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조유라 인턴기자] 9월 3일부터 9월 11일까지 백화점에서 명절 단기 알바를 하게 되었다. 맡은 업무는 백화점 우수고객(VIP) 접대 및 명절선물 수령이었다. 백화점에서 일정 금액 이상 사용한 고객을 이용실적에 따라 등급별로 나눈다. 우수고객은 1등급부터 5등급까지의 단계로 나뉘어 있으며, 등급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라운지가 다르며, 명절 선물 또한 당연히 등급별로 다르다.

모 백화점 입간판. (사진=조유라 기자)
모 백화점 입간판. (사진=조유라 기자)

 

기존의 라운지 직원이 하는 일은 다음과 같았다. 어느 라운지에 투입되든 하는 일은 우수고객 응대다. 고객이 원하는 음료를 만들어 제공하고, 이용한 라운지의 뒷정리 및 청소를 하며 커피캐리어, 우유, 원두 등 라운지 운영에 필요한 모든 재고를 파악하고 주문한다. 또한 우수고객카드 발급, 상품권 증정, 주차서비스 등록 등 우수고객 혜택에 필요한 모든 업무를 도맡아 본다.

우수고객의 혜택 중 한 가지는 라운지 이용인데 등급별로 라운지가 다르다. 1등급은 골드 라운지, 2~3등급은 실버 라운지, 4~5등급 브론즈 라운지로 브론즈 멤버는 매 월 10회 1회 이용 시 최대 두 잔까지 이용이 가능하며 음료는 모두 포장용 종이컵으로 나간다. 주문 가능한 음료는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오렌지주스, 코코아, 녹차, 아이스티이다. 실버 라운지부터는 더 다양한 음료와 함께 다과를 제공한다. 카라멜마끼아또, 카페모카, 바닐라라떼 등 커피 음료도 보다 풍성할 뿐만 아니라 차 종류도 로즈힙, 히비스커스, 귤피차 등으로 다양해졌으며 종이가 아닌 실크티백으로 제공된다. (브론즈 라운지에서 제공하는 차 음료는 탕비실에서 볼 법한 티백으로 제공했다.) 생강차, 레몬차와 같은 청음료도 제공한다. 테이크 아웃뿐만 라운지에서 제공하는 공간에서 카페처럼 시간의 제약없이 편히 쉬다 갈 수 있었다. 실버 라운지 1회 이용 시 음료 최대 4잔까지 주문 가능하며 유아동반 시 별도의 키즈룸에서 라운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레벨인 골드 라운지에서는 어떤 음료를 제공하는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골드 라운지는 명절기간 내내 알바생을 사용하지 않았다. 정직원 만이 1등급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다.

일당은 최저시급으로 세금 떼고

이번 명절 단기 알바로 모집한 인원은 남자 둘, 여자 둘이었다. 막상 출근을 하니, 백화점 측은 남자 한 명을 구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개강한 후라 일할 수 있는 알바생을 구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같이 지원한 알바생들은 휴학생과 워킹홀리데이를 앞둔 청춘이었다. 그래서 구하지 못한 남자 한 명의 몫을 셋이서 더 일하게 되었다.

명절 알바가 필요한 이유는 명절을 맞이해 우수고객에게 명절선물을 제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추석을 앞두고 3일부터 11일까지 백화점은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우수고객의 등급에 맞는 몇 가지 선택지를 제안하고 그가 선택하는 상품을 제공했다. 명절 선물을 제공하는 수령처에서 일하는 직원 수 만큼 라운지에서 근무하는 인원이 비기 때문에 라운지 접대업무를 할 인력이 필요했고 급하게 알바생을 구한 것이었다. 수령 업무는 직원뿐만 아니라 알바생도 함께했다. 수령 업무는 남알바생 혼자 분담하고 나와 다른 여알바생은 라운지에 배치 받아 업무를 했었는데 남알바생이 쉬는 날에 하루 수령업무를 함께 했었다.

