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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인터뷰] 탈북인 김필주 "탈북자 3만명 시대를 말하다"
[현장 인터뷰] 탈북인 김필주 "탈북자 3만명 시대를 말하다"
  • 김나영 기자
  • 승인 2018.02.23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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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활동.인권운동가' 활동..."북한 실정 꾸준히 알려"
사진=김나영 기자
탈북 후 남한에서 인권운동가로 활동중인 김필주 씨. 사진=김나영 기자

[뉴스포스트=글.사진 김나영 기자] ‘평화올림픽’.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그렇게 불렸다. 지난 9일 열린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동시에 입장해서다. 무려 11년 만에 남북이 국제대회 개회식에 나란히 참석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올림픽에서는 처음으로 남북 단일팀이 결성되기도 했다. 주인공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남측 선수가 역차별 받는 것 아니냐며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북측 선수단·응원단은 물론이고 방한한 현송월 예술단 부단장이 입고 먹는 것,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필체까지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였다.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북한’이 아니라 ‘한민족으로서 북한’을 본 것이 얼마만인가. 북한이 미국 본토까지 사정권에 두는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이 임박했음을 과시하면서 ‘X월 전쟁설’이 나돌 때라 평창에서 보는 북한은 더욱 남달랐다. 북한에 대한 시선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는 북한 이탈주민은 이번 평창올림픽을 어떻게 볼까. 남북은 평화올림픽으로 통일에 한발 가까워졌을까? 우리에게 북한은 어떤 존재일까? 지난 2001년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지 17년. 북에서 보낸 세월만큼을 한국에서 보낸 북한 인권운동가 김필주(33·남) 씨를 지난 20일 서울 중구 한 찻집에서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인터뷰 전문. 

 

“남한에 와보니 초코파이에 독(毒) 없더라”

탈북민 3만명 시대, 평창올림픽 계기 재조명

 

평창동계올림픽을 어떻게 보시나요.

“남북 동시 입장, 평화올림픽을 누가 마다합니까. 하지만 포장 속에 뭐가 있는지 모르니 난 오히려 불안합니다. 북한은 자기에게 불리하거나 이득 볼 것이 없으면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몇 년째 비핵화를 위한 6자 회담에 응하지 않았지요. 그런 북한이 움직였다? 그것도 이렇게 적극적이다? 분명 뭐가 있을 겁니다.”

 

탈북하게 된 연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전형적인 생계형 탈북자입니다. 남한에서 만든 용어긴 하지만, 탈북자에는 ‘생계형’ 탈북자와 ‘이민형’ 탈북자가 있습니다. ‘생계형’ 탈북자는 생존을 위해 탈북하는 사람들입니다. 흔히 말하는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아서입니다. 반면 ‘이민형’은 먹고 살긴 괜찮지만 인간적으로 살고 싶어서 탈북하는 경우입니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 교육과정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어요. 북한으로 치면 중학교 2학년 때 중퇴했습니다. 한국이 초-중-고교를 6년-3년-3년 다니는 데 비해 북한은 4년-3년-3년 다니기 때문에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까지 다닌 셈이지요. 한국에 와서 대학을 다닐 때까지 펜을 놓은 기간이 14년이나 됩니다.”

 

북한도 무상교육을 실시한다고 들었는데.

“무상교육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북에 있던 때에는 교육시스템이 많이 무너졌어요. 학비 아닌 학비 같은 것들이 있었지요. 겨울에는 학교에 난로를 때야 하니 석탄을 내라고 하는데, 석탄을 어디서 구하나요? 다 돈 주고 사는 것이지요. 석탄을 일주일에 한번 내라고 하다가 어느 땐 매일 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새아버지랑 함께 살아 새아버지의 자녀들까지 총 셋이 있었는데, 세 명이 다 석탄을 내기는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한명은 그만둬야 했는데 그 한명이 제가 된 거지요.”

 

지금은 누구와 살고 있나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처음에 어머니와 함께 탈북하려다가 실패하고, 후에 어머니가 저 먼저, 저라도 가라고 하셔서 혼자 넘어왔다가 나중에 어머니도 오셨죠.”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탈북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사선(死線)’을 넘는 과정입니다. 보통 북한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데, 일단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건너야 합니다. 수영을 해서 건너거나 강이 언 겨울에 살얼음판을 달려갑니다.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강을 건너는 모습이 눈에 띄지 않나요?

