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피해 증가...머그샷 법 통과
인권 vs 알 권리...신상공개의 역사
범죄자의 신상공개는 국민 다수의 지지에도 치안 당국이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민감한 주제다. 높은 인구밀도와 초고속 인터넷망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범죄자 신상공개는 사실상 사회적 사형(死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신상공개 당사자를 넘어 제3자까지 예상치 못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흉악범죄 문제가 커지면서 범죄자 신상공개 관련 논쟁 역시 격렬하게 이뤄지고 있다. <뉴스포스트>는 처벌과 관용 사이에서 합의점이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흉악범 신상공개에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던 한국 사회에서 최근 큰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수사기관이 중대 범죄 피의자의 얼굴을 강제로 촬영해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특정 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본회의의 문턱을 넘었다. 법안은 대통령 재가를 거쳐 공포일로부터 3개월 후에 시행된다.
제정안은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할 때 결정일로부터 30일 이내의 얼굴을 보이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과거에 촬영한 증명사진 따위가 아닌 현재 모습을 공개하고자 함이다. 수집한 사진·영상물 등을 활용하거나 수사기관이 직접 피의자의 얼굴을 강제로 촬영하는 '머그샷(Mugshot)'을 제작할 수 있다.
신상공개 대상 범죄 혐의도 넓어진다. 특정강력범죄와 성폭력은 물론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내란·외환, 폭발물 사용, 현주 건조물 방화 치사상, 중상해·특수상해, 범죄단체조직, 마약 관련 범죄 등으로 확대된다. 재판 단계에서 특정중대범죄로 공소사실이 변경될 경우에는 검찰도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 기존에는 기소 전 경찰만이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했다.
범죄자 신상공개, 대한민국에서는 하늘의 별따기?
대한민국은 미국이나 일본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범죄자 신상공개에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기존에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병역법에 따른 병역기피자,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양육비 채무자 등이 신상공개 대상이다. 이마저도 공개 범위가 법안에 따라 달라 피의자의 얼굴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다수였다.
흉악범 신상공개에 원래부터 보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군사정권 때까지만 해도 신문 등 언론에서 흉악범의 얼굴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심지어 피의자의 자택 주소 등 불필요한 개인정보가 공개되는 사례도 있었다. 이 때문에 범죄 혐의와 무관한 피의자의 가족들까지 연좌제로 묶이는 피해가 발생했다.
무분별한 흉악범 신상공개는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제동이 걸렸다. 언론 보도에서 흉악범으로 지목돼 얼굴까지 공개된 사람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무죄 판결을 받은 당사자는 해당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1998년 법원은 언론의 보도가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판결의 여파로 2000년대 초중반까지 흉악범의 얼굴을 쉽게 보기 어렵게 됐다.
신상공개 필요성이 다시 부각된 때는 2009년 이른바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이 알려진 이후다. 사건의 여파로 이듬해에는 법이 바뀌면서 일부 죄목에 한해서만 흉악범들의 신상이 공개됐다. 하지만 과거에 촬영한 사진이 공개되면서 현재 얼굴과 매우 다르다는 비판이 나왔다. 범죄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지 않을 경우에는 과거 사진조차 공개되지 않는 형평성 문제도 컸다.
대한민국 사회는 수많은 흉악범죄를 겪으면서 피의자의 신상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고민해 왔다. 그 결과 선진국에서 사용되는 피의자 머그샷 촬영을 도입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이제는 새로운 법에 따라 흉악범의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 사이에서 무엇이 정답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