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권 목표는 소·돼지·닭·개 등 모든 동물의 도살과 유통, 식용 금지
- 인간을 사육·도살·유통·식용 하지 않듯 모든 동물도 같은 권리 인정해야
- 모든 동물은 같은 권리 가져...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지각력’ 때문
- 동물 이용하는 동물실험도 ‘비동물실험’ 예산 투자해 최소화해야
- “개 식용 반대 운동하고 삼겹살 먹는다” 등 근거 없는 비난, 사실과 달라
올해는 미국 여성이 참정권을 쟁취한 지 100주년 되는 날이다. 1920년 8월 18일 성별을 이유로 투표권을 제한할 수 없다는 수정헌법 19조가 미국 의회를 통과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은 1965년 민권법과 투표법 제정으로 미국 전역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투표권을 보장하기도 했다.
도공이 예술 세계의 최선을 위해 못난 사기(沙器)를 쳐 깨부수듯, 인류는 19세기 이후 인종차별주의(Racism)와 성차별주의(Sexism)라는 사기(詐欺)를 타파하고 있다. 한데, 철학자 피터 싱어에 따르면 인류가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거짓이 나타났다. 돼지와 소, 닭, 개 등 다른 동물을 도구로써 이용하는 인간의 종차별주의(Speciesism)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종차별주의 논란은 ‘개 식용’ 문제에 방점을 찍고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뉴스포스트>는 3부에 걸쳐 종차별주의와 개 식용 논란을 살펴보고자 한다. 1부에선 종차별주의와 개 식용을 둘러싼 논점을 정리한다. 2부에선 주영봉 대한육견협회 사무총장을 만나 개 식용 찬성 측의 입장을 듣고, 3부에서는 개 식용 반대 측인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를 인터뷰한다. -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스물세 살 때 동물원에 갔던 적이 있어요. 우리에 갇힌 호랑이가 먹이도 안 먹고 힘없이 출입문을 뒷발로 차고 있더라고요. 병이 들었는지 털이 군데군데 빠지고 뼈만 앙상했죠. 그날 저녁에 돼지고기가 식탁에 올라왔어요. 야성을 잃고 힘없이 출구를 두드리던 호랑이가 생각나 구토가 났습니다. 이후 피터 싱어가 쓴 ‘동물 해방’을 읽고 채식주의자가 됐어요.”
이지연(30) 동물해방물결 대표는 21일 취재진에게 자신이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된 사연을 털어놓았다. 이지연 대표는 조선 시대 산군(山君)이라 추앙받던 호랑이가 털이 숭숭 빠진 채 열악한 동물원 우리에 갇힌 모습을 본 뒤, 동물권 운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개만 먹지 말자는 게 아니고, 모든 동물을 먹지 말자는 것”이라면서 “개 식용 금지는 소, 돼지, 닭 등 모든 동물성 단백질 식용 금지의 서막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뉴스포스트>는 개 도살 금지를 주장하는 이지연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서울시 종로구 성균관로 소재 인문도서 전문 책방 ‘풀무질’에서 진행했다.
- 왜 소·돼지·닭은 놓아두고 개 식용만 반대하냐는 분들이 계신데요.
“동물해방물결이 말하는 건 한결같습니다. 개를 포함해 소, 돼지, 닭 등 모든 동물을 먹지 말자는 거죠. 저희는 개 식용만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소나 돼지, 닭은 먹는데 개만 먹지 말자고 하면 논리가 없는 거죠. 저희는 개뿐만 아니라, 완전한 채식주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개 식용 금지가 최전선에 있는 까닭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거죠.”
- ‘모든 동물 먹지 말자’ ‘완전 채식주의 하자’ 등을 모든 동물권 단체의 일치된 의견으로 봐도 될까요?
“네. 동물해방물결뿐만 아니라, 동물권 단체라면 모든 동물을 먹지 않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외국은 70년대부터 해부실습금지 등 동물권 사상이 발전했어요. 나치독일 히틀러가 1933년 처음으로 동물보호법을 만들긴 했는데, 동물권 사상은 없었죠. 히틀러의 동물보호법은 동물이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 게 아니라 지켜주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했어요. 지배와 종속 관계로 본 거죠. 여전히 종차별주의적이죠.”
- 그럼 동물권 운동가 모두 완전한 채식주의자인지요.
“우리나라가 채식을 완벽하게 실천하기가 쉽지는 않은 상황이에요. 그래도 다들 노력하고 계시죠. 완전한 채식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을 먹지 않는 세상이 오는 게 맞으니까요. 실제로 최근 많은 동물권 운동가들이 완전 채식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저를 포함해 동물해방물결 집회에 오시는 분들은 완전 채식주의를 지향하고 계시고, 실천하고 계십니다.”
- 대표님이 채식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채식하는 사람들 모두 여정이 달라요. 저는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를 보고 채식을 시작했어요. 스물세 살 때 열악한 환경의 동물원에서 호랑이를 봤어요. 근데 호랑이가 사육사가 던져준 먹이도 안 먹고 뒷발로 출입문만 차고 있는 거예요. 조선 시대 때 호랑이를 산의 주인이라고 떠받들면서 산군이라고 불렀잖아요. 그런 호랑이가 야성도 잃고, 힘도 없이, 털도 다 뽑힌 채로 뼈만 앙상하게 탈출구만 찾고 있었어요. 그날 저녁상에 돼지고기가 올라왔는데, 구토가 나더라고요. 이후에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을 읽고 채식을 시작했습니다.”
- 동물권 운동가를 비롯해 모든 사람이 완전 채식을 해야 하는 당위가 뭔가요?