“밤에 몰래 건너거나 낮에 보초서는 군인이 교대하는 30분을 이용합니다. 발견되면 총으로 사살당합니다. 안전하게 탈북하기 위해 보통 브로커를 낍니다. 근무를 서는 군인 상당수가 영양실조에 걸렸거나, 결혼준비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거든요. 형식적이지만 돌아온다는 약속을 받고 보내줍니다. 이들도 걸리면 공개처형당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 정착할 때까지 어떤 교육과정을 거치나요.

“남한에 들어오면 먼저 국정원 조사를 받습니다. 간첩을 색출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탈북한 사람이 맞는지, 조선족이나 중국에서 오래 산 사람은 아닌지 조사합니다.

국정원 조사를 마치면 하나원에서 3개월간 교육을 받습니다. 하나원에는 1달에 1기수를 부여받아 총 3기수가 함께 생활합니다. 한국 정착을 위해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개념이라든가 은행 활용법 등 북한에서는 국가가 해주는 일들에 대해 배웁니다. 없던 인물을 존재하게끔 만들기 위한 행정절차도 3개월 정도 걸리는 것 같습니다.

하나원까지 마치면 대한민국 국적의 신분증이 발급됩니다. 이후 정부에서 영구임대주택, 취업 전까지 기초생활수급자 수준의 생계비를 지원받습니다. 대학에 다니게 되면 등록금의 절반은 학교에서, 절반은 정부에서 지원받구요.”

 

그 정도면 한국 사회에 스며들 수 있나요.

“바로 한국 사회에 투입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돈은 벌어야 하니까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죠. 그런데 아르바이트할 때 탈북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언어적 차원에서의 갈등을 많이 느낍니다.

“도와드릴까요?” 라고 물었을 때 한국에서는 “고맙습니다” 혹은 “괜찮습니다” 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괜찮다”는 말을 “일 없다”라고 표현합니다. 이 “일 없다”는 말에서 오해가 시작됩니다. 사소한 오해로 갈등이 시작되는 겁니다.

또 외래어가 너무 많습니다. 가장 어려울 때가 커피집에서 커피 시킬 때입니다. 톨 사이즈, 그란데 사이즈. 너무 어렵습니다. 분명 한국말인데 못 알아듣습니다. 한국에서 지낸지 3~4년은 돼야 외래어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아르바이트할 때도 “냅킨 주세요”하는데 ‘냅킨’이 뭔지 모르니까 하기 어렵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을 보는 시선은 어땠나요.

“탈북자라고 하면 일단 경계를 합니다. 정치적 대립 때문에 빨갱이라 낙인 찍거나 가족을 버리고 온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시급도 제대로 주지 않습니다. 왜 시급을 다 안주냐고 따지면 오히려 ‘손님한테 방해만 주지 않냐?’며 나가라고 합니다.

북에 있을 때 교육받은 남한 사람들은 미제 앞잡이에 선동당한, 불쌍한 존재였습니다. 북한이 품어줘야 할 대상이었죠. 그런데 남한이 탈북자들을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적’으로 상정하니 마음을 닫게 됐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적으로 생각하는 건 남한 정부나 미국이지, 결코 남한 시민들은 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않게 만들었어요.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한국에 와서 자살하는 탈북자들도 많습니다. 자유만 주어진다면, 인간답게 살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그렇지 않더라구요.”

 

탈북인 크게 '생계형과 인권형'으로 나뉘어

남한에서 "일 없다"는 말 수시로 오해받기도

 

북한 이탈주민끼리 연락도 하고 자주 모이는지.

“하나원 기수별로 어떤 기수는 끈끈해서 서로 연락하고 지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원 나가기만 하면 탈북자들과 연 끊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은 연락 안하고 사는 경우가 다반수입니다. 탈북자라는 신분을 숨기고 싶기 때문이지요.”

 

가야할 길이 멀군요.

“현재 한국에 있는 탈북자가 3만1000여명 정도 됩니다. 이들이 하는 역할이 참 많습니다. 당장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에 대해 알 수 있는 샘플이 됩니다. 이들을 연구해야 하는데 연구가 전혀 안 이뤄지고 있습니다.

탈북자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한국에 대해 알리는 역할도 합니다. 지금까지 김일성 체제가 가능했던 것은 북한에 비교할만한 외부 정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북에 있을 때 남한 사람들은 말끔한 외모로 다가와 초코파이를 건네지만, 그 초코파이에는 독이 들어 있다고 배웠습니다. 남한 사람들을 경계하고, 초코파이를 경계해 왔죠.

