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견 매력이요? 민족 전통 무예라는 독자적인 가치죠”
- 태권도·합기도 등 다른 무예 수련했지만...결국 택견으로
- “유도·검도만 중시하는 일제 잔재 문화 바뀌어야”
- 코로나19 확산 이후 국내외 택견판·무예학교 제약

평생직장이란 단어는 곰팡내 나는 책을 뒤적여야 찾는 빛바랜 훈장 닦는 소리가 된 지 오래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말하는 시대. 본지는 일찍이 자신의 업을 찾은 청년장인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충주택견전수관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청년 택견꾼 이병화(왼쪽)와 이다경. (사진=이상진 기자)
충주택견전수관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청년 택견꾼 이병화(왼쪽)와 이다경. (사진=이상진 기자)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택견은 한민족(韓民族) 맨손 무예다. 조선 정조 때 이만영이 편찬한 재물보에 ‘탁견’으로, 단재 신채호가 쓴 조선상고사에 ‘덕견’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던 택견은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에 등재된 후 현재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택견은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무예로서는 최초로 등재됐다.

우리 민족정신이 흐르는 택견은 화려한 중국 무예나 절도 있는 일본 무예와 다르다. 택견 품밟기와 활개짓엔 한민족 특유의 해학이 흐른다. 택견은 외유내강형 무예다. 택견 하는 사람을 택견꾼이라 하는데, 고의적삼을 입고 탈춤 추듯 땅에서 품밟기 하던 이들은 어느새 훌쩍 하늘로 날아오른다.

해학과 여유로움이라는 우리 민족정신을 잘 표현하는 탓에, 택견은 일제강점기 탄압의 대상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순사를 붙여 택견꾼을 감시하고 택견판을 금지하는 정책을 폈다. 해방 이후 택견꾼 송덕기가 일제강점기 맥이 끊길 뻔했던 택견을 전승해 오늘날에 이른다.

<뉴스포스트>는 18일 충청북도 충주 소재 충주택견전수관에서 청년 택견꾼 이병화(38)와 이다경(23)을 만났다. 본지는 21세기에 민족정신의 보고를 지키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택견 시범을 보이는 택견꾼 이병화와 이다경. (사진=이상진 기자)
택견 시범을 보이는 택견꾼 이병화와 이다경. (사진, 편집=이상진 기자)

▶택견이 낯선 독자들도 계실 텐데.
이병화: 택견은 우리 민족의 전통 무예다. 과거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택견꾼들이 활동했다. 지역별로 날파람이라든지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구한말 이후 가장 유명한 택견꾼이 초대 인간문화재인 송덕기 선생님이다. 서울 종로를 중심으로 활동하셨다. 이외 신재영 선생님은 왕십리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또 김홍식 선생님이 구리개 택견이라고 서울 외곽인 구리에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에 탄압으로 맥이 끊길 뻔했던 택견을 해방 이후 송덕기 선생님을 중심으로 전승해왔다.

▶왜 택견꾼이 됐나?
이병화: 처음엔 태권도를 했다. 5단까지 했고, 사범으로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사범 생활을 하면서 택견을 ‘글’로 만났다. 태권도와 택견이 같은 무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다. 택견을 접해보고자 했는데, 운이 좋게도 동네 30분 거리에 택견 전수관이 하나 있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택견의 매력에 빠져 지낸다.

이다경: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했다. 부모님이 택견꾼이었던 건 아니고. 어렸을 때 취미로 운동 하나는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으셨다. 택견 하다가 중간에 태권도와 합기도 등도 몇 년 했는데, 결국 택견을 잊지 못하고 돌아왔다. (웃음)

▶택견의 매력을 꼽는다면.
이다경: 우리 민족의 전통 무예로서 가지는 독자적인 가치가 크다. 택견 그 자체가 한민족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겉은 해학과 여유로움이 있지만, 그 속은 강하고 날렵하다. 외유내강형 무예다. 또 남녀노소 상관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생활 체육으로 택견을 접해도 건강 증진에 큰 도움이 된다. 이런 까닭에 택견을 평생 즐기는 게 가능하다. 나도 평생 택견을 수련할 작정이다.

이병화: 무예로서의 모습이다. 택견 수련 체계는 오래 다닌다고 저절로 승급하는 체계가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실력도 좋아야 하지만, 스승과 제자 사이에 정신적 유대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때 스승과 제자는 서로 가르침을 주고받는다. 그러면서 내공이 쌓인다.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호혜적인 관계다. 도장 문화를 기반으로 한 현대의 다른 무예에서는 사라진 수련 문화다.

이다경 택견꾼은 택견의 매력을 전통 무예로서의 독자적인 가치라고 설명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이다경 택견꾼은 전통 무예라는 독자적인 가치를 가진 택견에 매력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택견의 승급 체계와 수련 체계가 낯설다.
이다경: 승급 체계는 ‘째’와 ‘동’ 체계다. 가장 낮은 열두째부터 가장 높은 첫째까지 단계를 1년 동안 마치면 ‘한동’을 딴다. 태권도의 1단에 해당하는 ‘유동자’다. 한동을 취득한 이후 2년이 지나야 다음 단계인 ‘두동’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생긴다. 한동, 두동, 석동, 넉동... 이렇게 아홉동까지 있다. 아홉동은 태권도의 9단과 같은 급수다.

