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 재난지원금 합의 100분 만에 ‘백지화’
당내서도 불만 속출...중진 의원들 “독단적” 비판
청년 당대표 리더십 한달 만에 시험대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더불어민주당과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에 합의했다가 당내 반발로 100여 분 만에 번복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0선 청년’으로 당 대표에 당선돼 파란을 일으켰던 이 대표는 당 운영 한 달 만에 리더십 검증을 받게 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현안 관련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사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현안 관련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사진)

앞서 이 대표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지난 12일 만나 2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한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합의했다. 그런데 합의 소식이 언론에 알려지자마자 국민의힘 내부에서 반발이 일어났고, 이 대표는 결국 100여 분 만에 수석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고 사실상 합의를 번복했다.

황보승희 수석대변인은 “양당대표 회동 합의내용은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대상과 보상 범위를 넓고 두텁게 충분히 지원하는 데 우선적으로 추경 재원을 활용하자는 것”이라며 “그 후 만약 남는 재원이 있을 시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 범위를 소득하위 80%에서 전국민으로 확대하는 것까지 포함해 방역상황을 고려해 필요 여부를 검토하자는 취지로 합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3일 이 대표는 BBS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재차 합의 내용을 해명했다. 이 대표는 “송영길 대표 측은 ‘원안에 따르면 (소득 하위) 80%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건데, 경계선 문제라든지 행정 비용 문제 때문에 전국민으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제가 충분히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송 대표와의 합의 내용을) 옆 방에서 식사하던 대변인들에게 스피커폰으로 전달했다”며 “구체적인 설명과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을 대변인들이 진행했는데, (송 대표와의) 논의 과정에서 있던 고민이 전달되지 않은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대변인들에게 합의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전국민 재난지원금 ‘검토’라는 자신의 진의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송 대표의 말은 다르다. 송 대표는 이날 울산에서 열린 예산정책협의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이준석 대표가 ‘40%도 아니고, 80% 지원할 바에야 선별 논란이 많기 때문에 100% 지원이 맞다’고 말씀해주셨고, 저도 거기에 동의했다”며 전국민 재난지원금은 이 대표가 먼저 제안했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이준석 대표와 합의한 것은 (거리두기) 4단계이니 방역상황을 보면서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시기를 결정하는 게 맞겠다는 것”이라며 “이준석 대표를 윽박지르는 것은 올바른 야당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의원들 불만 폭발...당 지도부 수습

여당 대표가 이번 합의 번복 사태를 두고 ‘이 대표를 윽박지르지 말라’며 은근히 편을 든 것은 국민의힘 내부에서 이 대표를 향한 당내 비판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있는 카카오톡 대화방에서도 이 대표의 합의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3선 중진인 김태흠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준석 대표는 원외 당 대표로서 국회의 권한인 추경 편성까지 당내 의견 수렴 없이 합의하는 월권행위를 자제해야 한다”며 “통일부, 여가부 등 정부조직법 개정 사안을 언급해 논란을 일으키는 것도 옳지 않다. 그것은 차기 대선 후보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윤희숙 의원 역시 “어제 양당 대표간 ‘전국민 재난지원금 합의’는 이번 대선의 전투의 가장 중요한 전선을 함몰시켰다”며 날을 세웠다. 윤 의원은 “당대표의 사후적인 변명이 내세우는 것처럼 추경 액수를 늘렸냐는 중요하지 않다”며 “문제는 이들이 4년 내내 국민을 현혹시킨 전국민 돈뿌리기 게임에 동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의원은 직접적으로 이 대표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재난지원금을 주더라도 코로나 사태로 피해가 큰 자영업자들에 대해 현실적인 손실보상을 책정하는 방향이 맞다. 전 국민에게 용돈 뿌리기는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당내 비판이 거세지고 있지만 정작 드러내놓고 이 대표를 두둔하는 이는 하태경 의원 정도다. 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대표가 어제 밝힌 합의사항의 핵심은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에 추경 재원을 우선 집중하자는 것으로 이는 우리 당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것”이라며 “남은 예산에 대해 80% 지급 경계선 문제, 행정비용 문제가 있으면 비율을 늘리자는 더불어민주당의 제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조건부 검토였지 100% 지급 합의는 아니었다. 실제 합의된 내용까지 왜곡하며 침소봉대해서 내부 공격을 가하는 것은 자해정치”라고 강조했다.

당 지도부는 이 대표를 향한 직접적인 비판을 삼가면서도 당 내홍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습에 나섰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국회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합의했다는 사실 자체가 팩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준석 리스크’가 생긴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호사가들이 하는 말”이라고 했다. 김도읍 정책위의장도 “우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지원 대상을 두텁게 하고, 남는 재원이 있으면 전 국민까지 지급을 확대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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