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놀이터 안전사고…초등학생이 다수
초등학교 점심시간에 가장 많이 발생
연령별 놀이 특성에 따른 놀이터 부재
위험이 공존하는 놀이터 많이 생겨나야

[뉴스포스트=홍여정 기자] “미끄럼틀 거꾸로 올라가지 마세요”, “서서 그네 타면 안돼요”

6살 아들과 놀이터에 나온 이 모(38)씨는 아이에게 고함을 치느라 바쁘다. 자칫 아이가 다칠까 염려스러운 마음에 자꾸 아이의 행동을 제어하게 된다. 푹신한 매트가 깔려있고 놀이기구 곳곳 안전장치들이 붙어 있지만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현대 사회 속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놀이터’.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모이는 장소인 만큼 크고 작은 사고에 노출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녹슨 철봉 위를 아슬아슬 뛰어다니고, 모래를 던지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일상이었다. 옷에 녹물이 묻고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도 아이들은 무아지경으로 놀아댔다. 실컷 엎어져 양쪽 무릎에 생긴 타박상을 모험심을 키운 훈장인 마냥 달고 다니기도 했다.

반면 지금의 놀이터는 어떤 모습일까? 지자체별로 노후화된 놀이터에 대한 리모델링 사업이 진행됐고 더 깨끗하고 안전한 놀이 환경이 조성됐다. 모래 바닥은 청결 상의 이유로 대부분 자취를 감췄고, 놀이기구는 엄격한 안전 기준에 맞춰 눈에 띄게 단순해졌다.

이에 대해 전문가는 ‘놀이 가치’를 배제한 현재의 놀이터는 주객전도 격이라고 말한다. 수치상의 안전 기준에 맞춘 획일적인 놀이터는 이용자를 배제한, 아이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뺏는 공간이라는 것.

위험과 안전이 공존하는 놀이터는 존재할 수 있을까. 뉴스포스트는 한국놀이시설안전기술원 배송수 원장을 만나 아이들을 위한 좋은 놀이터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배송수 한국놀이터안전기술원 원장(사진=홍여정 기자)
배송수 한국놀이터안전기술원 원장(사진=홍여정 기자)

- 안전한 놀이터에 대한 고민이 높아지면서 놀이시설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린이 시설에 대한 안전관리법이 제정되며 법적인 기준도 생겨났는데 대표적인 기준 몇 개 사례를 소개해준다면.

우리나라 놀이기구 안전기준은 유럽 기준을 번역해 시행해 오고 있다. 놀이터 안전기준서 서문에 보면 안전기준은 ▲놀이터에서 발생되는 모든 손상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기준이 아니며 ▲이용자의 과용 또는 오용으로 인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고 ▲아이가 살아가는데 지장을 초래하는 중증의 손상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손상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 측면의 최적 기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안전기준을 적용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만 3세 이하의 아이는 부모 또는 보호자가 동반 이용한다는 전제하에 기준을 적용하도록 되어있다.

- 안전 기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이터 내 사고는 계속 발생한다. 국내 안전기준에 사각지대가 있는 것인가.

우선 생각해봐야 할 점은 안전기준에 합격한 놀이터가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장소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요인들은 생각하지 않고 기준에 맞춘 놀이터는 안전하다라는 생각은 잘못됐다. 유럽 기준에서는 안전 기준이 아이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참고 도구로 쓰이고 있길 바라지만 이 기준이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엄격한 합부 판정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지금 이 순간 어느 놀이터에서 아이가 놀다가 다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 안전 기준을 통과한 놀이터는 안전하다라는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인가.

그렇다. 안전 기준을 놀이터의 합격·불합격을 가르는 잣대로 쓰면 안된다. 국내에서 적용되는 놀이터 안전기준은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손상만을 방지하는 기술적 측면의 기준일 뿐이다.

예를 들어 안전 검사 시 아이가 추락했을 때 그 충격을 흡수하는 탄성값을 측정한다. 바닥재의 탄성값을 HIC라고 한다. HIC값이 1000을 넘어가면 불합격이다. 추락 시 머리 충격으로 인해서 사망할 가능성이 3%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행 검사는 HIC값 999가 나와도 합격이다. 이에 대한 사망 가능성은 1~2%가 될 수도 있다. 또한 700정도만 되도 뇌손상 가능성은 75%고 500은 중증의 뇌신경 손상, 두개골 골절 가능성 35% 이상이다. 합격선을 통과했다고 부모들이나 관리자들이 안심하면 안 되는 이유다.