“70년대부터 구체화한 동물권 사상은 피터 싱어가 완성했어요. 그가 쓴 ‘동물 해방’을 보면 왜 동물성 단백질을 안 먹어야 하는지, 채식해야 하는지, 그 당위가 잘 나왔는데요. 피터 싱어는 쾌락을 높이고, 고통은 줄이는 게 윤리적으로 옳다는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를 모든 동물로 확대했어요. 동물성 단백질이 먹고 싶다면, 왜 인간은 먹지 않나요? 인간을 지각력 있는 존재로 보기 때문이죠. 소, 돼지, 닭, 개 등 다른 모든 동물도 인간과 동등하게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지각력을 가졌기에 먹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 육식이나 잡식 등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주장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채식은 옳고 그름의 문제입니다. 다양성을 절대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현대 사회에서 다양성을 이유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착취하는 행위를 용인하지 않잖아요. 다양성을 이유로 사람을 죽이거나 감금할 자유, 사육하고 도살해 먹을 자유, 이런 거 허용하지 않아요. 그게 동물도 똑같다는 얘기입니다. 왜냐면 인간이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다른 동물도 똑같다는 거죠. 다양성 운운하면서 지각력 있는 동물에게 가학적인 행위를 하는 건 용인할 수 없습니다.”
- 벤담 공리주의는 쾌락과 고통이라는 자연적 사실을 옳고 그름이라는 윤리적 문제로 치환한 ‘자연주의적 오류’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데요. 벤담 공리주의를 토대로 동물권을 주장한 피터 싱어 철학도 모순점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만. 절대 진리가 아닌 동물권 개념이 교조주의적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는 답변을 못 드려서, 동물해방물결에 철학자분이 계신데요. 그분이랑 얘기를 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함께 얘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중요한 건 동물권은 이성과 논리가 기반이지만, 권리를 부여하는 기준은 이성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누굴 때리면 이 사람이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때리지 말아야지’라는 건 인간만 할 수 있는 이성적 윤리판단인데요. 이 윤리판단을 다른 모든 동물로 확대하는 거죠. 모든 동물은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지각력이 있으니까요.”
- 인간이 다른 동물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요. 그럼 다른 육식동물이나 잡식동물, 예를 들어 원숭이, 쥐, 닭, 참새 등도 다른 동물을 먹으면 안 된다는 설명일지요. 이들 동물이 채식만 하도록 인간이 교정 등 수단으로 강제해야 할까요?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도덕적인, 그리고 윤리적인 사회를 구축했습니다. 인간은 윤리적 사회에 속하고 동물은 약육강식의 사회에 속하죠. 인간의 윤리를 다른 동물에게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두 세계는 엄연히 다르니까요. 다만 인간은 윤리적인 개념을 알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요. 예를 들어 지능이 낮게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의 타고난 권리를 부정하지 않죠. 이건 권리가 지능과 이성의 높고 낮음으로 판단되는 게 아니라,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지각력으로 판단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우월해서 ‘인간만은 다른 동물을 먹어선 안 된다’는 설명일지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거나 하는 개념은 아닙니다. 동물권이 주장하는 것은 오로지 ‘지각력이 있느냐’를 기준으로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이큐가 300인 사람과, 200인 사람, 100인 사람, 50인 사람, 30인 사람 등이 모두 학대받지 않을 권리, 사육당하지 않을 권리, 도살당하지 않을 권리, 먹히지 않을 권리를 동등하게 가집니다. 다른 동물도 지각력을 가졌기 때문에 인간과 같은 권리를 가진다는 거죠.”
- 과학계와 의학계에서 이뤄지는 동물실험은 동물권에서 어떻게 보시는지요.
“원칙적으론 윤리적으로 옳지 않기 때문에 하면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답이 없죠. 백신 개발, 최근에는 코로나19 관련한 동물실험도 많이 이뤄지죠. 저희는 윤리단체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실적인 대안은 과학 등 다른 분야에서 노력해야 할 부분입니다. 다만 대체실험을 늘려야 한다고 봐요. 비동물실험이라고도 표현하는데요. 식물을 이용한 실험을 하거나, 세포를 배양해서 심장과 간 등 장기를 만들어 실험을 하거나 하는 거죠. 연구예산이 그런 대체실험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 완전한 채식 등에 앞서 ‘개 도살 금지’가 중요한 이유를 설명해주신다면.
“10가지 동물 가운데 1가지라도 안 먹게 되면, 완전한 채식에 한 발 더 다가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개 도살 금지 운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고요. 개 식용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입니다. 다양한 여론조사를 보면 많은 국민께서 이제 더 이상 개를 식용으로 보지 않고 계시니까요. 개를 시작으로 소, 돼지, 닭 등 다른 동물 도살 금지로 나아가야죠. 사회가 변하는 데는 단계가 있다고 봅니다.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모든 게 다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에요. ‘소·돼지·닭은 먹는데 개만 안 먹으니까, 너는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아니니까, 네가 하는 모든 주장과 행동은 의미 없어’라는 게 아니라는 거죠. 저희는 개 도살 금지 운동이 아직 완전한 채식을 실천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 끝으로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 해주신다면.
“개 식용 반대 운동을 하는 분들이 소나 돼지, 닭을 먹으면서 개 식용을 반대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개 식용 반대 운동의 너무 큰 걸림돌입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저 사람들 논리 없는 사람들’, ‘저 사람들 집에 가서 삼겹살 먹겠지’ 이렇게 판단하시는 분들을 보면 진짜 서운해요. 동물권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논리적으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