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낮은 운임과 경영 비효율 등이 크게 작용"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연초부터 노인들을 움츠러들게 하는 뉴스가 있다. 지하철 무임승차 대상 연령을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그것이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의 발언이 이를 촉발했는데 도시철도 적자 폭이 커지는 책임을 무임승차 탓으로 돌려 논란이 일고 있다.
무임승차, 경로우대 정책 중 하나
노인에 대한 철도 무임승차는 <노인복지법>에 명시돼 있다. 이 법 제26조 ‘경로우대’ 조항에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수송시설 및 고궁·능원·박물관·공원 등의 공공시설을 무료나 이용요금을 할인해 이용하게 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노인복지법> 시행령에는 경로우대 요금이 적용되는 항목과 할인율이 명시됐다. 철도 요금 중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는 30%를, 통근열차는 50%를 할인해주고, 수도권 전철과 도시철도는 전액 할인해준다.
지하철의 노인 무임승차 제도는 1980년에 70세 이상의 고령자에게 요금 50%를 할인해주며 시작됐다. 법적 노인 연령은 <노인복지법>이 시행된 1983년에 65세로 정해졌고, 1984년부터 노인들에게 100% 할인이 적용됐다.
제도 초기에는 시내버스 무임승차도 함께 적용되었으나 1990년대 들며 버스에 대한 무임승차는 폐지됐다. 대신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무료승차권을 배부하기도 했지만, 서서히 사라졌다. 현재 대중교통 중에는 지하철을 포함한 철도에만 경로우대가 적용돼 있고, 지하철의 노인 무임승차는 39년 동안 시행되고 있다.
제도 시행 초기에는 노인 인구 비중이 높지 않아 큰 문제 없이 시행됐다. 전통적인 경로우대 사상이 녹여진 제도라 각 세대의 이해도 있었다. 문제는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서, 초고령사회를 지나 고령사회가 되며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2017년에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고령사회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긴 사회를 말한다. 통계청은 2019년 장래인구추계에서 2025년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초고령사회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20% 이상인 사회를 말한다. 노인 인구가 많아진 만큼 노인복지에 들어가는 재정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무임승차, 지자체만의 고민이어야 할까?
지하철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구간이 많다. 그래서인지 서울과 대구의 지자체장이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문제를 건드렸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월 말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무임승차는 중앙정부가 손실 보전을 일정 부분이라도 해주는 게 논리적으로 맞다”고 언급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하철과 지상철 등 도시철도 무상 이용 대상을 현재 65세 이상에서 70세 이상으로 높이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SNS를 통해 밝혔다.
지자체장들의 무임승차에 대한 의견 표명과 함께 각종 공론장은 노인 연령 상향과 무임승차제에 관한 찬반 의견으로 뜨겁다. 상반된 의견은 세대 간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경로우대를 위해 도입된 제도가 노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일으키기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졌다.
지자체장들이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를 건드린 건 도시철도 운영 적자의 부담을 지자체가 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무임승차가 국가에서 정한 법령에 명시돼 있으니 정부, 즉 기획재정부가 함께 부담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언도 그간 있었다. 사실 수도권 광역철도를 운영하는 코레일에는 무임승차 손실의 일부를 정부에서 보전해주고 있기도 하다.
지난 14일 한 언론은 대통령이 주재한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오세훈 시장이 중앙정부가 대중교통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을 보전해주면 대중교통 요금 인상 폭을 낮추겠다 발언했다고 회의에 참석한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입을 빌어 전했다.
오세훈 시장의 무임승차 관련한 여러 발언은 지하철 운행에 국비 지원을 끌어내려는 포석의 의미가 큰 것으로 보인다. 지하철 운영은 큰 적자를 보는 사업인데 국비 지원을 안 해줘서 무임승차를 줄일 수밖에 없고, 요금도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정부는 물론 시민들에게도 호소하는 것.
무임승차, 이동권을 보장해주는 복지
2020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38.9%였다. 2019년 기준으로 13.5%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의 세 배에 이른다. 무임승차는 이러한 빈곤층 노인들에게 이동권을 보장해주는 복지정책이다.
그런 면에서 노인 연령 상향은 상대적 빈곤을 겪는 젊은 노인들에게 이동권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활동적이지만 상대적 빈곤을 겪는 젊은 노인들이 만약 교통비가 부담돼 외출을 줄인다면 건강해야 할 노후생활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14년에 낸 <교통부문 복지정책 효과분석: 지하철 경로무임승차를 중심으로>를 보면 ‘지하철 경로무임승차제도’는 노인이 사회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기본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이동권을 제공하면서, 의미 있는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를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그 가치는 2012년 기준 3361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이들은 무임승차가 노인들에게 활발한 사회 활동을 돕는 무형의 효과도 있다고도 봤다. 즉, 자살자 및 우울증 감소, 교통사고 감소, 의료비 절감 등 긍정적인 효과가 많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또한 지하철 운영의 운송원가 분석 결과를 통해 지하철 적자의 주된 원인이 무임승차라기보다는 초기 시설 투자비에 대한 원리금 상환, 운영 수지상의 만성적인 적자구조라고 봤다. 다른 교통 전문가들은 이런 원인에 더해 지하철 운영사의 경영 비효율을 들기도 한다.
강조하자면 지하철 운영 재정적자의 근본 원인으로 적정한 수송 원가에 비해 낮은 운임 징수 등 구조적 문제가 크게 작용하는 반면, 무임승차제도로 인한 손실은 그 주된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인의 무임승차는 수도권 전철이나 도시철도가 다니는 일부 대도시에 국한된 문제이다. 대도시 아닌 지역은 버스 이용도가 높다. 하지만 버스 무임승차는 노인에게 해당하지 않는다. 전철이 닿지 않는 곳에 사는 노인들에게는 불공평할 수도 있는 제도이다.
만약 노인 무임승차가 재정에 부담이 돼 노인 연령 조정을 염두에 둔다면, 교통 복지 전반으로 문제를 확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전철은 물론 각종 버스 등 다른 대중교통 분야로 교통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하는 것. 그렇게 된다면 지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주무 부처들도 함께 고민해야 하는 과제가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