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2019년 역시 여느 해 못지않게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황금돼지의 해’라는 황금빛 별명과 맞지 않게 신문 사회면에는 어두운 뉴스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암울한 사건들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이 없던 것은 아니다. 올해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렸던 이슈에는 어떤 게 있을까. 2020년대 첫해에는 좀 더 희망찬 이슈가 가득하길 기대하며 ‘뉴스포스트’는 사회 분야 7대 뉴스를 선정했다.

지난달 22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무죄 선고를 받고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석방됐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22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무죄 선고를 받고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석방됐다. (사진=뉴시스)

김학의 무죄·장자연 리스트는?...청산 못 한 과거사

올해에는 청산되지 못한 역사를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이하 ‘과거사위’)가 과거 정권 당시 수면 아래에 있던 ‘별장성폭력’ 의혹과 故 장자연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를 진행한 것이다. 2017년 12월 출범한 과거사위는 연장에 연장을 거쳐 약 1년 6개월이 넘도록 해당 사건들의 진상 규명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남긴 채 과거사위는 마무리됐다.

지난 5월 20일 과거사위는 배우 故 장자연 씨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사건은 2009년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씨가 유력 인사들과의 술자리 접대를 강요받은 내용을 폭로하는 유서에서 시작됐다. 장씨가 성 접대 요구, 욕설 및 구타 등을 당했다는 내용의 ‘장자연 리스트’에는 유력 언론사와 제계 관계자들의 이름이 올랐다는 의혹이 돌았다.

과거사위의 결론은 리스트의 진상은 규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조사 당시 새롭게 불거진 ‘특수강간’ 의혹에 대해서도 증거 불충분으로 수사 권고가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장씨의 소속사 대표였던 김종승이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명예훼손 재판에서 위증한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 권고가 이뤄졌다. 이 의원은 2009년 국회 대정부 질문 과정에서 조선일보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한 바 있다. 또한 조선일보 사주 일가에 대한 과거 검경의 수사가 미진했다는 의혹이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는 점도 과거사위가 밝혔다.

장씨 사건 조사 결과 발표 후 과거사위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김 전 차관은 2006년 건설업자 윤중천으로부터 강원 원주 별장에서 성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있어 2013년 경찰 수사를 받았다. 하지만 검찰로 넘겨지면서 석연찮은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아울러 윤중천과 김 전 차관이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특히 이른바 ‘별장 성접대’ 동영상이 파문을 더욱 키웠다.

과거사위는 2013년 검찰의 수사가 부실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검찰이 성폭력 피해 주장 여성들의 진술 신빙성을 무력화하는 데 주력하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는 것이다. 과거사위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인 올해 3월 구성된 특별수사단에서는 김 전 차관에 대한 의혹을 수사하고 있었다. 김 전 차관과 윤중천을 구속하기도 했지만, 김 전 차관을 상대로 성범죄가 아닌 뇌물 수수로만 기소돼 논란이 거셌다.

관련 의혹을 규명할 수 있었던 기회가 왔지만, 반쪽짜리 기소로 결국 김 전 차관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성범죄와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된 윤중천의 경우 지난달 징역 5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마저도 성범죄는 공소시효 등을 이유로 기각됐다. 이에 이달 18일 전국의 706개 시민사회 단체는 김 전 차관과 윤중천의 성범죄 혐의를 다시 수사해달라며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지난 5월 헝가리 유람선 침몰사고가 발생한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사고 지점에 구조대원들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지난 5월 헝가리 유람선 침몰사고가 발생한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사고 지점에 구조대원들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AP/뉴시스)

헝가리 유람선 참사 外...끊이지 않은 사건·사고

2019년 한해에도 어김없이 인명피해가 일어나는 대형 참사가 이어졌다. 5월 30일(한국 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는 유람선 허블레아니호가 바이킹시긴호와 충돌 후 침몰해 한국인 승객 25명이 사망했다. 문재인 정부는 참사 발생 하루 만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헝가리 현지에 급파하는 등 실종자 수색에 신속 대응했지만, 여전히 실종자 1명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헝가리 수사 당국은 현재 가해 선장을 구속해 참사 진상을 조사 중이다.

사회적 약자들을 상대로 한 흉악한 범죄도 잇따랐다. 헝가리 참사보다 앞선 4월 17일 안인득은 자신이 거주하는 경남 진주 아파트 4층에서 불을 지른 후 대피하려고 집 밖으로 나온 주민들을 상대로 흉기를 휘둘러 살해했다. 주민 5명이 사망하고, 1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안인득은 심신미약을 주장했으나 사망자 대다수는 공교롭게도 여성과 노인, 어린아이 등 사회적 약자였다. 지난달 1심 재판부는 안인득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안인득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태풍 등 자연재해 피해도 컸다. 올해는 총 7개의 태풍이 한반도에 영향을 줬는데, 이는 1951년 기상청이 태풍을 관측한 이후 1959년(7개)과 함께 최다 기록이다. 특히 제13호 태풍 ‘링링’과 제17호 태풍 ‘타파’, 제18호 태풍 ‘미탁’의 피해가 컸다. 링링과 타파 때는 각각 3명과 1명이 숨졌다. 특히 미탁의 경우 15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피해가 가장 컸다.

