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보1호 숭례문 복원 등 다양한 국보·보물 작업 참여한 이백현 석장 이수자
- “우리나라 전통 석조각 구석기부터 유래...화강암 다루는 독보적 기술 보유”
- “지자체나 사찰, 중국 석조각 대신 독보적 기술 가진 전통 석조각 활용해야”
- “돌에도 결이 있다...결에 맞춰 작업하지 않으면 석조각 불가능”
평생직장이란 단어는 곰팡내 나는 책을 뒤적여야 찾는 빛바랜 훈장 닦는 소리가 된 지 오래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말하는 시대. 본지는 일찍이 자신의 업을 찾은 청년장인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수만 번의 망치질로 완성하는 전통 석조각에는 석장(石匠)의 희로애락이 오롯이 담긴다. 정과 망치로 단단한 화강암을 깨부순 자리마다 석장의 혼불이 스며드는 까닭이다.
돌에도 결이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결을 거슬러 때리면 바위 속에 숨은 사물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치석(治石)에 앞서 치심(治心)해야 하는 이유다. 처음엔 무심하게 툭툭 돌을 털어내던 석장은 사물이 제모습을 드러낼수록 어깨에 힘을 빼고 마음과 돌을 다스린다.
화강암 깊숙이 감춰진 사물을 세상에 드러낸 석장은 곧바로 다른 바위로 향한다. 그리곤 다시 처음부터 번뇌를 갈아낸다. 그래서 석장의 삶은 점수점오(漸修漸悟) 하는 구도의 삶이다.
7일 뉴스포스트는 이백현(39) 국가무형문화재 120호 석장 이수자를 만나 청년 석공의 삶과 깨달음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 소재 석조공예관에서 진행했다.
▶다른 분야 전통 기술도 마찬가지겠지만, 거친 돌로 작업하는 전통 석조각은 접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석장(石匠) 이수자가 됐는지.
“이재순 국가무형문화재 석장 기능보유자가 아버지다. 아버지는 2007년 우리나라 최초의 석장 인간문화재로 인정받기도 했다.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가업을 잇는 개념으로 봐도 되고. 아버지를 따라 유년시절에 미술관, 박물관, 전통 불교 사찰 등을 많이 갔다. 그때부터 전통 조각이나 현대 조각, 현대 회화 등 미술 전반에 걸친 흥미를 키웠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석공일을 하고 있더라. (웃음)”
▶석장 이수자로서 그동안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석구조물 분야로 보면 다양한 보물과 국보 복원 작업에 참여했다. 2007년 보물 190호인 원주 거돈사 원공국사승묘탑 재현, 2008년 보물 139호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복원, 보물 446호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비 복원, 2010년 국보 1호 숭례문 육축 및 성곽 복원, 2014년 보물 6호 고달사지 원종대사혜진탑비 복원, 2016년 국보 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복원, 2018년 국보 101호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 복원 등 작업이다.”
▶전통 석조각은 주로 불교 사찰과 관련 있다고 보면 되나?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불교 사찰과도 인연이 깊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보다는 더 넓은 개념이다. 전통 석조각은 정, 망치, 털이개, 도드락, 쐐기 등 전통 도구를 이용해서 돌을 가공해 조각하는 기술을 이야기한다. 그걸 할 줄 아는 사람을 석장이라고 부른다. 석장은 국가무형문화재 120호이기도 하다. 전통 석조각 분야는 크게 두 가지 분야로 나뉜다. 석축과 지대석 등 전통 건물구조물을 설치하는 석구조물 분야와 불상이나 석탑 등 조형물을 제작하고 설치하는 석조각 분야다. 나는 문화재 복원 등 석구조물 작업도 하지만, 주로 석조각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 석조문화가 흔히 삼국시대부터 시작됐다고 알려졌는데.
“시초부터 말하자면, 선사시대부터다. 구석기의 뗀석기부터가 전통 석조문화의 시작이라고 보면 된다. 이게 신석기의 간석기, 청동기의 고인돌 등으로 이어졌다. 고구려 장군총의 벽화고분도 석조문화 가운데 하나고. 본격적인 석조문화라고 할 만한 건 알려진 것처럼 삼국시대부터다. 전쟁이 많아서 돌로 만든 석성이 많이 지어진 게 이유였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로는 불교 전파를 들 수 있다. 불교가 전파되면서 사찰 건립에 따른 다수의 석조물과 조형물이 제작됐다.”
▶서양 석조문화와 전통 석조문화가 다른 점이 있다면.
“유럽을 비교대상으로 보면 재료부터가 다르다. 이태리 카라라 지역 등 유럽과 북아프리카에서는 대리석과 사암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대부분의 재료가 대리석과 사암이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이나 이집트 피라미드, 오벨리스크, 여러 가지 인물 조각상들이 모두 그렇다. 이것들을 재료로 규격화한 정밀한 조각이 르네상스까지 이어진다.
반면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3국은 화강암이 많이 나온다. 화강암은 대리석이나 사암에 비해 굉장히 단단하다. 그래서 조각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 가운데서도 청동기 시대부터 화강암 채취 가공기술이 존재했다. 그래서 화강암에 대한 이해가 높고 독보적인 제작 능력을 보유했다. 우리나라 불상이 대부분 석불인데 비해, 일본은 목불, 중국은 소조불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전통 석조각 작업 과정과 기간이 궁금하다.
