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국민연금] ① 31년 不信의 역사
[기획특집-국민연금] ① 31년 不信의 역사
  • 이해리, 김혜선 기자
  • 승인 2019.08.0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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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노후를 책임지겠다던 ‘국민연금’이 골칫덩이 신세다. 고갈될까 불안하고, 관리가 잘 될지 의심되고, 보험료율이 인상될까 걱정되고.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곳곳에서 훼방꾼이 나타난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로 기금의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며 세대간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 기획에서는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과 쟁점들에 대한 세대별 생각을 듣고 전문가의 진단을 통해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방향을 5회에 걸쳐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그래픽=뉴스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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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포스트=이해리, 김혜선 기자] 국민연금은 세대 간 연대(連帶)를 기반으로 한다. ‘국가가 노년세대를 부양한다’는 신뢰 아래 젊은 세대는 연금을 붓고 노년 세대는 생활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연금만큼 세대 간 갈등이 첨예한 주제도 없다. 내는 시기와 받는 시기가 다르다 보니 ‘내가 연금을 받을 때 기금이 고갈되지 않을까’라는 공포가 항상 자리하고 있다.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도입 시기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든든했던 적이 없었다. 지난 1988년 국민연금을 최초로 도입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도 제도 도입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1984년 국민연금 도입을 주요 정책과제로 제시하던 국책 연구자에게 “한국에서 이런 것을 하면 경제가 망해”라며 무안을 줬다고 한다. 2년 후 경제 참모의 끈질긴 설득 끝에 전 대통령이 국민연금 도입을 검토해보라고 승인을 내렸을 때도 “참 질긴 사람들이구먼. 내가 그렇게 안 된다고 말해왔는데 말이지”라며 혀를 찼다.

연금제도가 성숙해가던 2000년대 초반에도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은 상당했다. 지난 2004년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진 ‘안티 국민연금’ 운동은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국민연금 8대 비밀’이라는 인터넷 글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국민연금 반대운동 본부, 국민연금폐지카페 등 인터넷 상 ‘안티카페’가 만들어지고 급기야 국민연금 폐지운동까지 번졌다.

(그래픽=뉴스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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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은 최근까지도 이어진다. 지난 4월 시장조사 전문업체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15~59세 직장인 1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21.1%만이 ‘국민연금제도에 신뢰감을 가지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되어야 할 국민연금이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 연금이 ‘불신 연금’이 된 까닭

도입 초기 국민연금은 ‘꿈의 연금’이었다. 정부에서는 월급에서 3%만 내면 60세부터는 자신이 받던 평균 월급의 70%를 지급해준다고 약속했다. 물론 이 같은 조건은 가입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내세운 ‘특판’ 성격이었고, 원래 보험요율은 월급의 9%로 설계됐다. 정부는 초기 5년 3%, 이후 5년 6%를 적용해 점차 납부할 보험요율을 서서히 올렸다.

월급에서 떼이는 액수가 크지 않다 보니 제도 시행을 앞둔 1987년 말 국민연금 실제 적용대상 사업장(10인 이상) 중 93.2%, 근로자 94.8%가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국민연금 가입대상은 빠른 속도로 확장됐다. 도입 4년 만에 5인 이상 사업장으로 가입대상이 확대됐고, 3년 후에는 농어촌지역까지 국민연금에 가입했다. 시행 11년 차인 1999년도에는 직장에 다니지 않는 도시지역까지 확대하면서 진정한 ‘국민의 연금’으로 모습을 갖췄다.

문제는 그 다음 부터였다. 무리하게 가입 대상을 확대하다 보니 국민들의 연금 이해도가 떨어졌고 지역가입자(주로 자영업자)들의 연금 납부 기피 현상이 일어났다. 소득을 하향 신고해 최대한 국민연금을 납부하지 않으려 했고, 지역가입대상자 중 절반이 넘게 납부예외자가 발생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소득을 신고했어도 실제 보험료를 납부한 이는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정부는 소득하향신고를 방지하기 위해 권장소득액을 사전에 제시하고 직권으로 소득을 결정, 국민연금을 납부하게 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결과적으로는 이 같은 조치가 국민 불신을 초래했다. 정부는 자영업자의 권장소득을 산정하기 위해 국세청 사업소득 신고 자료와 의료보험부과자료 등을 이용했는데, 기본적으로 부정확한 자료를 쓰다 보니 실제 소득보다 과다하게 권장소득이 제시됐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국민 불신을 야기한 또 다른 원인은 1993년에 도입된 공공자금관리기금법(공자법)이다. 당시 정부는 SOC 투자, 중소기업 및 농어촌 지원 등 공공목적에 필요한 부족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기금으로부터 여유 자금을 빌려 가도록 했다. 이 법을 근거로 정부는 국민연금 기금을 강제적으로 차용할 수 있게 됐다. 당연히 사회각층으로부터 ‘국민 노후자금을 정부가 마음대로 가져다 쓴다’는 비판이 쇄도했고, 1995년에는 공자법 위헌소송까지 제기됐다. 헌법재판소는 공자법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공자법을 둘러싼 비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공자법은 1999년 사실상 폐지됐고 지난 2001년 이후로는 예탁금이 완전히 없어졌다.

