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온기운 칼럼] 국제유가가 폭락하고 있다. 이달 초 WTI(서부텍사스중질유) 가격은 배럴당 20달러 붕괴 직전까지 떨어졌다. 2016년 초 최저점이었던 22달러 선을 깼으며, 2014년 상반기 100달러 선을 넘었던 것의 5분의 1 토막이 됐다.
유가가 폭락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난 2016년 말 ‘OPEC플러스’라는 슈퍼카르텔을 구축해 하루 170만 배럴의 감산을 함으로써 유가회복을 도모해 왔던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협조 감산 체제가 깨진 점이다. 사우디는 지난 3월초 150만 배럴의 추가 감산을 제안했지만 러시아는 이를 거부했다. 러시아의 거부에 사우디는 즉각 증산 카드로 응수하며 유가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사우디는 원유 공급량을 하루 970만 배럴에서 4월 이후 1,230만 배럴로 늘리고 앞으로 1,300만 배럴까지 더 늘리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측도 재무장관이 “러시아 재정은 유가가 25달러가 돼도 10년은 버틸 수 있다”며 맞대응했다. 양국이 갑자기 감산에서 증산으로 방향을 선회함으로써 유가가 폭락한 것이다. 증산은 2010년대 이후 셰일오일 생산 급증으로 원유생산량 세계 1위로 등극한 미국을 견제하려는 목적도 갖고 있다.
다른 하나는 신종 코로나 사태에 따라 세계 원유 수요가 급감하고 있는 점이다. 세계적인 전염병 확산으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엄격히 통제되고 글로벌 경제가 심각한 불황 국면에 빠져들고 있는 상황에서 원유수요는 전례없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세계원유 수요는 코로나 사태 이전 하루 1억 배럴 정도에서 1,870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가는 산유국들이 감산으로 돌아서고 코로나 사태가 진정돼 세계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선다면 반등의 모멘텀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아직 사우디나 러시아, 미국 등 주요 산유국들이 감산 정책으로 회귀할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사우디, 러시아 등과 하루 최대 1,500만 배럴의 감산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밝혔지만 이는 한낱 희망사항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분간은 서로를 죽이려는 치킨게임이 지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코로나 사태도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유가가 단기적으로 10~15달러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초저유가가 우리나라에는 어떠한 득실을 가져다줄까. 기름 한방울 나지 않아 원유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유가 폭락에 따라 뜻하지 않은 횡재(windfall gain)를 얻을 수 있다. 원유를 연간 10억배럴 정도 수입하는 상황에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떨어질 때마다 100억달러의 원유 수입 금액을 줄일 수 있다. 유가 하락은 기업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시키고 일반 국민들의 유류소비 부담을 줄여 생활형편을 낫게 할 수 있다. 국가적으로는 교역조건(수출상품의 평균가격을 수입상품의 평균 가격으로 나눈 값)을 개선시켜 국민총소득(GNI)을 늘리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부정적 효과도 있다. 우리나라 주요 수출품인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의 수출금액을 줄이는 한편, 정유사의 실적을 악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정유사는 통상 원유를 사들인 뒤 정제하는 과정을 거쳐 석유제품을 2~3개월 후 판매하는데, 유가가 단기간에 급락하면 비싸게 산 원유 재고의 가치가 떨어져 손해를 보게 된다. 현대오일뱅크는 이미 임원 급여를 20% 삭감하는 등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했고, 에쓰오일은 최근 창사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추진 중이라 한다. 산유국의 경제악화는 우리의 전반적인 수출을 위축시키는 요인도 된다. 또한 저유가는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을 지연시키고 유류, 가스 등 화석연료의 헤픈 소비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달성을 어렵게 하는 측면도 있다.
정부는 긍정적 요인은 충분히 살리고 부정적 요인은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국제유가 하락분이 휘발유 경유 등 국내 유류가격 인하에 제한적으로밖에 반영되지 않는 점을 시정하기 위해 현행 리터당 얼마로 돼 있는 종량세 구조의 유류세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연간 30조원에 달하는 유류세를 유가가 폭락하든 말든 앉아서 편하게 걷겠다는 생각보다는 유가폭락의 혜택을 국민에게 충분히 돌려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정부는 유가 반등 이후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세워둬야 한다. 유가의 변동성 확대는 한국경제의 변동성 확대로 연결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불확실성에 늘 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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