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온기운 칼럼] 주택 임대차시장에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이 나타났다. 지난 14일 전세 매물로 나온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를 보기 위해 복도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것이다. 줄을 선 9팀 가운데 다섯 팀이 계약을 원해 결국 가위바위보로 최종 계약자를 정했다고 한다.
세입자의 권리를 강화하겠다며 정부가 개정 임대차보호법을 시행한 이후 전세 매물 품귀로 세입자들이 되레 곤경에 처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전세집을 둘러보러 온 사람이 집주인에게 집을 보는 댓가로 5만원을 지불했다고 한다. ‘코로나 방역비’라는 명분이었다고는 하나 세입자의 약해진 위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임대차법 개정을 총괄한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이 법 때문에 서울 마포구의 살던 집에서 떠나야 하고, 또 팔려던 경기도 의왕 집도 매각이 순탄치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이러한 세입자들의 어려움은 애당초 예견된 것이었다. 임대료 인상 상한선을 정부가 법으로 정하는 가격 통제를 실시할 경우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은 경제학 교과서 이론에 이미 나와 있다. 임대차 시장에서 임대공급 물량 부족과 세입자의 입지 약화, 주택품질 저하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바로 이대로다.
지난 8월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에서는 ‘2+2년’, 즉 4년까지 임대차계약을 갱신할 수 있으며, 전월세 가격 인상률 상한을 5%로 설정했다. 그러나 세입자가 인상을 수용하지 않으면 인상이 불가능하다고 돼 있다. 이러한 임차인에 경사된 개정 임대차보호법은 이번 홍 부총리 경우와 같이 집주인이 전세를 내놓은 집에 거주하겠다며 세입자를 내보내는 사례를 빈발시킬 수 있다. 한편에서는 4년의 임대의무 기간이 끝나고 새로운 세입자를 구할 때 집주인이 그동안 못올렸던 임대료를 대폭 올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실 집주인은 집을 보유하는데 따른 여러가지 비용을 부담한다. 집을 매매하거나 보유함에 따라 발생하는 취득세 양도소득세 등 거래세와 재산세 종부세 등 보유세, 수리비 감가상각 중개수수료 등 부대비용이 그것이다. 집소유와 관련해 금융부체를 지고 있다면 이자비용도 물론 포함될 것이다. 이러한 제 비용을 제대로 보전받지 못할 정도의 무리한 임대료 규제는 결국 임대공급 물량을 줄이고 임대인이 세입자를 줄세우기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구나 임대료 규제와 더불어 현 정부가 출범 초기에 장려했던 민간과 법인의 아파트 임대사업을 사실상 하지 못하도록 법을 바꿈으로써 전세물량 품귀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의 웬만한 아파트 단지에는 전세로 나와 있는 물량이 거의 없다고 한다. 전세 물량 씨가 마르다 보니 전세가는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9월 전국의 전세가격은 5년 5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올랐고,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67주 연속 올랐다.
전세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집주인의 위세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집주인이 예를 들어 식구가 적거나 아이가 없어 집을 깨끗하게 쓸 수 있는 세입자를 고르는 등 사실상 임대물건을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배당하는 행태를 보일 수 있다.
주택품질 저하 또한 문제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집주인이 집을 깨끗하고 안전하게 유지하려는 것은 품질이 좋은 집이 임대료를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임대료가 규제돼 주택부족이 심화되고 세입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면 집주인이 세입자의 요구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현 상태로도 들어오겠다는 세입자들이 줄을 설 정도로 많은데 굳이 돈을 들여가며 주택의 품질을 개선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세입자들은 품질이 열악한 주택에 살 수 밖에 없다. 어느 경제학자가 임대료 규제를 “폭격 외에 도시를 파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주택품질의 저하를 빗댄 것이다.
임대료 규제와 같은 가격상한제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1973년 제1차 오일쇼크로 휘발유가격이 급등하자 미국이 휘발유 가격 상한제를 실시했으나 물량 부족이 심해지고 주유소에서 자동차들이 주유를 하기 위해 장시간 기다려야 하는 불편이 초래돼 결국 폐지됐다. 베네주엘라의 휴고 차베즈 전 대통령은 2011년 저소득층에 식품과 필수품을 낮은 가격에 공급하기 위해 사회주의식 가격통제 정책을 썼지만 물품의 품귀 현상을 심화시킬 뿐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부작용을 초래하는 정책은 신속히 수정돼야 한다. 가격통제의 부작용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이념에 사로 잡힌 정책은 결국 보호하겠다는 경제적 약자를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가격통제보다는 자유시장 경제 원리에 입각해 공급물량을 늘리는 것이 주거안정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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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 일본 고베대 경제학 박사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위원
▲정부정책 평가위원
▲국가경쟁력분석협의회 위원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