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운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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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포스트=온기운 칼럼] 정부가 한국판 뉴딜 정책을 추진하는데 소요되는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9월초 뉴딜펀드를 조성할 계획을 발표했다. 본래 뉴딜정책은 미국의 프랭크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공황의 충격으로부터 경제를 살려내기 위해 국가 주도로 추진했던 것으로 거액의 자금이 소요됐다. 루즈벨트 정권 당시 재정 확장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2%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가 세워놓은 2025년까지의 한국판 뉴딜정책에 소요되는 자금규모는 총 160조원이다. 부문별로는 그린뉴딜이 73조 4000억원, 디지털 뉴딜이 58조 2000억원, 안전망 강화가 28조 4000억원이다. 우리나라 명목 GDP가 지난해 1919조원이었으므로 연평균 뉴딜정책 자금 규모(32조원)는 연간 GDP의 약 1.7%에 해당한다. 미국 대공황 당시와 비슷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정부는 뉴딜펀드에 재정자금 뿐만 아니라 민간자금도 끌어들일 예정이다. 이는 정부재정 악화를 억제하고 프로젝트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시중에 풀려 있는 과도한 유동성을 흡수해 거시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는 측면도 있다. 현재 한국 금융시장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유동성이 급팽창해 있는 상황이다. 9월초 공모를 실시한 카카오게임즈는 공모 첫날 주가가 공모가의 1.6배로 올랐고, 다음날에는 8만1000원에 주식이 팔렸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가계에 대한 은행대출이 14조원이나 늘었는데 이는 대출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일단 은행권부터 빚을 내 투자하고 보자는 분위기가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 사회에서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부동산 투자)’과 ‘빚투(빚내서 주식투자)’로 표현되듯 최근 부동산과 주식에 대한 투자 ‘광품’이 심상치 않다. 자산 거품이 꺼지기라도 한다면 투자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 시중 유동성을 생산적인 쪽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는 뉴딜펀드에 거는 기대가 크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우려되는 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정부 주도의 뉴딜펀드 조성이 금융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민간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투자원금을 실질적으로 보전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재정자금이 후순위 출자를 통해 투자 리스크를 우선 부담함으로써 민간에게는 손실을 떠넘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투자와 관련괸 ‘자기책임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정부가 뉴딜펀드 투자자에게 원금 손실보전과 이익에 대한 분리과세 등의 혜택을 준다면 뉴딜펀드 지수에 편입된 BBIG(배터리, 바이오, 인터넷, 게임) 관련 기업 주식으로 투자자금이 쏠리고 그렇지 못하는 기업은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다. 뉴딜펀드 투자자들의 원금 손실을 메워주는데 결국 투자와 무관한 국민들로부터 거둔 세금을 이용한다는 점도 문제다.

또 다른 문제는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손실보전을 약속하는 등 펀드 ‘세일즈’에 나섬으로써 주식시장에서의 공정경쟁 룰이 허물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홍콩계 증권사 CLSA는 최근 한국 관련 투자전략 보고서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펀드매니저로 데뷔했다”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펀드 매니저들이여 조심하라”, “당신의 대통령이 당신의 경쟁자가 되었다”라고 꼬집었다.

자산 투자에 있어서는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관념이 통용되고 있다. 고위험을 부담해야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며, 이를 뒤집어 말하면 고수익을 얻으려면 고위험도 부담해야 한다는 얘기다. 역사적 경험을 보면 채권이나 은행예금 등 비교적 안정적인 금융자산에 비해 위험이 높은 주식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고수익은 시장의 자율메커니즘이 작동해 나타난 것이지, 정부가 인위적으로 수익을 보장해 나타난게 결코 아니다.

뉴딜정책과 뉴딜펀드가 소기의 성과를 내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잔여 임기가 2년이 채 안되는 정부가 5년짜리 계획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과거 김대중 정부 때 조성된 ‘바이 코리아 펀드’, 이명박 정부 때 조성된 ‘녹색펀드’, 박근혜 정부 때 조성된 ‘통일펀드’ 등이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정권이 바뀌면서 폐기된 점을 상기하면 정부의 영향력과 개입을 가급적 줄이고 민간의 역할과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정책의 연속성이 유지되고 재원 낭비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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