이 밖에도 국민연금이 ‘불신의 아이콘’이 된 이유는 다양하다. 공자법 시행 당시 ‘적정 이자를 주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경제 부처는 공자법이 폐지되자 약속했던 이차보전(국가가 특정목적을 위하여 특정한 부문에 조달된 자금의 조달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를 보전하는 것)을 거부했다. 국민연금 기금을 마음대로 쓰고 이자도 제대로 갚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1995년에는 금융투자 외 복지사업으로 민간보육시설과 유료 노인복지시설을 늘리기 위해 설치자금을 대여해주는 사업을 벌였지만 회수율이 바닥을 쳤다. 지난 2000년 개장한 청풍리조트는 제대로 수익률이 나지 않아 ‘계륵’으로 전락했다.

결국 국민연금 불신은 △가입자들의 제도 이해 부족 △국민연금 내실화 과정에서 갈등 △기금 운용에서 신뢰도 하락 등 삼박자가 갖춰지며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불신 요소의 근원에는 ‘언젠가는 기금이 고갈된다’는 불안이 깔려있다.

영원한 난제, 연금고갈

국민연금이 국민들의 불신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기금 고갈로 노후보장은커녕 그동안 낸 보험료마저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보다 돌려받는 연금 급여가 많도록 설계돼 있어 기금 고갈은 필연적이고, 그 예상 기간이 급속히 짧아져 가고 있어 청년 세대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지난 1998년과 2008년 두 번에 걸쳐 일어난 연금개혁도 기본적으로 연금 고갈시기를 늦추기 위해 시행됐다. 1차 국민연금 개혁에서는 소득대체율 70%에서 60%로 축소하고, 연금수급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했다. 2차 개혁에서는 소득대체율을 60%에서 50%로 낮추고 매년 0.5% 포인트씩 낮아져 2028년에는 40%에 도달하도록 수정했다.

연금 수령시기가 늦춰지고 소득대체율이 급락하면서도 당장 납부해야 하는 돈인 ‘보험료율’은 단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국민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저항이 센 보험료율 인상을 단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서구 공적연금 제도는 일반적으로 급여수준을 높이고 연금수급자도 늘리는 식으로 발달했지만 우리나라는 정 반대의 길을 걸은 셈이다.

(그래픽=뉴스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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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인 국민연금의 재정 건전성 문제는 지난 2003년부터 5년단위(2008년, 2013년, 2018년)로 실시되는 재정계산 때마다 불거진다. 특히 지난해 재정 계산에서는 3차와 비교해 국민연금 기금의 소진 연도가 2060년에서 2057년으로 3년 당겨졌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재정 계산 이후 노후 소득보장 강화에 초점을 맞춘 국민연금 개편안을 내놨다. 개편안에 따르면 기금 고갈 이후 미래세대는 소득의 최고 33%를 보험료로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많은 청년 세대들은 노후에 국민연금을 못 받게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는 한편 부족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금액을 납부해야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이 같은 국민연금에 대한 가입자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국민연금 지급을 보장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론조사에서 확인됐다.

지난해 보건복지위원회 김광수 의원이 여론조사기관 타임리서치에 의뢰해 성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지급보장 법제화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71.6%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5명 중 1명(19.0%) 수준이었다.

지급보장 명문화는 지난 2006년에도 국회 등에서 법제화가 추진됐으나 “정부 부채로 잡혀 국가 신인도가 떨어지고 국가재정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당시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현재 국민연금 지급액은 공무원연금과는 달리 국가가 고용주로 책임져야 할 연금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 부채 계산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국가 지급보장을 명문화하게 되면 2057년 기금 고갈 이후 정부의 세금으로 수백조 원의 지급액을 채워야 한다. 이에 연금 급여가 공식적인 국가 부채로 잡혀 국가의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국가의 국민연금 지급보장은 보류되어 왔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수석 비서관·보좌관 회의 모두발언에서 “국가의 지급 보장을 분명하게 해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주기를 바란다”고 명문화 추진을 제안해 제도 개선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부에서도 최대한 빨리 제도 개선을 구체적으로 할 예정”이라면서 “경사노위(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아직 논의중이여서 현재로서는 정해진 것이 없지만 올해 하반기에는 제도에 대해 연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 정권이나 역대 어느 정권도 지급 보장 문제를 명명백백히 해결하지 못했다. 정부는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이 같은 문제를 다음 정부에 미루는 ‘폭탄 돌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가입자들도 세대 간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야 할 것이다. 

(그래픽=뉴스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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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리, 김혜선 기자 h4218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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