하지만 탈북해서 직접 보니 초코파이에 독이 없어요. 북한에 남은 사람들에게 초코파이에 독이 없다고 알려주고, 남한의 실상을 알려주니까 잠자고 있던 욕구가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탈북자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김일성 체제에 대한 충성도도 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북에는 어떻게 연락하나요?

"두만강 접경지역에 중국의 전파가 통하는 곳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휴대폰을 들여와 북한에서 통화하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탈북자들이 잘 도착했는지, 남한의 실상은 어떤지 많이 알립니다. 이것도 브로커를 끼고 목숨 걸고 하는 일이긴 하지만요. 예전엔 탈북하면 북한에 남겨진 탈북자의 사돈의 팔촌까지 죽였으나 이제 탈북자가 너무 많아 도 하나를 들어내야 할 지경이라 감당이 안 되니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거죠."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탈북자 인식을 개선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북한 관련 문제가 이슈가 될 때 언론이 이를 다루는 방식이 좀 달라졌으면 합니다. 최근 귀순병사가 화제였을 때, 병사 배속에 회충이 나오면서 병사의 프라이버시를 두고 ‘인권’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본질을 놓친 겁니다. ‘왜 그 병사가 남한으로 넘어왔을까?’를 봐야 한다고 봅니다. 예전 같으면 북한 사람들이 탈북하면 중국으로 가지 남한으로는 안 갔습니다. 남한에 적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귀순 병사를 통해 대남 적대심이 많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지요.

또 왜 그 병사가 남한으로 넘어왔을까요. 그 병사는 강원도 최전방에서 근무하던 사람입니다. 국경과 밀접한 곳은 토대가 안 좋으면 안 보내는 곳이에요. 북에는 3대 계층이 있습니다. 빨치산 활동을 했던 사람들, 혹은 그와 가까운 사람들인 ‘핵심 계층’, 북한 태생에 세뇌가 잘 된 ‘교육 계층’, 종교적 이유 혹은 남한이나 일본, 중국과 관련이 있어 북한 정권을 위반할 여지가 있는 ‘적대 계층’입니다.

그 사람은 동료 계층 이상으로 국가에서 경제적 도움을 줄 경우가 높습니다. 그런 사람이 남한으로 넘어왔다? 탐구할만한 게 많죠. 그런 사람의 배속에서 회충이 나왔다? 그들보다 못한 사람들의 실상은 얼마나 더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죠. 그런데 프라이버시니, 인권이니 얼마나 생뚱맞게 들끓었습니까.

물론 북한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모르면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언론이 얼마나 파급력이 큰데요. 잘못된 정보로 잘못된 편견 생길수록 탈북자는 더 스스로를 숨기게 됩니다. 탈북자는 그 자체로 북한에 대해, 남한에 대해 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인데 활용을 못하게 되는 겁니다.”

 

탈북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북에 있을 때 저라면 ‘꿈이 뭐야?’ 라고 물었을 때,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꿈이 있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의무교육을 마치는 18살때부터 10년간 의무복무를 하고 지금쯤이면 정부가 정해준 직업을 갖고 있었겠지요.”

 

현재 한국 생활은 어떤가요.

“지금은 대학 다니면서 탈북한 사람들의 인권이나 남북청년활동을 돕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탈북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에도 대학을 다녔는데, 3학년 1학기에 자퇴했어요. 배울수록 나의 초라함과 남한 사람들의 우월함이 극명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그렇게 우월하다고 생각한 남한 사람들조차 취업이 안 되는 걸 보면서 그렇다면 탈북자인 내가, 몸도 안 좋은 내가, 학연 지연 혈연도 없는 내가 한국 땅에 발 들일 자리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왜 이렇게 스트레스 받으며 공부해야 하는지 앞이 안 보여서 그만뒀습니다.

자퇴하고 한참 방황하다가 남북단체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북한 인권의 실태나 탈북자의 삶을 알리는 연극을 해마다 한 작품씩 만들었습니다. 연극을 하다보니 내가 왜 힘들었는지 알겠더라구요. 내 이야기를 들을 사람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렇다면 내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돼야겠다 다짐했습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려면 학술적인 접근이 필요하겠다 싶어 다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석사까지 딴 후에 심리상담가로 활동할 생각입니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인데 이를 내리는 데 기여했으면 합니다. 청소년들이 귀한 목숨을 끊지 않게 정서불안을 해소하고 건강하게 사회를 보도록 돕고 싶습니다.”

김나영 기자 nwhyki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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