“모든 석공은 작업에 들어가면, 다듬어지지 않은 거대한 돌덩이를 마주해야 한다. (웃음) 이걸 대략 툭툭 잘라낸다. 그러면서 점차 만들어가는 거다. 석조각이라는 건 한 번에 딱, 바로 완성품이 나오지 않는다. 계속 잘라내면서 형태가 드러난다. 사물이 모습을 드러낼수록 작업은 세밀해진다. 어깨에 힘을 빼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 거다. 그런 식으로 작업 해야 효율 높고, 작업이 잘못됐을 때 조정도 가능하다.
흔히 석조각 작업을 장인 혼자서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데, 사실 전통 석조각은 모든 게 협업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석조각엔 석공의 작품이라는 말보다, 공동의 결과물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작은 석조각도 2명 이상이 2~3달 정도 걸리고, 큰 작업은 4~5명의 석공이 달라붙어 1년 이상 진행한다.”
▶옹이 빚는 장인은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옹이를 던져서 깨기도 하던데. 석조각도 폐기하는 사례가 있나?
“물론이다. 작품에 큰 결함이 생기면 폐기한다. 실수를 보완하는 것도 어느 정도 끌어나갈 수 있는 한계가 있다. 3~5cm 차이가 난다고 하면, 그러니까 결함이 전체 작업물의 5% 내외면 끌고 나간다. 결과를 보는 거다. 그런데 이 이상이면 어렵다.
또 겨울엔 조각에 난 작은 구멍들로 물이 스며들어 얼기도 하는데, 그러면 조각에 금이가거나 조각이 쪼개진다. 그럼 그 돌은 못 쓰는 거니까,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 사례를 줄이려고 최대한 노력해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아예 없지는 않다.”
▶젊은 석공으로서 전통을 재해석하기도 하는지.
“전통의 재해석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모든 석공은 전통을 재해석한다. 문화재 수리나 복원, 또는 복제품이나 재현품 작업을 할 때도 조각이나 형태를 참조해서 꼭 똑같이 만드는 건 아니다. 어떤 때는 비례가 달라진다든지, 어떤 때는 다른 조각을 넣는다든지 한다. 전통의 큰 틀을 따르면서 세부적인 작업이 현대에 맞게 바뀌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있다. 작업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통의 재창조가 일어나는 거다.”
▶청년 석공 이백현의 전통 석조각 철학이 궁금하다.
“석조각에서 가장 많이 쓰는 도구가 정과 망치다. 망치로 정을 때려서 조각하는데, 때리는 힘만큼 돌이 떨어져 나간다. 약하게 때리면 약하게 때리는 만큼, 세게 때리면 세게 때리는 만큼, 딱 그만큼만. 그렇게 점점 갈아내고 부수고, 털어내고, 때리면서 형태를 이뤄간다. 이때 돌을 이기려고 하지 말고 다스려야 한다. 치석(治石)해야 한다는 말이다. 왜냐면 돌에도 우리 마음과 같이 결이 있기 때문이다. 결에 맞춰서 작업해야 한다. 결에 맞서 작업하면 조각이 불가능하다.”
▶인터뷰를 보면서 석조각에 관심이 생긴 청년들은 석공의 보수나 워라밸도 궁금할 것 같다.
“석공도 일반 직장생활과 워라밸 측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월~금까지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다. 석공일을 처음 시작하면 3~6개월의 수습 기간이 있다. 이 기간엔 최저시급을 받고, 수습 기간 이후에는 점차 월급이 올라 10년 경력은 하루 일당으로 20만 원 내외를 받는다. 이후에는 또 경력에 따라 일당으로 35만 원 내외를 받기도 한다. 작업 특성상 주말에 석조물을 설치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면 평일에 대체 휴무를 가진다.”
▶진폐증 등 직업병 우려는 없는지?
“예전 석공들은 진폐증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광부들 진폐병이나 석공 진폐병이나 같은 이야기다. 밀폐된 공간에서 먼지를 들이마시니까, 그게 폐에 쌓여서 문제가 된다. 아쉬운 건 과거 석공들이 가건물이나 천막, 비닐하우스 같은 데서 겨울에 난로 하나 켜놓고, 그 안에서 작업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환기가 전혀 안 됐다. 진폐증에 대해 무지한 시대였다. 지금은 환기는 기본이고, 실내 작업엔 집진 시설을 설치한다. 방진마스크 착용은 필수다. 야외 작업시엔 공장용 선풍기로 먼지를 작업 방향 반대편으로 날리고. 그래서 우리 세대에는 진폐증 같은 직업병 우려는 없다고 보면 된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자체나 사찰 등에서 석조 관련된 사업을 하면 우리나라 석공들이 만든 제품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 세트장을 만든다든지, 공원을 꾸민다든지, 불사를 한다든지 하면 전통 석조각 석공들이 하는 사례도 있지만, 수입품이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 석조각이 가격이 낮아서 그런 건데, 가격 효율보다는 우리나라의 독보적이고 뛰어난 전통 석조각 기술을 유지하고 활성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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