- 놀이터 내 사고 유형에는 어떤 것이 있나.

우리나라에서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된 놀이기구는 조합놀이대다. 물론 가장 많이 설치되어 있는 기구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구름사다리, 오르는 기구, 그네 순이다. 가장 많이 다치는 아이들은 초등학생들. 학교 점심시간에 놀다가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사고 형태는 70% 이상이 추락에 의해 발생한다. 두 번째는 기구나 이용자 간 충돌 사고, 그 다음 넘어지거나 접지르는 것 등이 주 사고 유형이다. 손상 유형은 80% 이상이 골절이다. 또한 치아손상, 베인 상처, 충돌로 인한 타박상 순으로 나타난다.

- 사고 원인은 무엇인가.

사고 요인은 시설적, 디자인적, 관리적, 환경적 요인 등 다양하지만 대부분 이용자의 과용, 오용이 원인이다. 위험하게 놀다가 사고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와 관련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놀이터 이용자 분포를 보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만 놀이터를 이용하지 않는다. 초등학생이 대부분인데 지금의 놀이터는 사실 유아의 눈높이다. 시설 관리자나 부모들의 요청에 의해 조금 더 안전한 놀이기구가 설치된다. 안전하다고 하는 것은 조금 더 낮게, 속도도 빠르지 않게 만들어진 놀이기구다. 이것이 초등학생들에게 맞는 놀이터일까? 이들의 행동 특성이나 욕구를 반영할 기능이 한참 모자란 놀이터이기 때문에 위험하게 놀게 된다. 물론 옆에서 지켜보는 보호자가 없다는 것도 한 몫 한다.

어린이 놀이터 관련 강의 모습 (사진=배송수 원장 제공)
어린이 놀이터 관련 강의 모습 (사진=배송수 원장 제공)

- 어린 아동에게 맞춰진 놀이터가 원인인가.

우선 아이들의 놀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기구 하나 갖다 놓으면 알아서 옳은 방법으로 놀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이 잘못됐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색다른 방법으로 즐기는게 본능이다. 이 색다른 방법이 어른들의 눈엔 좀 위험해 보일 수 있다.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거나 조합 놀이대 지붕에 올라가는 그런 위험한 행동. 안전이라는 것은 그렇게 위험하게 놀이기구를 이용할 걸 알고 떨어질 가능성에 대비해 많이 다치지 않도록 바닥이나 기구, 환경을 구비해 놓는 것이다.

- 안전한 놀이터에서 위험을 생각해야 한다니 모순적으로 들린다.

아이가 놀면서 경험하는 모든 손상은 아이가 세상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경험해야할 손상이다. 국내 놀이기구 안전기준의 모태가 되는 유럽기준에도 놀이를 통해 위험에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이것으로 인해 타박상, 골절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물론 기구 끝이 날카롭거나 아이가 움직이면서 얽매일 수 있는 끈 처리가 되어 있는 등 아이가 살아가는데 지장을 초래하는 중증의 손상이나 생명의 위협을 주는 위험은 ‘위해요인’으로 따로 분류해서 관리해야 한다. 즉 다시 말해 건강한 위험과 위해요인을 구분해 생각해야 한다.

- 건강한 위험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노르웨이 샌드세터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높은 곳에서 놀기 ▲빠른 속도 즐기기 ▲톱이나 망치등 위험한 도구 사용하기 ▲불, 공사장 등 위험한 장소 근처에서 놀기 ▲거친 놀이 ▲미로, 숲 속 등 길을 잃을 수 있는 놀이 등이 있다. 이런 도전을 통해 아이들은 스릴,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이런 것들이 현대 사회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녹아든 잘 설계된 놀이터가 아이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 놀이터 안전 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인식에 조언을 한다면.

