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생겨난 어르신 놀이터, 유럽을 휩쓸다
어린이와 어르신이 함께 하는 유럽의 운동공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초고령 사회로 어르신 놀이터가 새로운 노인복지 정책으로 등장한 가운데, 지방자치단체의 전시 행정이나 단체장의 치적 쌓기로 변질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유럽과 미국 등 해외의 성공 사례를 국내 실정에 맞게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르신 놀이터가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 어떤 게 필요할까.
충청남도는 공주시에 내년 4월을 목표로 어르신 놀이터 조성 사업에 5억 원을 투자한다. 지난 9일에는 양승조 충남도지사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 주요 관계자들이 직접 어르신 놀이터 내 운동기구를 시연하는 행사도 열렸다. 충남 외에도 전남 장성군과 서울, 부산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도 어르신 놀이터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당장 5년 뒤인 2025년에 노년층 인구가 전체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다. 사회가 급변할 것이 예상되면서 어르신 놀이터와 같은 새로운 노인복지 사업에 대해 각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를 위한 치적 쌓기나 전시 행정 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사업이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유럽이나 미국의 기존 사례를 국내 실정에 맞게 현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외 주요 도시에서는 어르신 놀이터가 노년층을 위한 공간으로 어떻게 지역 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인지를 우선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핀란드 헬싱키와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유럽 주요 도시에서는 어르신을 위한 공간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뉴스포스트>는 이달 18일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융합콘텐츠학과 이건웅 교수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어르신 놀이터의 전망과 우려에 대해 알아본 바 있다. 연구를 위해 지난해 두 차례 유럽을 방문한 이 교수를 통해 이번에는 해외 주요 도시들의 어르신 놀이터 조성 사업 성공 사례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르신 놀이터 사업에 앞선 유럽
이 교수가 고민정 재미있는 재단 이사장과 지난해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개념의 노인 놀이터’에 따르면 최초의 어르신 놀이터는 1995년 중국에서 건설됐다. 전국적인 체력 단련 프로그램을 시행하도록 하는 국가법이 채택되면서 만들어졌다. 법의 발효 후 중국 전역에서 노인 공원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노인 공원은 실외형 어르신 놀이터 범위에 포함된다. 중국에서 시작된 어르신 놀이터는 2000년대에 핀란드와 스페인, 독일, 영국 등 유럽 등지로 확산됐다.
한국보다 최소 십수 년이나 먼저 어르신 놀이터가 도입된 이들 국가에서는 시설의 형태도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놀이터라고 하면 실외형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내형도 있다. 이 교수는 “북유럽에는 실내형 노인 놀이터도 있다. 북유럽이 겨울철에 날씨가 혹독하기 때문에 실내형이 개발됐다”며 “노인이 건강을 위해 찾는 노인 놀이터가 야외에 있을 시 오히려 위험할 수 있어 북유럽을 중심으로 실내형 노인 놀이터가 개발됐다. 일반적으로는 야외에 있다”고 말했다.
핀란드는 어르신 놀이터가 발달된 대표적인 국가다. 2003년에 이미 노인을 위한 놀이터를 설계하고 결과를 측정하기 위한 과학적 연구가 수행됐다. 이 교수는 “핀란드 헬싱키의 요양원에 갔는데, 인근 100~200m 핀란드 최초의 노인 놀이터가 있으면서 동시에 호화롭고 고급스러운 요양원도 있었다”며 “큰 의미에서 이러한 복지시설이 모두 노인 놀이터”라고 설명했다.
어르신 전용 운동기구만 제작하는 기업들도 많다. 이 교수는 “핀란드의 랍셋(Lappset)은 이미 1980년 대부터 노인 전용 놀이기구를 만들었다”며 “랍셋의 대표는 교육공학을 전공했고 철학을 갖고 노인에 맞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노인놀이터를 설계한다”고 말했다. 그 밖에도 덴마크의 몬스트럼과 콤판(Kompan), 네덜란드 카브사의 월훌라, 미국의 카붐(KaBOOM)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어르신 전용 운동기구 전문 기업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럽에서 어르신 놀이터가 성공적으로 지역 사회에 정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교수의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유럽에서는) 노인 놀이터가 세대 간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놀이터를 만들 돼 세대 간 통합을 중시한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젊은 부부가 직장에 나가면 조부모들이 손주를 돌보러 아이들과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를 간다. 아이들이 어린이 놀이터에서 놀 때 노인들은 벤치에 앉아 손주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유럽의 사정은 한국과 다르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이 교수는 이곳을 답사하면서 어린이 놀이터 왼쪽에 어르신 놀이터가 함께 조성돼있음을 직접 확인한 바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아파트 단지 내에 설치된 것이다. 그는 “아이들이 어린이 놀이터에서 놀 때 노인들은 바로 옆 노인 놀이터에서 가벼운 운동이라도 할 수 있게 만들어 놨다”며 “물론 벤치도 충분히 조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에서 어르신까지 ‘모두를 위한 공원’
어린이 놀이터 인근에 어르신 놀이터를 설치해 양쪽 세대 모두가 소외되지 않도록 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례. 하지만 유럽에서는 더 나아가 지역 사회에 세대 간 통합을 도모하는 공간을 조성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독일 뉘른베르크의 ‘모든 세대를 위한 운동 공원(Bewegungsparks für alle Generationen)’이 바로 주인공이다.
이 교수는 “유럽은 공원 형태가 잘 발달돼 있다. 산책을 하고 곳곳에 노인들이 쉽게 운동을 할 수 있게 복합적으로 설계되어 있다”며 “세대 통합을 중시하게 되면서 모든 세대를 위한 공원으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린이 놀이터나 반려견 놀이터는 있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공원은 있지만 모든 세대를 위한 공원은 없다. 우선 노인 놀이터부터 없다. 세대 간 라인업이 되지 않아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모든 세대를 위한 운동공원 사업은 뉘른베르크시에서 2006년부터 시작됐다. 출발 단계에서는 어르신 놀이터 조성이 목적이었다. 그는 “사업 추진을 위한 시민 의견 수렴 과정에서 세대 간 교류 및 통합의 중요성 문제가 제기되었고, 뉘른베르크시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모든 세대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운동공원을 조성하는 것으로 사업의 방향을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시민 의견에 따라 어르신 놀이터가 모두를 위한 공원으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뉘른베르크의 운동공원이 처음 설계되었던 2006년 당시에는 노인 전용 운동공원으로 시작했다. 마르타-마리아 시니어센터가 모태였다. 이후 뉘른베르크에는 7개의 대형 운동공원이 설립됐다. 이 교수는 “개수가 늘어나고 이용자 수가 증가하면서 이용하는 시민들이 노인 전용에서 모든 세대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을 요구하게 됐고, 시청에서는 민원을 받아들여 공청회 등을 통해 새로운 콘셉트로 진화했다”고 전했다.
어르신 놀이터의 개념이 생겨난 후 유럽에서는 환경에 따라 실내에서도 조성했다. 어르신 전용 운동기구만 만드는 기업도 생겨났다. 일반적인 어린이 놀이터 옆에 어르신 놀이터를 주변에 설치하면서 세대 간의 통합을 도모했다. 나아가 시민들의 요구와 지방자치단체의 수용 노력으로 전 세대를 위한 운동공원까지 발전했다. 반면 내년이 돼야 비로소 최초의 어르신 놀이터가 설치되는 한국. 어르신을 위한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을 위해 참고해야 할 점이 많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