우수고객 접대 알바를 요약하자면 ‘역시 돈이 좋구나’였다. 두 가지 의미였는데 첫 번째는 돈이 많으니 사람이 구김살이 없고 여유가 넘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돈이 많으면 대접을 받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우수고객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돈이 많다는 것 하나는 확실한 사실이었다. 평일 대낮에 백화점 명품관을 돌아다니고, 라운지를 일상처럼 드나드는 사람은 도대체 누굴까. 드라마에서나 보는 사모님, 사장님을 보는 것만 같았다.

들고 다니는 가방은 진품의 아우라를 풍기는 명품가방들이었고, 추석선물을 방금 받아서는 백화점의 명절 인사 카드를 무관심하게 읽어보고는 “내년에는 2등급으로 올라가야겠어. 돈 좀 더 쓰면 2등급 선물 받을 수 있었는데 3등급 선물은 너무 볼 게 없더라”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이것이야말로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계)였다.

한 번은 테이크아웃 음료를 주다가 실수로 뜨거운 커피를 엎질러 버렸다. 당황해서 연신 입에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치지는 않으셨나요? 정말 죄송해요”라고 내뱉으면서도, ‘만약에 저 옷에, 저 가방에 커피가 튀기라도 했다면 어떡하지, 저건 얼마짜리 옷이지, 얼마나 배상해야하지?’하는 생각이 짧게 스쳐지나갔다. 다행히 고객이 재빨리 피해서, 커피가 어디로도 튀지 않았고, 나는 티슈로 대리석 바닥만 닦아냈다. 와중에 고객이 “괜찮아요, 뜨거우니 조심해서 닦아요“라고 해서 괜히 감동을 받았다. 저게 상류층의 우아함과 기품인가 하는 생각까지 스쳐지나갔다. 물론 반대로 내가 카페에서 알바생이 내 커피를 엎질렀다면 똑같이 ‘괜찮다’고 했겠지만 돈 많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어서인가 ‘역시 돈이 사람은 만드는 구나‘라고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평일의 실버라운지는 점심시간을 기점으로 여러 번 만석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현재 만석이라 자리가 나는 대로 안내해 드리거나, 포장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 대개는 “괜찮아요. 기다릴게요”라고 답했다. ‘시간이 돈이다‘라는 말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문장인데, 대개 돈이 많은 사람은 시간도 많다고 느꼈다. 나만 해도 친구를 만날 때 서로 시간내는 게 힘들어서 날을 못 잡거나 만나도 3시간, 길어야 5시간밖에 못 보기 때문에 카페가 만석이면 재빨리 다른 곳으로 장소를 이동하기 마련인데, 그들은 느긋하게 남는 게 시간이라는 태도로 제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또 일요일에는 브론즈라운지에서 일을 했었는데 고객들이 줄서서 라운지를 이용했고 대기줄을 보다가 그냥 돌아간 고객들도 있었다. 설상가상이라고 브론즈라운지의 제빙기의 상태가 좋지 않아 골드라운지로 얼음을 받으러 방문했었는데, 골드라운지에서 일하는 직원 둘 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태연하게 “오늘 골드라운지 많이 바쁜가봐요”라며 “아, 오늘 일요일이지”했다. 시간과 돈이 많은 1등급 우수고객은 사람이 붐비는 주말을 피해 되려 평일에 백화점을 자주 방문하고, 비교적 등급이 낮은 4,5등급의 고객은 시간이 나는 휴일, 주말에 라운지로 몰리는 것이었다.