놀이터의 존립 목적은 재미도 있지만 자기도 모르게 신체, 인지, 사회, 정서 발달이 이뤄진다. 여기에 안전 능력이 따라온다. 건강한 위험 경험을 통해 본인이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위험해 보인다고 먼저 그 상황을 해결해 주거나 하지말라고 통제하는 것은 우리가 그 안전 능력을 가져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스스로 도전도 해보고 결정할 수 있도록 이러한 상황에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설명을 해주는 편이 좋다. 안전이라는 것은 기준 혹은 교육적 측면으로 커버될 수 없다. 부모 혹은 보호자가 놀이 행동을 지켜봐주고 다양한 놀이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이 좋은 안전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사진=배송수 원장 제공)
(사진=배송수 원장 제공)

- 최근 놀이터를 살펴보면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진다.

맞다. 안전기준에 맞게 설계된 놀이기구들이 들어서있기 때문이다. 단순화된 조합놀이대, 그네, 시소가 대부분이다. 조합놀이대의 경우 아이들의 호기심을 가장 빨리 잃어버리는 놀이기구다. 그만큼 단순하고 또 재미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버리는 거다. 또 현재의 놀이터는 아이들의 신체 발달만 중요시한다. 우리 아이들 알통 키우려고 놀이터 가는 것 아니다. 친구와의 관계, 휴식, 식물이나 흙 등 주변 자연 환경도 느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놀이터는 인공적, 의도적, 수동적이다. 아이들이 변형시킬 것이 많은 놀이터가 좋은 놀이터로 볼 수 있는데 안타까운 실정이다.

- 최근 모험 놀이터, 체험 놀이터, 통합 놀이터 등 아이들의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놀이터들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그 수는 아직 미비한데.

어린이 놀이터에 대한 요구는 늘어나고 있지만 현실은 그 요구를 못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놀이터는 생산부터 인증까지 표준화되어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어린이 놀이터와 관련된 직접적인 법령은 ‘어린이 시설 안전관리법’ 하나다. 그러다보니 수치 상으로 안전 기준에 위배되지 않은 놀이터를 만들게 되고 지금의 획일적인 놀이기구가 들어서게 됐다. 시설 관리자나 부모도 사고 위험이 없는 안전한 놀이기구만을 요구하는 것도 그 이유다.

지역마다 사회적, 발달적, 행동특성적 요구가 다르다. 장애인을 배려하는 놀이터, 생태 체험 놀이터, 내구성이 좋은 놀이터 등 그 지역 이용자의 특성에 맞는 놀이터가 생겨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안전 평가 기준에 놀이 가치까지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다.

- 그렇다면 좋은 놀이터는 무엇인가.

안전 기준에만 맞춰진 놀이터는 이용자를 배재한 놀이터다. 검사만 2년마다 한 번씩 받고, 관리자들이 매달 체크를 한다고 해도 사고는 일어난다. 수치를 놓고 합격과 불합격을 판단하지 말고 이 상황에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까지 평가되어야 한다. 아이들의 놀이 가치를 생각하는 놀이터가 안전한 놀이터라고 생각한다. 한 쪽이 우선시 될 경우 기구는 점점 사라지고 놀이터 바닥만 남을 수도 있다.

놀이터 안전은 아이들의 놀면서 최대한의 이득을 가져감과 동시에 아이들이 생명을 다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중대한 사고 방지를 위해 위해요인은 안전 검사를 통해 관리하고, 건강한 위험은 놀이터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충분한 놀이 공간을 확보하고, 가급적이면 연령대 혹은 놀이 유형에 따라서 분리를 해주면 좋다. 공간 자체가 분리되어 있어도 연결고리를 가질 수 있도록 디자인하고 관리자나 놀이 활동가, 보호자가 항상 상주된다면 놀이가치가 높은 좋은 놀이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현재 우리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놀이터는 기본적인 안정성은 확보돼있다. 대부분의 놀이터 사고는 이용자의 실수나 과용, 오용으로 인해 발생되기 때문에 시설적, 환경적으로 안정성을 따지기 보다 아이들의 사고 방지를 위해서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시고 바라보셨으면 좋겠다.


배송수 (사)한국놀이시설안전기술원 원장

(현) (사)한국놀이시설안전기술원 원장

(현) 행정안전부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검사기관 기술협의회 위원장

(현) 행정안전부 어린이놀이시설 사고분석 지원

(현) 서울시교육청 꿈을 담은 놀이터 안전기술 자문위원

(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놀이터사업 안전자문위원

(현) 서울놀이터네트워크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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