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부모를 바라보는 자녀의 마음은 두렵기만 한데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70세 심덕출 씨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평생의 꿈이던 발레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을 쓰는 고통이 있지만 자세가 조금씩 발레리노다워짐을 느낄 때마다 행복할 따름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공연도 앞두고 있다. 심덕출 씨는 자신의 꿈을 펼칠 무대를 준비하는 나날들이 보람차기만 하다.
그런데 요즘 심덕출 씨는 이상하다. 간혹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혹은 무엇을 했는지 까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덕출 씨는 매 순간을 수첩에 기록한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심덕출 씨는 이러다 무대 당일 발레 동작과 동선까지 잊을까 고민이다.
한편 영국 런던에 사는 안소니 씨는 하루하루가 두렵다. 사랑하는 딸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하기 때문이다. 분명 남자 친구와 프랑스에 가서 살 거라 했는데 그녀는 마치 안소니 씨의 곁을 떠난 적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낯선 얼굴의 여인이다. 딸인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다.
안소니 씨는 안 그래도 자기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인이 의심스러운데 딸의 남자 친구라고 주장하는 남자는 더 의심스럽기만 하다. 그 남자는 분명 안소니 씨가 아끼는 것을 훔친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 드라마 ‘나빌레라’와 영국 영화 ‘더 파더’의 스토리 중 일부다. 이 이야기들은 분명 허구이지만 대중들이 감정 이입하며 보게 하는 소재를 가져왔다. ‘치매’에 걸린 노인과 그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치매는 우리 곁에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치매센터’ 자료에 의하면2021년 5월 현재 65세 이상 ‘치매상병자’는 78만명이 넘고, 65세 이상 인구에 대비한 추정 치매 비율은 10.33%이다. 의료기관에서 치매 진단 및 치매 진료를 받은 환자를 치매상병자로 분류한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중 열에 한 명은 치매 환자일 수 있다는 통계다. 그들은 우리 이웃의 노인일 수도 있고 때로는 우리 부모일 수도 있다. 이 자료에는 60세 이상 통계도 나와 있는데 이 나잇대의 치매상병자는 83만명이 넘고, 60세 이상 인구에 대비한 추정 치매 비율은 7.23%이다.
수치로만 보면 치매는 남의 집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의료계에서는 치매의 원인을 다양하게 분석하지만 중요한 것은 치매에 걸리면 그 예후가 불가역적이라는 것이다. 정상이었던 시기로 되돌릴 수 없다는.
치매가 두려운 것은 누군가 치매에 걸리면 그 혹은 그녀의 고통으로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깝게는 배우자와 자녀는 물론 이웃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건강보험공단의 2019년 ‘장기요양보험’ 통계에서 그 단면을 볼 수 있다. 통계에 의하면 장기요양환자들의 주수발자로 자녀가 39.6%, 배우자가 21.2%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시설관계자가 18.4%, 간병인이 9.2%를 차지한다.
이 자료에 의하면 독거도 7.3%를 차지하고, 손자녀가 주수발자인 경우가 0.8%, 심지어 부모가 주수발자인 경우도 0.2%를 차지한다.
전문가들은 치매 환자를 돌보는 주수발자도 위 통계의 비율과 비슷할 것으로 추산한다. 자녀와 배우자 즉 가까운 가족이 치매 환자를 돌보는 것이다.
치매 환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드라마 ‘나빌레라’와 영화 ‘더 파더’에도 치매 부모를 둔 자녀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거기에는 치매 환자 본인들이 겪는 어려움도 잘 나오지만 자녀들이 겪는 어려움과 두려움도 그에 못지않게 잘 드러난다. 그래서 감정 이입하며 본 50대와 60대들이 많은 듯하다.
“(영화 더 파더에서) 주인공과 제 어머니가 처한 상황이 너무 비슷해서 몰입하며 감상했습니다. 어머니도 알츠하이머 환자세요. 영화 속 안소니처럼 기억이 뒤죽박죽 조각나셨죠.”
서울 동작구에 사는 A씨(60세)의 말이다. 외아들인 그는 현재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고, 정기적으로 통원치료를 하고 있다고.
“평소에는 단정하고 건강하신데 간혹 별거 아닌 것에 집착하다가 혼란스러워하시고 서서히 무너지세요. 영화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데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치매로 진단받은 환자는 그 예후에 맞는 치료를 받으면 된다. 하지만 혹시 치매로 진단받을까 봐 병원에 가기 두려운 사람들도 있다.
“어머니가 작년부터 좀 달라지신 거 같아요. 했던 말도 계속하시고 약속도 잘 잊으시고.”
경기도 성남에 사는 B씨(55세)의 말이다. 그녀의 친정어머니가 평소와 다르다고 느낀 건 작년 추석 식사 모임에서였다. 음식이 평소보다 많이 짰다. 양념 넣은 걸 까먹은 어머니가 소금을 여러 번 친 것 때문이었다고. 그것만이 아니었다.
“식사를 위해 은수저 세트를 찾으시더라고요. 그 봄에 제게 물려주셨거든요. 그 말씀을 드리니 매우 놀라 하셨죠. 까맣게 잊으셨으니까요.”
B씨 남매들은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 검사를 받게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고. 어머니가 한사코 거부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냥 건망증이 심해진 것이라 믿고 계시다며.
체계적 관리와 치료가 필요한 치매
“본인도 마찬가지이지만 가족분들도 쉬쉬하며 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매에 걸리면 정상으로 되돌리기 힘들지만 제대로 알면 어느 정도 관리가 됩니다.”
경기도 성남시의 한 ‘치매안심센터’ 담당자의 말이다. 치매 환자 관리와 지원은 국가적 사업이기도 하다. 중앙치매센터가 그 콘트롤 타워 역할을 맡고, 각 광역 자치단체별로 ‘광역치매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광역치매센터는 기초 자치단체나 주요 지역에 ‘치매안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광역치매센터와 지역별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조기 검진 서비스’와 ‘치매 예방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또한, 치매 환자는 물론 치매 환자 가족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치매는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부담이 큰 병입니다. 어쩌면 환자가 돌아가셔야 돌봄이 끝나는 기약 없는 장기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호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치매안심센터 담당자는 만약 환자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 주저된다면 보호자라도 가까운 치매안심센터에 방문해보길 권유한다. 치매 환자와 보호자 상황에 맞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치매 환자의 보호자들이나 전문가들은 치매에 대해 제대로 알고 대처하면 환자를 돌보는 피로를 현저히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특히 치매 증세 발현 초기에 보호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뉴스포스트는 치매 환자 본인 못지 않게 혼란스러워 하는 보호자들을 위한 기사를 계속 다룰 예정이다. 치매와 관련해 주변에서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무엇이 있는지, 의료 전문가들이 보호자들에게 조언하는 바는 무엇인지 계속 소개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