국민을 위해 복무하다 안타깝게 희생된 이들도 있었다. 올해 10월 31일 한밤중 응급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대구에서 독도까지 출동한 소방헬기가 환자를 태우고 이륙하다 바다에 추락했다. 소방대원 3명과 환자 1명의 시신이 수습됐지만, 3명(소방대원 2명, 보호자 1명)은 여전히 실종상태다. 실종자 가족들의 결단으로 수색은 종료됐고, 이달 10일 진행된 합동 영결식에는 이례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고개를 숙였다.

지난 7월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수유재래시장에 현수막이 걸려있는 모습. (사진=뉴스포스트 DB)
지난 7월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수유재래시장에 현수막이 걸려있는 모습. (사진=뉴스포스트 DB)

끊임없는 일본 만행...NO재팬, 이제는 일상이다

올해 6월 말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문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깜짝 만나 평화의 무드가 무르익을 무렵 일본이 찬물을 끼얹었다. 7월 초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 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고 반도체 수출 규제를 단행한 것이다. 이어 한국을 수출심사 절차 간소화 우대국가(백색국가)에서 제외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정부도 이에 맞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카드로 맞받아쳤다.

우리의 아픈 현대사와 경제 급소를 동시에 건드린 일본 정부에 온 국민이 분노했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은 자발적 불매운동 열풍이 국민들 사이에서 불었다. 일본 의류 브랜드와 맥주 등 기호식품, 관광, 자동차 등이 주요 불매 대상이었다. 소비자들은 물건을 구매하기 전에 원산지부터 따졌고, 자영업자들은 일본산 제품 판매를 자발적으로 중단했다. ‘노노재팬’, ‘노노재팬 드럭’ 등 일본산 제품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도 생겨났다.

일본산 불매운동의 여파는 실로 거대했다. 유니클로는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한국의 불매운동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임원의 실언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암시하는 광고 등이 국민 분노를 자아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히트텍 무료 증정 기간인 지난달 15일부터 20일까지 국내 8개 카드사의 신용카드 매출액 현상을 분석한 결과 유니클로 매출액이 약 70% 급감했다. 데상트와 ABC마트 등도 매출 하락이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에서 인기를 누렸던 일본산 맥주는 사실상 퇴출됐다고 보아도 무방한 상황이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일본맥주 수입액은 1억 4,400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7.5%까지 추락했다. 1천만 원 이상 할인 판매 행사에 들어갔던 일본산 자동차도 불매 열기를 꺾지 못했다. 일본 재무성이 이달 18일 발표한 11월 무역통계에 따르면 자동차 수출은 한화 약 166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8.5%가 급감했다.

일본산 불매운동의 가장 큰 효과는 관광업에서 나타났다. 일본 지역 경제에 직격탄을 줬기 때문이다. 하나투어와 모두투어가 발표한 지난달 해외여행 모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달 대비 일본 여행수요는 각각 80.4%, 90.3% 감소했다. 대마도의 경우 한국인 관광객이 지난해 대비 90% 수준까지 감소해 일본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지원하기로 했다. 규슈와 돗토리현 역시 타격을 입었다. 항공사에서는 일본행 항공편이 감편 되기도 했다.

일본 정부에 분노해 시작했던 일본산 불매운동은 초기에는 정치적인 성향이 강했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 보복 초지가 시작된 지 약 6개월이 지난 현재 불매운동은 이제 국민들의 일상이 됐다. 자발적인 불매운동이 일본 기업과 일본 지역 경제에 미치고 있는 타격은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사진=SBS 제공)
(사진=SBS 제공)

33년 만에 드러난 진실...‘이춘재’ 연쇄살인사건

한국 사회 최악의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잡혔다는 소식이 올해 9월 들렸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 화성 일대에서 10명의 여성이 성폭력 및 살해당한 사건을 말한다. 범인은 1994년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부산교도소에 갇혀있던 이춘재다. 올해부터 주요 미제사건을 집중 재검토하던 경찰이 국립과학수사대의 DNA 감정을 통해 추악한 진범의 실체를 밝혀낸 것이다.

이춘재는 혐의를 부인하다가 그의 DNA가 사건 현장 증거물에서 추가로 검출되자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포함해 14건의 살인과 강간 및 강간미수 30여 건을 자신의 범행이라고 추가 자백했다. 특히 모방범의 소행으로 알려진 8차사건 역시 자신의 범행이라 자백해 논란을 키웠다.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던 윤모 씨는 경찰의 고문 수사 등으로 억울하게 20년간 옥살이를 했다며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다.

무고한 피해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살인사건 진범이 밝혀지자 경찰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개명했다. 아울러 8차 사건의 담당 경찰관과 검찰 관계자들을 정식 형사 입건했다. 또한 일부 경찰이 초등생 희생자의 유골을 발견한 후 은닉했다는 정황도 파악했다. 당시 경찰의 부실 수사, 봐주기 수사 의혹 등도 쏟아지고 있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과거 수사 기관의 무능과 만행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을 밝힌 것은 현대 과학 수사 발전의 값진 성과다. 하지만 경찰에 대한 국민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과학 수사의 발달과 고문 수사의 만행 사이의 간극은 33년이다. 그 사이 공소시효는 지나버렸다. 이춘재의 범죄에 분노와 공포를 느낀 국민들과 유가족 그리고 무고하게 희생당한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경찰은 뒤늦게나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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