제일 자괴감이 들 때는 내 또래의 고객을 맞이할 때였다. 중장년층의 우수고객을 보면 분명 열심히 일해서 그 위치와 부를 갖게 되었을 것이고,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나이를 먹고 싶다고 생각하게 해주었지만, 일을 하고 있는 나와 라운지를 이용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내 또래의 고객을 보면 마음 어딘가가 시큰거렸다. 라운지 이용이 일상인 것 마냥 같이 온 친구에게 “이 음료보단 저 음료가 나아‘라고 권하고 ‘오늘은 다과가 떡이네. 명절이라 그런가 봐 보통은 쿠키를 주던데‘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돈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서비스와, 그 서비스를 통해 만들어진 그의 고급스러움이 탐이 났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차별을 두고 우수 고객님을 모시고자 합니다”

우수고객 서비스로는 무료주차, 생일선물 대접, 명절 선물 대접, 등급별로 높아지는 누적 비율, 우수고객 원데이 클레스 부티크 등이 있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우수고객님을 대접합니다’라는 것이 느껴지는 서비스들이었다. 라운지에서 음료접대를 할 때는 마치 승무원처럼 머리를 단정히 올백으로 올리고, 갖춰진 정장유니폼과 구두를 챙겨 입고, 고급스런 무광으로 도색된 명찰을 차고 서비스에 임해야 했다.

알바를 하면서 모든 순간순간 잔잔히 돈의 힘과 영향력을 느꼈다. 백화점 역시 돈의 권력을 이용했는데, 그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명절선물 수령이었다. 등급별로 선물의 수준이 갈렸는데, 가장 낮은 등급인 5등급은 명절선물수령 제외대상이었다. 4등급은 올리브유, 생활용품세트, 김부각, 파운드케이크 세트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었고, 3등급은 요리유세트, 스팸과 오일 세트 그리고 화장품 중 한 가지를, 2등급은 들어 본 적도 없는 브로콜리 건강 쌀, 건어물 세트, 육포세트, 버섯세트 중 한 가지를 선택해서 받을 수 있었다. 선물을 증정하는 쇼핑백도 4등급은 종이가방, 3등급은 그 보다는 튼튼한 부직포가방, 2등급은 고급 보자기로 ‘은근히‘가 아니라 아예 ‘대놓고‘ 등급별로 차별대접을 하는 것을 보였다.

모 백화점 명절 선물 수령처. (사진=조유라 인턴기자)
모 백화점 명절 선물 수령처. (사진=조유라 인턴기자)

수령할 수 있는 샘플을 수령대 옆의 선반에 전시해 두었는데 그마저도 등급별로 4등급이 가장 아래에 두어 고개를 낮춰 보아야 했다. 그 다음등급인 조금만 숙여서 볼 수 있도록, 2등급은 고개를 숙이거나 들 필요 없는 위치에 두었다. 마치 백화점에서 “봤어? 돈 좀 더 써야겠지? 이번 설에는 등급 올려서 더 좋은 선물 좀 받고 싶지? 솔직히 저등급이 수령하는 선물을 보면 별거 없잖아. 지금 등급을 유지하고 여유가 된다면 위에 등급으로 올라가야겠구나 싶지?”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 마저도 최상등급인 1등급은 수령처에서 선물을 증정하지 않았는데, 늘상 이용하던 라운지에 방문하면 직원들이 알아서 수령 선물을 가져다줬다. 2~4등급에게는 번거로움을 더한 셈이다. 전해 듣기로는 한우불고기세트와 무슨 고급 세트였다고 한다. 1등급 라운지에서 일을 한 적이 없어서 사실 잘 모르겠다. 어리숙하고 단련되지 못한 알바생으로는 최우수고객을 모시지 않겠다는 것 같았고 혹시 알바생이 저지를지도 모르는 실수로 발생할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한 것 같았다.

알바를 하면서 입에 달고 산 말은 극존칭어였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감사합니다, 즐거운 명절 되십시오.’ 누군가가 나에게 저렇게 극존칭을 쓰며 접대한 적이 있었나. 물론 없지만, 명절을 앞두고 우수고객을 상대하며 부의 차이에서 오는 기품과 자본주의의 차별을 피부로 느끼며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명절 전 단기 알바로, 명절 기간 동안 일을 하지 않았지만 분명 추석 당일에도, 공휴일에도 일을 하는 누군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은 돈이 많은 사람도 돈이 적은 사람도 ‘즐거운 명절’이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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