자 187명의 유족 508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청구, 1심에서 원고 일부승소했으나 2심에선 원고 패소했다. 현재 대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긍정적인 소식도 있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4일 고 이광웅씨의 부인 김문자씨를 비롯해 '오송회 사건'의 피해자나 가족 등 33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위자료와 이자를 합해 207억여원을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오송회 사건은 1982년 군산 제일고 전·현직 교사들이 4.19 기념행사를 치르고 시국토론을 하며 김지하 시인의 '오적'을 낭송한 모임을 전두환 정권이 이적단체로 조작한 사건. 이 사건으로 이씨 등 교사 8명과 조성용 당시 KBS 남원방송국 방송과장이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 이들은 징역 1∼7년이 확정돼 복역하다 1984년 3월∼1987년 7월 풀려났다.
위원회는 지난 2008년 재심권고 및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으며, 이후 재심에서 사건 당사자들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어 국가의 불법행위를 배상하라고 소송을 내 이번에 보상판결이 내려진 것.
해방 직후부터 6.25때까지 좌익으로 몰려 민간인이 집단 희생된 사건들도 진실화해위가 상당부분 규명했다. 대표적으로 1948년 '여수·순천(여순)사건' 당시 여수 지역에서 민간인 124명이 국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 희생된 것을 확인했다.
여순사건은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제14연대가 제주 4·3사건 진압을 위한 파병을 반대하며 반기를 들어 여수·순천을 비롯한 전남 동부지역 등에서 군·경과 무력 충돌했으며 이 과정에서 민간인이 집단희생된 사건.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대해 사과와 위령사업 지원, 가족관계 등록부 정정, 역사기록 정정 및 수록, 평화인권교육 강화 등을 권고했다.
이밖에 진실화해위는 박정희 정권의 인권탄압 실상을 공개해 주목받기도 했다. ▲5.16과정이 위헌적인 쿠데타였다는 점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의 전신)가 5·16쿠데타 세력에 의해 강제헌납됐다고 결정해 현대사의 감춰진 매듭을 풀었다.
배·보상 뚜렷한 한계
진실화해위는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과오를 국가 스스로 인정하게 하는 등 진실을 밝혀내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내·외부 요인에 의해 분명한 한계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군·미군에 의한 학살 주장의 진위를 놓고 논란이 빚어졌고, 이에 대응해 일부 우파 단체에선 빨치산·공비 등에 의한 피해를 주장하는 신청과 ‘맞불놓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 중 일부사건은 진실화해위의 결정과는 반대로 법원판결이 내려져, 위원회의 공신력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진실화해위는 진실이 규명된 유족들에 대한 배·보상 문제에서 뚜렷한 한계를 보였다. 민간인 집단학살의 경우 군·경에 의해 발생한 분명한 국가범죄지만 현재 배·보상과 관련된 법이 전무하다. 과거사정리기본법이 제정된 2005년 당시 기본법에 보상 관련 조항을 포함시키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결국 예산 문제로 흐지부지됐다. 따라서 유족들이 배·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개별 소송을 내야 하지만 대부분 60대 이상인 유족들에게 소송은 금전적, 정신적 부담이 크게 작용한다.
소송을 해도 패소하는 경우가 많다. 주민 407명이 군·경에게 학살된 울산 국민보도연맹사건은 1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이 났지만 2심에서는 법적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이와 유사한 ‘나주경찰부대 사건’ 등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법원이 국가배상 소멸시효 등을 이유로 유족들에게 잇달아 패소 판결을 내놓으면서 진실이 규명돼도 배·보상 자체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하고 있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진실이 밝혀져도 배상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진실화해위가 문을 닫으면, 진행 중인 재판들에 대해 위원회가 표명(증언)할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져 재판은 고스란히 유족들의 몫이 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한편 진실화해위는 정치 환경의 변화에 따라 내부적인 갈등을 겪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한나라당 추천위원인 이영조 위원이 위원장으로 취임하고, 뉴라이트 출신 보수 인사가 위원으로 임명되면서 내홍을 겪고 있다.
이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취임 후 ‘진실화해위원회 3년 활동 현황’의 영문판 배포를 ‘번역오류가 너무 많다’며 중지시키자 번역자인 김성수씨 등 3명이 이 위원장을 상대로 지난5월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 사건은 결국 전임 위원장과 후임 위원장의 정치적 시각차에서 비롯됐다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또 이 위원장은 지난달 ‘5.18민주화운동’을 ‘5.18민중반란’이라고 표현해 강운태 광주시장이 직접 나서서 위원장 파면을 요구하는 등 물의를 빚기도 했다.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을 지낸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진실화해위가 내·외부로 문제점을 드러냈지만 그동안 터부시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국가가 스스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올 12월 활동 보고서 작성을 끝으로 진실화해위의 활동이 완전히 마무리되면 국가 차원의 과거사 규명의 명맥도 끊기는 상황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진실화해위 조사관들은 한결같이 정부의 무관심에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 조사관은 ‘직무유기하는 심정’이라고까지 밝혔다. 그들은 “재판 진행중인 사건, 이의신청 건, 추가조사가 필요한 건 등 아직 해결해야 할 부분이 산적한 상황에서 진실화해위의 활동이 끝나는 것은 정부의 무책임한 역사의식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