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운 칼럼니스트
​온기운 칼럼니스트

[뉴스포스트 전문가 칼럼=온기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소득격차가 감소했으며, 이는 소득주도성장의 효과가 작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기초연금 인상 등을 추진한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경제전망(Economic Outlook) 보고서에서는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소득불평등도가 OECD회원국중 가장 크게 확대된 것으로 지적됐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확산 이후 소득분배 구조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정부의 안이한 상황 인식

국제기구는 한국의 소득불평등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보는데, 우리 대통령은 집권 4년에 주목해 소득격차가 감소했다고 강조하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대통령이 지나치게 안이하게 상황을 보고 있는 것 아닌가.

소득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세계 비정부기구(NGO)의 보고에 따르면 세계 부자 상위 2153명이 2019년 현재 소유한 자산 규모는 최빈민층 46억 명의 총자산 규모를 능가했다고 한다. 단순 계산으로 200만배 이상의 격차다. 또 세계 인구의 약 절반은 하루 5.5달러(약 6000원)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에 따른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해 저소득층은 갈수록 가난해지는 반면, 일부 고소득층이 부(富)를 독점하면서 소득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주요국들중 한국의 소득격차가 가장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하니 염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중산층 몰락과 상·하위 소득계층 확대

소득양극화는 중산층이 점차 축소되고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에의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서 나타나고 있다. 양극화의 기준이 되는 중산층은 가계소득을 크기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중간값 소득(median)의 50~150%에 해당하는 계층을 일컫는다. 양극화는 최하위 계층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경쟁에서 승리한 중간층이 상위 계층으로 이동하고 실패한 계층이 하위계층으로 전락하는 과정에서도 발생한다.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로서 지니계수가 있다. 이 계수는 0부터 1까지의 값을 가지며, 0에 가까울수록 균등한 소득분배를, 1에 가까울수록 불균등한 소득분배를 나타낸다. 한국의 지니계수(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는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 0.264에서 1998년 0.293으로 급등했고 2009년 0.320으로 정점을 기록했다. 그 후 2010년 0.315에서 2015년 0.295 등으로 매년 조금씩 낮아졌으나 2016년 이후 다시 높아져 2019년에는 0.339(가계금융복지조사 기준)를 기록했다.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또다른 지표인 소득분배율도 악화되고 있다. 이는 모든 가계소득을 크기 순으로 배열하고 이를 10등급 혹은 5등급으로 나누어 각 소득분위간 배율로 나타낸 것인데,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지난해 1분기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41배로 전년 동기의 5.18배 대비 0.23배 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2분기에는 재난지원금 등의 효과로 5분위 배율이 4.23으로 낮아지기도 했으나 3분기에는 4.88로 다시 상승했다(2019년 3분기 4.66배). 조세, 재난지원금 등의 효과를 뺀 시장소득 기준으로는 지난해 2분기에 8.42(2019년 2분기 7.04)를 기록했다. 정부의 소득재분배 정책이 처분가능소득 기준의 양극화 정도를 완화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지만 양극화가 확대되고 있긴 마찬가지다.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계층이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상대적 빈곤율(처분가능소득 기준)의 경우 1997년 8.7%, 1998년 11.4%, 2006년 14.3%에서 2011년 15.0%, 2018년 17.4% 등으로 상승하고 있다. OECD 35개 회원국 중 미국 17.8%(2016년), 이스라엘에 이어 3번째로 높다.