이병화: 택견에도 태권도의 품새에 해당하는 연속 동작이 있다. ‘본때뵈기’라고 하는데 앞의 거리와 뒤의 거리, 별거리, 결련거리, 육모거리 등으로 구성된다. 각각의 ‘거리’는 ‘마당’으로 구성되고. 앞의 거리는 여덟 마당, 뒤의 거리는 네 마당, 별거리는 여덟 마당 등이다. 

▶태권도나 합기도 도장과 비교하면 ‘택견 전수관’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병화: 도장이라는 문화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월 얼마를 지급하고 무예를 배운다는 건 근래의 일이다. 본래 택견은 스승과 제자가 아버지와 아들 같은 유대관계를 형성했다. 도장 체계를 태권도나 합기도 등에서 먼저 시작하고 택견이 쫓아가는 형국이다. 그러면 경영도 따라가야 하는데, 택견이 그게 안 됐던 거다. 전수관을 차리고 제자를 받았는데, 택견은 동작이 될 때까지 같은 동작만 6개월 동안 반복했다. 가볍게 택견을 배우려는 분들은 모두 떠났다.

이다경: 택견 전수관이 전국에 200개 정도가 있다. 태권도나 합기도 등 다른 도장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편이다. 한 전수관에 200~300명 수련생이 있는 곳도 있는데, 10명이 채 안 되는 곳도 많다. 이런 전수관은 ‘투잡’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택견은 선배가 말한 이유로 그렇게 활발하게 보급되지 않는 형편이다.

▶택견 협회마다 가르침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통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이병화: 우리나라의 택견 협회는 크게 세 곳이 있다. 한국택견협회, 대한택견회, 결련택견협회 등이다. 통합은 소통과는 별개다. 택견 발전을 위해서 소통은 필수다. 소통만 잘 되면 통합은 안 해도 그만이다. 오히려 통합하지 않는 게 택견 발전에 긍정적일 수도 있다. 통합해서 빨리 발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협회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택견을 수련한다면 더 다양하고 폭넓게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활개 택견공연단’ 활동이 궁금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은 없는지?
이다경: ‘활개’는 이두광 단장과 박종보 실장, 이병화 선배가 2012년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택견꾼이 아닌 여러 객원 식구가 있다. 국악, 판소리, 한국무용, 마임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뮤지컬과 연극 형식으로 택견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한다. 나는 ‘활개’에 들어가기 위해 테스트를 받는 중이다.

이병화: 코로나19 이후로 정부나 지자체 공모사업이 엎어진 게 많다.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주저앉을 수는 없으니까, 위기를 기회 삼아서 더 좋은 공연을 보여드리려고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소규모로 이뤄지는 택견 체험 활동이나 작은 마당극에서 공연한다.

▶택견을 알리기 위한 해외 활동에도 제약이 있을 것 같다.
이병화: 코로나 전에는 작게는 해외 길거리 시범공연을 자주 했다. 문화재청이나 한국택견협회와 연계해서 공연하기도 했고. 프랑스나 독일, 터키, 그리스, 말레이시아, 미국, 브라질, 카자흐스탄 등지를 돌며 택견 공연을 선보였다. 중국에 갔을 때는 현지 태극권협회와 MOU를 맺고 무예 교육을 했다. UN과는 장기적인 ‘무예 열린 학교’를 진행했다. 무예로 한국 문화를 알리고, 현지 청소년의 성장 발달을 돕기 위해 캄보디아에서 한 달 정도 택견 수업을 했다. 역시 코로나19로 지금은 해외 공연도 중단된 상태다.

이병화 택견꾼은 전통 무예인 택견이 다른 무예만큼 대접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이병화 택견꾼은 전통 무예인 택견이 다른 무예만큼 대접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택견꾼으로서 아쉬운 점은.
이병화: 택견이 전통 무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다른 무예만큼 대접받지 못한다는 건 문제다. 택견은 ‘동’ 체계다. 태권도의 1단은 택견의 한동, 아홉동은 태권도의 9단에 해당한다. 문제는 택견의 ‘동증’을 태권도나 유도, 검도의 ‘단증’만큼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다. 예를 들면 경찰 가산점은 유도와 검도를 메인으로 잡는다. 아직 일제 잔재가 남은 거다. 기본 경찰교육이나 공무원 기본교육에라도 택견 과정을 포함해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이다경: 개인적인 면에선 택견 수련을 수년간 쉬었다는 거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중학교 입학 전까지 택견을 수련했다. 2007년 문화관광부장관상 전국 택견대회 개인전 1위 등 개인전 1위 10개, 단체전 1위 3개를 수상했다. 하지만 학업에 열중하기 위해 택견 수련을 중단했다. 택견을 다시 시작한 건 1년 전부터다. 취업을 목적으로 한국외대 생명공학과에 진학했지만, 택견을 잊을 수 없어 국제스포츠레저학부를 이중전공하고 있다.

▶택견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언한다면.
이병화: 예전 무예를 중시하는 문화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지금 도장을 벤치마킹한 문화처럼 가볍게 가르쳐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동작을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다른 택견꾼들은 반대할 수 있다. 지금 택견은 태권도나 합기도와 비슷한 체계로 가다 보니까, 무난하게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게 됐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통한 택견 특유의 가르침이 소실됐다. 초반에는 힘들겠지만, 택견의 특징을 이걸로 삼고 다른 도장과 달리 택견은 무예 본연의 모습을 뚜벅뚜벅 걷기를 바란다. 다른 무예와 차별점을 무기로 전통 무예를 지켜나가면서 보급해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