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인구 최소 26만 6000명
국가가 아닌 가정에만 책임 전가

어느덧 해가 바뀌었지만, 헌법은 여전히 무력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1항이 규정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발달장애인을 쏙 비껴간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들과 이들의 가족들은 국가를 향해 헌법 수호를 촉구하고 있다. 장애가 있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2023년에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가 실현될 수 있을지 <뉴스포스트>가 알아본다. -편집자 주- 

지난 2018년 4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는 광화문 만인소’에 참석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관계자들이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18년 4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는 광화문 만인소’에 참석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관계자들이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의학적인 관점에서 발달장애는 특정 질환 또는 장애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나이에 이루어져야 할 발달이 성취되지 않은 상태를 포괄한다. 발달 선별검사에서 해당 연령의 정상 기대치보다 25%가 뒤쳐지면 발달장애로 판정한다. 반면 현행법은 발달장애인을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 그 밖에 통상적인 발달이 나타나지 않거나 지연돼 일상·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으로 비교적 단순하게 정의한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발달장애인 인구는 지난 2021년 기준 25만 6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는 장애 분류 시 발달장애인을 따로 포함하지 않아 추정치만 계산이 가능하다.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 인구를 합하면 발달장애인 인구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지적장애인이 22만 2000명, 자폐성장애인이 3만 4000명 이상으로 지적장애인 수가 더 많다.

수십만 명에 달하는 발달장애인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의 가족까지 더하면 발달장애인 정책을 필요로 하는 인구 규모는 최소치로 잡아도 2배 이상 커진다. 하지만 정책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장애인 수당 등 일부 금전적 지원이나 주간 활동지원 서비스 등을 제외하면 발달장애인을 오롯이 가정이 책임지는 구조다. 자녀 살해나 학대 등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안전을 해치는 강력 범죄 역시 열악한 지원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발달장애인 가족 약 60%가 극단적 생각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가족 43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발달장애인 가족 59.8%가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다고 답변했다. 이유는 평생 발달장애 가족을 지원해야 하는 부담감(56.3%)이 가장 큰 것으로 조사됐고, 발달장애 가족 지원으로 신체적·정신적 어려움(31.1%)이 뒤를 이었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란?

2018년 발달장애인 당사자들과 가족들은 이들의 안전은 물론 ‘인간답게 살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며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촉구했다. 삭발과 삼보일배 등의 투쟁 끝에 문재인 정부는 같은 해 9월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발달장애인의 생애 전체를 대상으로 한 대책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기존 복지서비스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점이 있었다.

장애계가 주장하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의 주요 내용은 ▲‘의미 있는 낮’ 활동 지원 ▲노동권 보장 ▲자립 가능한 주거 정책 확대 ▲‘자기 권리 옹호’ 보장 ▲연금 등 소득 보장 ▲지원 의사 결정제도 도입 ▲중증 중복 장애인 지원 ▲발달장애인 가족을 위한 복지 지원 등이 있다. 여덟가지 항목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들과 가족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모든 대책을 아우른다.

지난해 4월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주요 정책을 촉구하는 장애인 단체 인사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해 4월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주요 정책을 촉구하는 장애인 단체 인사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기 위한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보면 성인 발달장애인들이 갈 곳 없이 집에 머무르지 않도록 ‘의미 있는 낮’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발달장애인 노동자들의 특성을 고려한 직무를 개발해야 하고, 모든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역시 보장받아야 한다. 또한 발달장애인도 자립이 가능한 주거를 확보하고, 24시간 활동지원 보장과 ‘주거 코치’와 같은 지원인 배치 등으로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돕는다. 

편견과 차별 같은 걸림돌은 제거해야 한다. 가족이나 지원 종사자들에 의해 발달장애인의 삶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자기 권리 옹호’를 인정해야 한다. 발달장애인의 자기 권리 옹호 활동을 지원하는 국제 단체 ‘피플퍼스트’ 활동이 대표적 예다. 

아울러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금융거래나 행정 서류 발급을 거부당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자기 결정권을 제한하는 성년후견인제도가 아닌 지원 의사 결정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경제적 지원 역시 중요하다. 최소한의 경제생활을 보장하도록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고, 장애인 연금을 현실화해야 한다. 장애인 가구 특성을 고려한 생계 급여와 의료 급여를 우선 지원해야 한다. 

두 가지 이상 장애를 겪는 중증 중복장애인을 위한 지원이 절실하며 관련 병원과 센터,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가족 구성원에 대한 심리 치료 등의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

“발달장애인도 혼자 살 수 있는 사회”

발달장애인과 이들 가족이 장애에 구애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안은 이미 나와 있다. 하지만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실현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어느덧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에서 과연 돈이 문제일까. 장애인에 대한 고질적인 차별과 열악한 인식이 문제일까. 새 정부 역시 발달장애인과 가족을 위한 대책을 내놨지만, 전 정부와 비교해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고안한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은 의의와 한계점을 모두 남겼고,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의 투쟁은 임기 내내 이어졌다. 문 정부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실현을 차기 정부의 몫으로 남겨뒀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다가오면서 발달장애인 가족을 위한 근본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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