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안 참아” 녹음기 주머니에 품고 사는 직장인들
“이제 안 참아” 녹음기 주머니에 품고 사는 직장인들
  • 홍여정 기자
  • 승인 2019.08.01 0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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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포스트=홍여정 기자] 직장 내 갑질이 사회적 이슈가 된지 오래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부터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의 직원 폭행 사건’ 등 수많은 갑질 이슈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은 녹음 파일로 인해 공론화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회사 내 갑질에 대비해 녹음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을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응하기 위해 녹음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홍여정 기자)
직장 내 괴롭힘에 대응하기 위해 녹음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홍여정 기자)

직장 갑질 대처법 “녹음하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12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64.3%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갑질 상사와 일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직장인은 무려 97%였다. 갑질을 일삼은 상대에는 절반 이상이 ‘직속 상사, 사수, 팀장’이라고 답했다. 퇴사자들의 경우 ‘퇴사의 결정적 이유’에 상사 갑질을 선택했다. 

이러한 갑질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1~2년 사이 초소형 녹음기를 구매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보름이 지나면서 괴롭힘 물증을 위해 녹음기를 활용하는 사례가 젊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초소형 녹음기의 모양도 시계, 목걸이, USB, 볼펜 등으로 여러 가지다. 구매 후기를 살펴보면 강의 녹음을 하는 학생들, 업무 목적으로 구매하는 사람도 있지만 직장 상사의 폭언의 증거를 잡기 위해 구매했다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진=소형녹음기 제품 후기 갈무리)
(사진=소형녹음기 제품 후기 갈무리)

실제로 한 포털 사이트의 USB형 녹음기 상품 후기에는 “상사 인신공격의 방어용으로 구매했다”, “여자친구가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사줬다” 등 직장 갑질을 방지하기 위해 구매했다는 후기들이 올라와 있다.

과거 손윗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면 더 이상 직장은 상사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모든 직원의 인권이 존중받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여기에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성희롱 등이 엄연한 범죄라는 경각심이 높아졌으며, 회사에서도 강력한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늘고 있다.

다만 타인 몰래 녹음하는 것은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현행 통신비밀 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청취해선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녹음하는 장본인이 대화에 참여한 당사자일 경우 녹취가 불법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통화 내용을 녹음하거나 업무적으로 상사와 나눈 대화를 몰래 녹음해도 처벌받지 않지만 본인이 없는 공간에 녹음기만 놓고 타인들의 대화만 녹음했다면 처벌 대상이 된다.

한편 직장인들의 이러한 움직임에 기업들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녹음 행위가 회사 내에서 빈번하게 이뤄지다 보면 동료 간 불화를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기업은 지난 2017년부터 사내 녹음 금지 지침을 직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16일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을 알리며 손부채 등을 나눠줬다. (사진=김혜선 기자)
지난 16일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을 알리며 손부채 등을 나눠줬다. (사진=김혜선 기자)

방어용으로 ‘녹음’이 어렵다면

직장갑질 119 오진호 총괄 스텝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회사 내 녹음 규정이 있거나, 회의나 대화 시에 ‘녹음하지 마’라고 하는 발언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라며 “방위 산업 등 안 보나 정보 유출에 민감한 회사들은 그런 규정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특수한 경우 외에 면담이나 회의 상황에서 상사들이 녹음을 하지 못하게 강요하는 부분은 맥락과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녹음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폭언을 섞거나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든다면 그것 또한 직장 내 괴롭힘 행위로 볼 수 있다"라며 “애초에 그 사람이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들과 수평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녹음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갑질에 대한 방어용으로 ‘녹음’이 어렵다면 현장에 있었던 동료들의 진술서나 확인서 혹은 피해 당사자의 구체적인 ‘기록’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이 상사가 저한테 계속 욕해요'라고 말하기보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누가 누구에게 어떤 언행을 했으며 그 자리에 이 사람이 함께 있었다’라는 식의 아주 구체적인 진술이 필요하다는 것. 이러한 기록들이 모이면 신뢰성이 높은 기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진호 스텝은 “폭언이나 모욕적인 발언의 경우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녹음이 어려울 수도 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폭언을 들었던 상황이나 했던 발언을 기록하고 동료들의 진술서를 어떤 방식이든 확보해 가지고 계시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홍여정 기자 duwjddi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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