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화학 손들어준 ITC...SK이노 변론 기회도 못 얻는다
- SK이노 “결정문 공개 전까지 입장을 밝히기 어려운 상황”
- LG화학 “30년 지식재산권 보호가 본질”...수천억 원 지재권 사용료?
- 2조원 규모 투자한 SK이노 미국 조지아 공장...‘빈집’ 전락 우려
- 트럼프 지지로 당선...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지사 키맨(key man)될까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LG화학과 2차전지 영업비밀침해를 두고 다투던 SK이노베이션이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2차전지 영업비밀침해 소송에서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판결(Default Judgmet)을 내리면서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셀. (사진=SK이노베이션 제공)
SK이노베이션 배터리셀. (사진=SK이노베이션 제공)

이번 조기패소판결은 ITC가 최종결정 전 내리는 예비결정이다. 이번 소송에 대한 추가적인 사실이나 증거 조사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내달 초 예정됐던 SK이노베이션의 변론(Hearing) 절차가 생략돼 오는 10월 5일 ITC의 최종결정만이 남게 됐다.

업계는 SK이노베이션의 선택지를 △LG화학과의 협의 △美행정부의 ITC 결정 거부권 종용 △양자의 투트랙 전략 등 크게 세 가지로 보고 있다. <뉴스포스트>가 SK이노베이션을 둘러싼 활로를 짚어봤다.
 


SK이노베이션, ‘불리한 입장’서 LG화학과 협의 가능성


업계는 이번 조기패소판결로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과 물밑 접촉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최근 20여 년 동안 영업비밀침해 소송에 대한 ITC 조기패소판결 결정이 ITC의 최종결정에서 뒤집힌 전례가 없는 까닭이다.

16일 SK이노베이션은 공식 입장문의 말미에 “SK이노베이션은 그간 견지해 온 것처럼 LG화학과는 선의의 경쟁관계이지만,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그 기조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LG화학과 산업 생태계를 위해 파트너로서 협의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LG화학도 그동안 꾸준히 “조건부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LG화학은 영업비밀침해와 관련한 SK이노베이션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등의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16일 밝힌 입장문을 통해 LG화학은 “이번 소송의 본질은 30여 년 동안 축적한 당사의 소중한 지식재산권을 정당한 방법으로 보호하기 위한 데 있다”며 “LG화학은 2차전지 관련 지식재산권 창출 및 보호를 지속 강화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선도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9월 16일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이 만나 국내외 배터리 소송전을 놓고 대화를 나눈 바 있으나, 상황을 타개할 묘안을 이끌어내지 못한 바 있다. 업계는 당초 수조 원 규모의 글로벌 배터리 시장 패권을 놓고 팽팽하게 다투는 양사의 협의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4일 ITC가 조기패소판결을 내리면서 양사가 서 있는 지평이 달라졌다. SK이노베이션의 입장이 시급해진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이 ITC 조기패소판결이라는 ‘불리한 입장’에서 협의에 나선다면 LG화학에 수천억 원에 달하는 지식재산권 사용료를 지불하는 조건을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다.
 


2조원 규모 美조지아주 공장 ‘빈집’ 전락할 수도


美조지아주 잭슨 카운티 커머스시에 건설 중인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 조감도. (자료=SK이노베이션 제공)
美조지아주 잭슨 카운티 커머스시에 건설 중인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 조감도. (자료=SK이노베이션 제공)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8년 美조지아주 잭슨 카운티 커머스시에 연 9.8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을 결정하고, 지난해 3월 기공식을 했다. SK이노베이션은 커머스시 일대 약 34만 평 부지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을 내년 하반기 완공하고 오는 2022년 운용할 계획이었다.

테슬라 등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미국 현지에 배터리 공장을 설립해, SK이노베이션이 글로벌 배터리 업체로 거듭나겠다는 전략이었다. 올해 초 SK이노베이션은 급성장하는 미국 시장을 감안해 단계별로 투자 확대를 검토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1조 9,000억 원 규모였던 1차 투자 규모만큼을 올해 추가로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것이다.

당시 SK이노베이션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밝힌 50억불 투자가 현실화 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2018년 11월 ‘SK의 밤’ 행사에서 “사업이 잘되면 50억달러까지 투자를 확대하고 6천 명 채용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언급하며 추가 투자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

하지만 ITC가 조기패소판결 결정을 내림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ITC가 예비결정 그대로 최종결정을 내리면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내 배터리 셀과 모듈, 팩 등 관련 부품 소재에 대한 수입 금지 효력이 발생하는 까닭이다. 조지아주 공장 추가 투자는 물론, 현재 짓고 있는 공장도 활용하지 못한 채 ‘빈집’ 신세가 될 수 있다.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지사...SK이노베이션 키맨(key man)될까


브라이언 켐프 미 조지아주 주지사. (사진=뉴시스)
브라이언 켐프 미 조지아주 주지사. (사진=뉴시스)

반전의 여지는 있다. 美 행정부의 결정에 따라 SK이노베이션에게 또 다른 살길이 열릴 수 있는 것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ITC 소송 결과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업계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조지아주와 미 행정부가 일자리를 2,000개 이상 창출하고 순수 해외 1차 투자비만 1조 9,000억 원을 유치한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을 ‘빈집’으로 놓아두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SK이노베이션이 미 정부와 조지아주 주정부의 이런 입장을 공략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또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과 물밑 협상에 나서면서, 동시에 미 행정부에 거부권 행사를 종용하게 하는 투트랙 전략을 사용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공장이 들어서는 조지아주의 주지사 브라이언 켐프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지지를 받는 대표적인 공화당 인사다. 지난 2018년 7월 켐프 주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받아 조지아주 주지사 선거의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같은 해 11월 83대 조지아주 주지사에 당선된 바 있다.

켐프 주지사는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세제 혜택 등 조건을 제시했다. 지난해 3월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상 기공식에 참석한 켐프 주지사는 “SK이노베이션의 투자는 조지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일자리 창출 계획”이라며 “오늘은 열심히 사는 조지아 주민들에게 정말 신나는 날”이라고 말하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날 월버 로스 美 상무장관도 기공식에서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투자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이 결실을 보고 있다”고 했다.
 


SK이노 “향후 ITC 결정문 봐야 추가 입장 전할 것”


ITC의 조기패소판결 결정에 LG화학은 16일 오전 공식 입장문을 냈다. LG화학은 “LG화학은 조기패소판결이 내려질 정도로 고정한 소송을 방해한 SK이노베이션의 행위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SK이노베이션에 대한 법적 제재로 당사의 주장이 그대로 인정된 만큼 남아있는 소송절차에 끝까지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임할 것”이라고 전했다.

SK이노베이션도 이날 오후 “당사의 주장이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결정문을 검토한 후, 향후 법적으로 정해진 이의절차를 진행해 나갈 방침”이라는 짧은 공식 입장을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조기패소판결의 구체적인 이유가 적시된 ITC의 결정문이 나올 때까지 사내 분위기를 다잡고 기다리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면서 업계에서 내놓는 SK이노베이션의 여러 대응 전망에는 아직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17일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미국 조지아 배터리 공장 영업이 어려워질 것이란 이야기나, 우리가 美 USTR이 ITC 최종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나선다는 등 얘기는 모두 언론에서 보도하는 전망일 뿐”이라며 “아직 조기패소판결에 대한 결정문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입장도 밝히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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