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2019년 역시 여느 해 못지않게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황금돼지의 해’라는 황금빛 별명과 맞지 않게 신문 사회면에는 어두운 뉴스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암울한 사건들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이 없던 것은 아니다. 올해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렸던 이슈에는 어떤 게 있을까. 2020년 새해에는 좀 더 희망찬 이슈가 가득하길 기대하며 ‘뉴스포스트’는 사회 분야 7대 뉴스를 선정했다.

지난 2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보석 심문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보석 심문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무너진 사법부 신뢰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기에도 벅찬 1월. 국민에게 들려온 소식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이었다. 지난 1월 24일 양 전 대법원장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전격 구속됐다. 71년 사법부 역사상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헌정사 최대 치욕’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사건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박근혜 정권 당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민사소송 등의 재판 거래, 구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소송 개입, 법관 사찰 및 사법부 블랙리스트 작성 개입, 비자금 조성, 헌법재판소 내부정보 불법 소집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에 선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뿐만 아니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10여 명의 전·현직 법관들도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불구속 재판 요청 후 보석 심문에서 “검찰은 조물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300여 쪽 되는 공소장을 만들어냈다”며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양 전 대법원장은 올해 7월 재판부의 직권으로 보석 석방됐다. 불구속 재판을 받게 된 양 전 대법원장은 이달 18일까지 52차 공판에 참석하는 등 긴 법정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사안이 중대하고, 혐의가 적지 않아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의혹 재판은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3월 아이돌 그룹 빅뱅 전 멤버 승리가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은 후 귀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3월 아이돌 그룹 빅뱅 전 멤버 승리가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은 후 귀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버닝썬이 쏘아올린 큰 공...연예계 마약·성범죄

2019년 올해 한 해는 유독 연예계에서 성범죄와 마약 같은 중범죄가 끊이질 않았다. 연예계의 추악한 민낯은 인기 아이돌 그룹 빅뱅의 전 멤버 승리가 서울 강남에서 운영했던 클럽 ‘버닝썬’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11월 김상교 씨가 버닝썬에서 폭행 시비를 겪은 게 화근이었다. 골절 등 심각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김씨가 경찰서에서 방치당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고, 결국 경찰과 유흥업소 간의 유착 의혹으로 번졌다.

경찰과 유흥업소 관계자 사이의 유착 의혹이 끝이 아니었다. 버닝썬에서 ▲성폭력 범죄 ▲마약 및 성범죄 약물 불법 유통 ▲탈세 등이 이뤄졌다는 폭로가 쏟아졌다. 이 과정에서 버닝썬 등 강남 일대 클럽 직원들이 마약 혐의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또 김씨 폭행 사건에 연루된 경찰 일부가 파면 또는 견책됐고, 유리홀딩스 유모 전 대표 및 승리와의 유착 의혹을 받는 경찰 총경은 구속됐다.

하지만 사건에 기름을 부은 건 승리와 정준영 등 인기 연예인들이 속했던 단체 채팅방 내용이었다. 현직 경찰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뉘앙스의 내용은 물론 여성을 몰래 찍은 불법 촬영물이 공유된 사실이 알려져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정준영과 FT 아일랜드 전 멤버 최종훈, 승리 등 관련 연예인들은 팀에서 탈퇴하거나 연예계를 은퇴했다. 특히 정준영과 최종훈은 특수 준강간 혐의까지 추가로 드러났다.

사건은 승리의 전 소속사 YG 엔터테인먼트까지 번졌다. 아이돌 그룹 아이콘 멤버 비아이가 마약 투약을 했지만 처벌받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왔고, 그는 팀에서 탈퇴했다. YG 수장인 양현석 대표는 원정도박과 투자자 성 접대, 비아이 마약 의혹 무마 혐의 등 각종 의혹에 시달리다가 결국 직에서 물러났다. 해외 투자자 상대로 성매매 알선을 했다는 혐의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는데, 여전히 국민들의 신뢰는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버닝썬과 관계 없이 연예계에서는 마약과 성범죄 의혹이 분야별로 끊이질 않았다. 아이돌 그룹 JYJ 전 멤버 박유천과 몬스타엑스 전 멤버 원호, 방송인 로버트 할리가 마약 혐의에 연루됐다. 할리와 박유천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원호는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 강지환 역시 준강간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신화 이민우가 성추행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가수 김건모는 성범죄 의혹에 휩싸여 검찰에 고소를 당했다.

버닝썬에서 발생한 문제는 일개 사건에서 그치지 않고 ‘게이트’ 수준으로 확장돼 연초부터 연말까지 올 한해 전반을 관통했다. 정준영과 최종훈은 각 징역 6년형과 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지만, 승리 등 사건에 연루된 다수의 인물에 대해서는 현재에도 수사 중이다. 지지부진한 수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상황. ‘버닝썬게이트’의 여파는 2019년을 지나 내년까지도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여성계 인사들이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DB)
지난 4월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여성계 인사들이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DB)

역사의 진보와 여성의 승리...66년 만에 낙태죄 폐지

무너진 사법부 신뢰와 연예계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난 2019년 상반기였지만, 절망적인 뉴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올해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임신중절 처벌을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전체 재판관 9인 중 4명은 헌법불합치, 3명이 단순 위헌, 2명이 합헌으로 판단했다. 낙태죄의 폐지를 알리는 순간이었다.

임신중절을 처벌하는 조항은 1953년에 생겼다. 형법 269조는 임신한 여성이 낙태하면 1년 이상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했고, 270조는 의료인에 대한 처벌 조항이다. 임신중절 수술을 할 시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한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 들어서서는 부모가 유전적 장애나 전염성 질환이 있거나 강간으로 인한 임신, 혈족 간의 임신, 산모의 건강이 우려될 경우에는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했다.

여성계에서는 임신한 여성과 이들의 수술을 담당하는 의료인만 처벌하는 조항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비판해왔다. 해당 조항은 임신한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결정권’ 등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까지 침해한다는 게 여성계의 오랜 주장이었다. 하지만 천주교 등 종교계와 보수적인 한국 사회가 ‘태아의 생명권’ 등을 이유로 낙태죄 폐지를 강하게 반대해 60년 이상 낡은 법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강력한 반대 세력이 있음에도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2016년부터 여성계에서 다시 낙태죄 폐지를 이슈화했고, 관련 집회 및 시위가 지속적으로 열렸다. 여성들의 싸움은 결국 헌법재판소를 움직이게 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게 헌법불합치 판결의 결정적인 이유였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오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 헌법불합치로 생기는 입법 공백을 막기 위해 국회에 관련법 제정을 주문했다. 이때까지 관련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해당 조항들은 자동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낙태 허용 기간 관련 사회적 합의 ▲임신중절 등을 포함한 포괄적 성교육 ▲임신중지 약품 관련 논의 등이 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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