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벤처 ‘닷’ 김주윤 대표 인터뷰
점자 스마트 시계 ‘닷 워치’ 개발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스마트 시대가 열린 지 불과 십수 년 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인류는 벌써 4차 산업을 이야기한다. 현재 시행착오를 겪는 AI(인공지능)은 머지않은 미래에 시민 생활 곳곳에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의 진보는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나 소수를 위한 기술은 4차 산업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더디기만 하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까지 아우르는 기술 진보에 한 발짝 내딛는 이들이 있어 희망은 있다. 소셜벤처 ‘닷’이 대표적인 예다. 2015년부터 시각장애인 관련 보조공학 기술을 연구한 닷은 점자 스마트 시계 ‘닷 워치’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올해에는 닷 워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점자 스마트 패드인 ‘닷 패드’를 출시할 예정이다.
<뉴스포스트>가 지난 2일 서울 금천구 본사를 방문했을 때 사무실은 분주했다. 신제품 개발 모델 관련 이야기가 직원들 사이에서 오갔고, 회의실 책상에는 제품과 모형들이 일열로 정리됐다. 이곳에서 만난 김주윤 닷 대표는 “저희 ‘닷’은 장애인 관련 공학기술에 대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기업”이라고 소개했다.
닷 워치, 시각장애인들의 일상을 바꾸다
김 대표는 손목에는 오늘날 닷이 존재하도록 한 닷 워치가 있었다. 닷 워치는 점자로 숫자를 표현해 시각장애인 및 시청각장애 이용자들에게 정확한 현재 시간을 알려준다. 점자를 모르는 이들을 위해 점의 개수로 숫자를 나타내는 ‘촉각모드’도 있다. 시각장애인용 음성시계는 시끄러운 환경에서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아날로그시계의 뚜껑을 열고 손끝 감각으로 시간을 추측할 경우에는 1분 단위의 정확한 시간은 알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던 기존 시계들의 한계를 보완한 닷 워치는 관련 어플을 통해 스마트폰과 연결해 스톱워치나 알람, 간단한 메모 작성, SNS 알림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김 대표는 “닷 워치는 현재 전 세계 20개국에서 남녀노소가 사용하고 있다. 비장애인 역시 사용이 가능한데, 간단한 점자를 배우는 기능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능뿐만 아니라 가격으로도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점자와 음성을 통해 문서 출력과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점자 정보 단말기는 5백만 원을 호가한다. 하지만 닷 워치의 가격은 30만 원 정도. 김 대표는 “정부 지원금으로 일부나 전액 감면된 금액으로 구매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자비로 구매하시는 분도 많다”며 “소리가 하지 못하는 걸 보완해주는 제품이라 생활에 편리하다는 평가가 많다”고 전했다.
닷 워치를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키오스크인 ‘닷 키오스크’를 선보이기도 했다. 현재 부산역에 3대가 설치된 닷 키오스크는 오는 3월까지 평가 작업이 끝나면, 부산 전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올해 말에는 점자 스마트 패드인 ‘닷 패드’가 출시를 앞두고 있다. 닷이 가장 주력하고 있는 닷 패드는 숫자와 문자를 넘어 그래프나 도형도 표현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점자 스마트 패드는) 콘셉트로나마 존재했다. 다양한 그래픽을 촉각적으로 구현하는 기기는 학계에서 오랜 꿈이었다”며 “미국의 시각장애인 아이들은 (시각장애인 전용으로) 매뉴얼화된 교육을 배우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수학 수업을 할 경우 시각장애인 아동들에 맞춰 일일이 매뉴얼화 해 교육을 진행했다. 시각장애인 아이들이 배우는 촉각 교제도 매우 비싸다. 초등학생 과정만 끝내는데 1만 불 이상이 든다는 보고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EU에서는 2019년 상금을 걸고 이 같은 점자 패드를 만들어달라고 공표했었다. 필요한 사람들만 3천만 명으로 예상했다”며 “기술은 일본이나 독일 정도밖에 없었는데, 우리가 이걸 국산화했다. 일본의 기술력은 재작년에 넘어섰다. 닷 패드가 그래픽을 실제로 표현하면 시각장애인 아동들의 교육에 굉장히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닷 워치와 닷 패드 등으로 닷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 스티브 원더가 닷 워치가 출시되기도 전에 선주문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또한 미국 특수교육부의 300억 원대 점자 패드 공급프로젝트에 선정됐다. 내년부터 미국의 시각장애인 아동들은 닷 패드로 공부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세계 시장으로 발을 넓혀가는 기업이지만, 사업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불모지에서 시장을 개척하다
유학 시절 지체장애인 룸메이트와 생활하면서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는 김 대표는 우연히 점자 성경을 보게 된다. 비장애인들에게는 한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성경책이지만, 점자책으로 번역하면 수십 배가 커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기존에도 창업을 생각했던 김 대표는 시장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경제성을 이유로 소수의 업체들이 독점하며 비싼 디바이스를 유통하는 시장이었다.
김 대표는 “세계적인 제품을 생산하면 규모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희는 소수를 위한 제품을 만든다. 대한민국 인구 5천만 명을 상대로 하는 게 아니다. 그동안 연구만 하고 상용화된 사례가 적었다”이라며 “우리가 시장 규모가 나오는 방향을 어떻게든 찾아서 계속 혁신을 만들어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UN에 따르면 전 세계 시각장애인 인구는 약 3억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비교적 시각장애인 아동 교육 환경이 갖춰진 선진국부터 문맹률이 높은 제3세계 국가까지 닷이 생산하는 제품의 수요는 많다. 실제로 닷은 인도와 케냐 등 시각장애인 아동 교육 환경이 열악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코이카와 함께 ‘닷 미니’라는 제품을 보급해 수업에 활용하도록 했다.
시작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지만, 녹록지 않은 국내 환경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기술 개발은 일종의 발명인데, 시장의 기대는 너무 컸다. 닷 워치가 빨리 개발이 되지 않아 많은 질타도 있었다”며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반응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객의 관점을 이해한다”고 전했다.
숱한 시행착오를 겪고 닷 워치 성공적으로 시장에 내놓으면서 닷은 주목받는 국내 소셜 벤처 기업이 됐다. 벤처기업으로서는 드물게 장애인 고용률도 높다. 풀타임과 파트타임 노동자를 합하면 전체 노동자 중 약 10%가 시각 장애인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제품 설계나 개발, 테스트, 고객 상담 등의 업무를 맡는다. 김 대표는 “상담 직원은 고객을 상담할 때 시각장애인의 입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닷 패드 개발에 한창 바쁠 때이지만, 보람도 크다. 김 대표는 “기억에 남는 고객은 너무 많지만, 저는 아이들이 제품을 보고 좋아하는 게 가장 기쁘다”라며 “모든 부문에서 장애인을 ‘도운다’는 식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한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구분 짓는 게 아니라 사회적 문제가 있으니 이를 해결하려는 기업으로 말이다”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