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외신 기자 중형...국제 사회 거센 반발
로힝야족 수천 학살...식민 통치가 낳은 비극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미얀마 법원이 로힝야족 학살 문제를 추적해 온 외신 기자들에게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하면서 국제 사회로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고 있다.

3일(현지 시간) 미얀마 법정에서 징역 7년 형을 선고받은 초 소 우 기자가 심경을 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3일(현지 시간) 미얀마 법정에서 징역 7년 형을 선고받은 초 소 우 기자가 심경을 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3일(현지 시간) A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미얀마 양곤 법원이 공직 비밀법 위반 혐의로 로이터 통신 소속 와 론(Wa Lone)과 초 소 우(Kyaw Soe Oo) 기자에게 징역 7년 형을 선고했다.

기밀문서를 소지한 혐의를 받고 있는 미얀마 국적의 두 기자는 라킨 주 마웅토 인 딘 마을에서 로힝야족 학살 사건을 취재해왔다. 현지 취재를 이어가던 와 론과 초 소 우는 지난해 12월 현지 경찰에게 정부 문서를 건네받은 후 이 같은 혐의로 체포됐다.

두 기자는 경찰에게 기밀문서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건네받은 문서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었는지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해당 경찰은 법원에서 함정 수사를 진행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체포된 두 기자는 이후 2주간 독방에 구금되었고, 변호인이나 가족 등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차단되는 등 수사 과정에서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직 기자에게 징역 7년이라는 중형이 처해지자 미얀마 법원은 국제 사회로부터 큰 지탄을 받고 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취재를 한 기자들에게 정의를 가장한 판결이 내려졌다"며 석방을 촉구했다.

이처럼 미얀마가 국제 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기자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할 만큼 감추고 싶어 했던 로힝야족 학살 사건을 무엇이었을까.

지난달 26일 로힝야족 사람들이 학살 1주기를 맞아 방글라데시에서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26일 로힝야족 사람들이 학살 1주기를 맞아 방글라데시에서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소 수천 명 사망 추정

로힝야족은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인구 110만 명의 소수 민족으로 인구 대부분 방글라데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얀마 서부 라킨 주에 거주하고 있다.

국제 인권 단체 앰네스티에 따르면 이들은 수 세대에 걸쳐 미얀마에 터전을 잡았지만, 미얀마 정부는 이들이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 이민자라 주장하며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 무국적 상태인 로힝야족은 미얀마에서 의료 및 교육 등 복지 혜택은 물론 의식주와 같은 기본권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2012년에는 불교 신자가 대부분인 라킨 주민과 로힝야족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고, 로힝야 주민 수만 명은 난민 수용소로 들어가야 했다.

로힝야족 학살 사태는 2016년 10월 로힝야족 측 무장단체가 경찰 초소를 공격해 사망자를 낸 것으로부터 촉발됐다. 이에 미얀마군은 로힝야 전체를 대상으로 무력 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살인과 임의 체포·여성과 소녀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등이 일어났고, 1,200곳 이상의 학교와 모스크 등 건물이 불에 탔다고 앰네스티는 주장했다.

로힝야족 무장단체는 이들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서 지난해 8월 25일 다시 한번 경찰 초소를 공격해 유혈사태를 촉발했다. 이후 미얀마군은 해당 단체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소탕전에 나섰다.

소탕전으로 대대적인 학살이 일어나자 70만 명이 넘는 로힝야족 난민들은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도피했다. 정확한 사망자 수는 규명되지 않았지만, 최소 수천 명의 로힝야족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로힝야족 학살 사태에 대한 침묵으로 국제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 자문겸 외무 장관. (사진=뉴시스)
로힝야족 학살 사태에 대한 침묵으로 국제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 자문겸 외무 장관. (사진=뉴시스)

식민지 역사가 남긴 비극

미얀마 정부와 로힝야족 간의 갈등의 불씨는 과거 제국주의를 내걸었던 영국 식민지 정부에 있다. 당시 영국 식민지 정부는 1885년 노동력 확충을 위해 현 방글라데시에 살고 있던 로힝야족을 미얀마로 유입시켰다.

영국은 보다 효과적인 식민 통치를 위해 로힝야족을 미얀마의 중간 지배계층으로 삼았다. 로힝야족은 영국군 소속으로 미얀마의 독립운동 세력과 싸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로힝야족과 현재 미얀마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버마족 간의 민족 갈등이 생겼다. 이 때 생긴 갈등은 약 1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

식민지 시절 미얀마를 박해했던 로힝야족과 현재 로힝야족에 대한 학살을 자행한 미얀마 정부. 둘 사이의 갈등은 결국 과거 제국주의가 남긴 비극이다. 로힝야족과 미얀마 사이의 갈등의 불씨를 일으켰던 영국은 식민 지배에 대한 깊은 반성 없이 로힝야족 학살 취재 기자에 징역형을 선고한 미얀마 법원을 비판하는 데에 그쳤다.

미얀마 정부는 국제 사회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로힝야족 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991년 미얀마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아웅산 수치 역시 로힝야족 학살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학살 사건 1년이 지난 현재에도 미얀마군과 로힝야족 사이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힝야족 사람들이 받고 있는 고통은 여전하다.

인근 국가 방글라데시는 박해를 피해 온 로힝야족 난민으로 또 다른 고초를 겪고 있다. 게다가 학살 범죄에 대한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 쓴 미얀마 언론인들은 철창신세를 지게 생겼다.

식민 통치가 유린한 약소국의 역사와 이를 여전히 외면하고 있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오늘날 로힝야족의 비극을 낳았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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