양극화 원인은 복합적

소득양극화는 경제, 사회 상황 변화에 따라 소득과 소비 뿐 아니라 사회 각 계층 간에 다양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엇보다 양극화로 인한 빈곤이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폭행, 사기, 절도, 강도, 강간 등의 범죄 발생 건수가 급속히 늘고 있다. 양극화로 인한 불만 고조는 사회 갈등과 분쟁, 시위로 번지는 양상이다. 소득격차는 교육격차와 정보격차를 낳고 이는 소득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점에서 양극화 확대는 결코 방치할 수 없으며, 정부가 이를 완화하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과제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자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양극화의 핵심 원인은 시장 활력의 저하와 경제성장률 하락에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중반 이후 외환위기 이전까지 양극화지수가 하락한 바가 있는데, 이는 당시의 높은 경제성장세(1984~1997년 연평균 성장률 8.1%) 덕분이다. 외환위기 쇼크에 의해 성장률이 급락하자 양극화 지수는 상승세로 반전됐다. 성장률 상승이 일자리를 늘리고 근로자의 임금도 올려 양극화를 완화시킬 수 있음은 자명한 이치다. 최근의 양극화 확대는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시장활력 상실과 저성장이 주된 원인이다.

양극화의 원인은 신자유주의 체제에 따른 생산성 기반의 성과배분 시스템에도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노동과 자본에 대한 보수가 기본적으로 한계생산성에 의해 결정되며, 지식과 기술 수준이 높은 주체들은 더 많은 보수를 받고, 그렇지 못한 주체들은 적은 보수를 받아 양극화가 확대되는 것이다. 독점적 요소도 양극화의 한 원인이다. 시장을 지배하는 독점적 생산자는 생산물의 가격을 한계비용보다 높게 책정하고 이를 통해 마크업을 향유한다. 이는 독점력이 없는 중소기업과 그 종사자들을 상대적으로 빈곤케 만드는 요인이다.

자산 보유의 차이도 양극화의 원인이다. 부동산, 주식 등 자산을 많이 가진 자들은 자산 가격 상승시 소득이 증대해 자산 비보유자와의 소득격차를 벌리게 된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이 많은 ‘금수저’들은 본인의 능력과 노력보다는 부모 덕에 부를 누리는 자들이다. 이들과 그렇지 못한 ‘흙수저’들과의 소득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수 밖에 없다.

노동시장의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노동유연성 확보와 임금비용 절감을 위해 기업들이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격차 확대가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격차는 2004년 62만원에서 2010년 104만원, 2015년 125만원, 지난해 152만원으로 확대됐다(정규직 월평균 임금 323만원, 비정규직 171만원). 정규직에 대한 비정규직의 상대적 임금은 계속 떨어져 현재는 50%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자영업자 증가와 과당경쟁도 양극화의 원인이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2018년 기준)은 25.1%로 OECD 회원국 중 콜롬비아(52.1%), 그리스(33.5%), 브라질(32.5%), 터키(32.0%), 멕시코(31.6%) 에 이어 코스타리카와 함께 공동 7위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자영업자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시장활력 회복과 재분배 정책 병행해야

소득양극화의 해소는 이들 원인을 개선하는데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성장을 통한 중산층 복원이 중요하다. 경제성장을 통한 고용창출이 소득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돼야 중산층 복원이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는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한다. 소득주도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일자리를 줄여 양극화를 오히려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기업의 투자를 늘려 성장을 촉진시키고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양극화 해소의 지름길이다.

포퓰리즘적인 분배정책이나 인위적인 평등화정책은 소모적인 분배 관련 지출을 증대시키며, 이는 성장동력을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시장소득 기준 양극화 정도보다 조세와 재난지원금 등을 고려한 처분가능소득 기준 양극화 정도가 작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정부의 소득재분배 정책이 양극화 완화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양극화 해소는 기본적으로 시장소득 격차를 줄이는데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조세정책을 통한 재분배는 필요하지만 지나친 세율 인상은 조세회피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투자의욕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물 밑에서 거론되고 있는 부가가치세율 인상과 같은 소득역진적인 세제개편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동등한 기회의 보장도 빼놓을 수 없다. 빈곤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서는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기회 확대가 유용하다. 현실적으로 교육투자 여유가 없는 저소득층의 자녀교육 기회를 확대하여 계층이동 가능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지식 수준이 높아지면 생산성이 향상되고 소득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프로필-

▲ 일본 고베대 경제학 박사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위원 
▲정부정책 평가위원
▲국가경쟁력분석협의회 위원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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