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부터 경단녀 지속...선진국은 옛 말
정부 정책 한계 보여...근본 대책 필요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아이가 어릴 땐 24시간 대기조입니다. 언제 아프고 다칠지 모르고, 병이라도 걸리면 꼼짝도 할 수 없어요. 1년에 몇 번 씩 아이가 아프다고 쉬는데 눈치 안 주는 회사가 어디 있을까요. 이런 고충 때문에 복직이나 취직하기가 너무 망설여지는 게 현실 같아요”

특성 png from pngtree.com (그래픽=김혜선 기자)
<a href='https://pngtree.com/so/특성'>특성 png from pngtree.com</a> (그래픽=김혜선 기자)

현재 대한민국은 아이를 낳은 여성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결혼이나 육아로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들 이른바 ‘경력 단절 여성(이하 ‘경단녀’) 문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데 목표를 두는 여성들보다 자신의 커리어에 집중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들 중에는 ‘경단녀’라는 현실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결혼이나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대전에서 아이를 키우는 주부 A(28)모 씨는 본지 취재진에 “아기가 어릴 땐 24시간 부모가 함께 있어야 한다. 전염병이라도 걸리는 날엔 최소 5일은 꼼짝도 못 한다”며 “아이를 봐줄 가족이 있는 게 아니라면 엄마가 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라고 꼬집었다. 직장에 다니다 결혼 후 퇴사한 A씨는 “아이가 아플 때 눈치 안 주고 쉴 수 있게 해주는 회사가 어디 있겠는가”라며 “이런 고충 때문에 복직이나 취직이 너무 망설여진다”고 덧붙였다.

경단녀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고질적인 사회적 병폐다. 지난달 30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예산정책처(NARS) 현안분석’에 실린 ‘경력단절여성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고용률은 1988년 44.2%, 1993년 46%, 1998년 44.4%, 2003년 47.4%, 2008년 48.9%, 2013년 48.9%, 2018년 50.2%로 50% 내외에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은 상태다.

(사진=NARS 현안분석 보고서 캡처)
한국의 연령별 여성고용률. 선명한 M 커브를 확인할 수 있다. (그래프=국회입법조사처 NARS 현안분석 보고서 제공)

보고서에 담긴 여성고용률 그래프에서는 1998년 20세 이상 여성 고용률은 40~60% 수준이었으나 20년 후인 2018년에는 50~70%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그래프 곡선은 상승세를 타다가 중간에 푹 꺼진 이른바 ‘M 커브’ 모양새를 띄었다. M 커브는 여성의 경력단절 현황을 의미한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1988년부터 2018년까지 M 커브는 모두 있었다. 경단녀 문제가 30년간 지속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현재 경단녀의 인구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경력단절 여성현황-2018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에 따르면 2018년 경력 단절 여성은 약 184만 7천 명이다. 15세부터 54세 기혼 여성의 수가 약 900만 5천 명인 것을 고려하면, 경력 단절 여성은 전체 기혼 여성의 20.5%이다. 결혼한 여성 5명 중 1명이 경단녀라는 이야기다.

스웨덴엔 ‘경단녀’가 없다?

반면 OECD 주요 선진국들의 여성고용률은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양상을 보인다. 1988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단위로 자료를 비교해본 결과 이들 국가의 여성고용률은 평균 70~80%를 웃돌고 있고, 그래프 역시 M자형이 아닌 ∩자형을 그리고 있다. 이는 연령이 높아질수록 고용률 상승하다가 노년층에 다가갈수록 고용률이 낮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성인이 된 후 취업을 하다가 노년에 은퇴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네덜란드와 독일의 연령별 여성고용률. M 커브가 곡선형으로 완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NARS 현안분석 보고서)
네덜란드와 독일의 연령별 여성고용률. M 커브가 곡선형으로 완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프=국회입법조사처 NARS 현안분석 보고서 제공)

OECD 주요 선진국들 중 눈에 띄는 것은 스웨덴과 독일, 네덜란드다. 특히 독일과 네덜란드는 30년 사이에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눈에 띄게 해결한 사례다. 1990년 독일의 여성고용률은 52.2%에서 2017년 75.2%로 높아졌다. 독일은 2003년부터 시간제 일자리를 늘려 여성 고용을 창출했다. 네덜란드의 여성고용률은 2000년 62.7%에서 지난해 72.8까지 올랐다. 역시 시간제 일자리 비중을 높였다. 하지만 둘 다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스웨덴은 OECD 통계에서 지난해 30~40대 여성고용률이 무려 90.4%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매우 활발하다. 유급 부모 휴직제도 등 일과 가정의 양립 정책, 공공 보육 시스템 마련, 질 좋은 일자리 정책 등을 펼친 스웨덴에서는 여성의 경력 단절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보고서는 적극적인 30~40대 여성 일자리 정책과 장시간 노동 문화 개선, 출산 여성 불이익 해결 등 일과 가정의 양립 정책의 확산을 주문한다.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한 때

주요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경단녀 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황. 한국의 경단녀 문제 해결 정책은 무엇일까. 현 정부에서 진행하는 경단녀 관련 정책에는 ‘여성새로일하기센터’ 사업이 있다.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가 지정한 ‘여성새로일하기센터’는 전국 지방자치단체별로 운영해 경단녀의 재취업을 지원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지난 3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센터에서 취업상담과 직업훈련, 인턴지원, 취업 알선을 담당하고 있다”며 “취업 후 사후관리도 진행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 밖에도 여성 경력단절 예방 지원 사업과 경력단절 여성으로 창업지원을 하고 있다”며 “예방지원 사업에는 기업 내 여성 차별 문제와 관련한 노무 컨설팅 교육 등이 진행된다”고 덧붙였다.

질 좋지 않은 일자리 지적이 있지만, 여성을 대상으로 노동정책을 펼친 독일과 네덜란드. 공공보육 서비스 등 일하는 엄마를 위한 적극적인 국가의 개입으로 경단녀 문제가 없는 스웨덴의 사례를 보면 한국의 경단녀 문제 해결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취업 희망자가 정부 기관에 방문하는 서비스를 넘어 보다 적극적인 일과 가정의 양립 정책과 여성 대상 노동정책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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