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희귀질환 환자, 80% 이상 유전적‧선천적 발병
의료진·국가지원 부족...약값이 비싸 치료 못하기도

아픈데 치료조차 어려운 ‘희귀질환’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이른바 ‘진단 방랑’을 경험하기 일쑤다. 운 좋게 진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치료 또한 쉽지 않다. 치료제가 있어도 국내에 없거나 터무니없이 비싸기 때문이다. 

신체적, 경제적으로 고통 속에 살아가는 우리나라 희귀질환자는 약 80만 명. 전문가들은 이들에게 다양한 의료적 도움을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희귀‧난치성 질환의 실태와 문제점, 대안을 4회에 걸쳐 짚어본다.

(그래픽=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그래픽=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뉴스포스트=홍여정 기자] 희귀질환(Rare Disease)은 우리나라 기준으로 유병 인구가 2만 명 이하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 인구조차 정확히 알 수 없는 질환이다. 나라마다 인구 기준이 다른데 예를 들어 미국은 20만 명 이하, 일본은 5만 명 이하, 프랑스는 2,000~3,000명 이하의 환자가 있으면 희귀질환으로 규정한다. 세계적으로 약 7,000~8,000여 종의 희귀질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 80%가 소아에게서 발병한다. 국내에는 1천여 종의 희귀질환이 등록돼있으며 인원은 약 80만 명으로 추산된다.

희귀질환 지정은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12월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19 희귀질환자 통계 연보’를 살펴보면 2019년 우리나라에 등록된 희귀질환은 926가지로 인원은 총 5만5,499명이다. 신규 희귀질환자 중 극희귀질환자는 775명(1.4%), 기타 염색체 이상 질환자는 45명(0.1%)으로 조사됐다.

‘극희귀질환’은 독립된 질환이지만 환자가 200명 이하이거나 별도의 상병코드가 없는 질환이다. ‘기타 염색체 이상질환’은 과학·의료 기술의 발달로 발견된 새로운 염색체 질환으로, 별도의 상병코드가 없지만 질환으로 규정된다.

희귀질환은 ▲희귀성으로 전문가가 부족해 오진의 가능성이 높고 확진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되며 ▲효율적인 치료가 없어 치명적이거나 만성화 되는 경향이 있고 ▲80% 이상이 유전적, 선천적으로 발병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희귀질환을 두고 시장 실패 영역이라고 말한다. 치료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고가라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크고, 희소성과 낮은 수익성으로 민간 차원의 연구개발도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희귀질환 현황에 대한 자료 부족으로 관리 정책과 연구 계획을 수립하는 데 한계가 있어  이에 대한 파악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요구도 있어왔다.

‘희귀질환자’를 위한 정부 지원 제도

정부는 2016년 12월 희귀질환관리법을 지정하고 의료비 지원 사업, 유전자 진단지원 사업, 산정특례제도, 권역별 거점센터 설립 등 희귀질환 환자 지원 사업을 시행 중이다. 2021년 6월 현재, 의료비 지원 및 진단지원 대상 질환은 1,110개다.

희귀질환 의료비지원사업. (사진=질병관리청 희귀질환헬프라인 홈페이지 갈무리)
희귀질환 의료비지원사업. (사진=질병관리청 희귀질환헬프라인 홈페이지 갈무리)

의료비 지원 사업은 저소득층 지원 사업이다. 희귀질환자 산정특례에 등록된 의료급여수급자, 차상위 본인부담 경감대상자 및 건강보험가입자가 지원 대상이며 환자 가구와 부양의무자가 가구 소득 및 재산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지원 범위는 요양 급여 중 본임 부담금 10%와 대상 질환에 따라 보조기기 구입비, 간병비, 특수식이구입비 등이다.

유전자 진단지원 사업은 유전자 분석비 및 검체 운송비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175개의 극희귀질환 환자가 대상이며, 비용 부담으로 진단 시기를 놓치는 사례를 방지하고 적기에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만약 유전자 검사로도 진단이 어려울 경우 미진단 질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미진단 질환 프로그램 등록 후 산정특례 희귀질환에 해당하면 산정특례로 등록되며 진단을 받지 못할 경우 상세불명 희귀질환 산정특례로 등록된다.

산정특례제도는 희귀질환자, 극희귀질환, 상세불명 희귀질환 등으로 진단받은 후 자가 등록절차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한 경우 본인부담률을 10%로 경감하는 제도다.

아울러 정부는 중앙지원센터와 11개의 권역별 거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대형의료기관의 수도권 밀집 문제를 해결해 지방에 거주하는 환자들의 시간과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함이다.

서울대학교병원이 맡고 있는 중앙지원센터는 권역별 거점센터 운영 지원을 총괄한다. 거점센터 협의체 운영, 의료인력 육성을 위한 교육콘텐츠 개발 및 보급, 국가 희귀질환 연구 계획 수립 지원 등을 수행한다. 권역별 거점센터는 인하대학교, 아주대학교병원, 충남대학교병원, 충북대학교병원, 칠곡경북대학교병원,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 양산부산대학교병원, 화순전남대학교병원, 전북대학교병원, 원주세브란스 기독병원, 제주대학교병원이 있다.

국가적 지원에도…“치료 힘들어”

이러한 국가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희귀질환자들도 다수다. 이들은 산정특례로 지정되지 않은 질환에 대한 지정 요구와 약값에 대한 급여 적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갈무리)
(사진=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갈무리)

지난 4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혈우병 아이들의 약이 끊겼습니다’라는 청원인 A씨의 글이 올라왔다. 두 돌 된 혈우병 아기를 키우고 있다고 밝힌 A씨에 따르면 A씨의 자녀는 지난 2월 항체가 있는 아이들에 한해 급여고시가 결정된 ‘헴리브라’ 약을 맞았고, 이후 기존 혈관주사를 맞을 때마다 고생했던 아이가 멍도 들지 않고, 한 달에 한 번 맞아도 효과가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험급여삭감으로 약 지급이 중단되면서 12세 미만 아이들에게는 무조건 항체치료를 권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A씨는 “심사평가원에서 고시한 ITI(면역관용 요법) 급여기준은 헴리브라 사용과 전혀 상관관계가 없어 치료제 사용에 있어 ITI가 필수조건이 될 수 없으며, ITI 관련 규정을 헴리브라 급여기준과 별도로 분리, 독립해 의료진이 소아, 어린이 혈우병 환자 치료에 심평원과 서로 다른 해석을 하여 삭감 등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헴리브라 급여기준 변경을 요청한다”고 청원했다.

또 한 청원인 B씨는 지난해 10월 “한 달 약값 700만 원으로 실명위기의 환자들과 가족이 고통받고 있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B씨의 딸은 ‘레베르시신경병증’이라는 극희귀질환을 앓고 있다. B씨에 따르면 이 질환은 유전성 망막질환의 일종으로 20~30대 젊은 남성들에게 주로 발생하며, 통증이 없이 서서히 양 쪽 눈이 실명하게 되는 병이다.

B씨는 “‘레베르시신경병증’은 스위스 제약사가 개발한 ‘락손’이라는 약으로 치료하는데 국내에서는 2018년도에 희귀약으로 지정됐다. 1일 3회 2정을 복용해야 하는데 1달분 180캡슐 시판 가격이 700만 원 정도다. 비싼 가격 탓에 망설이는 환우들도 있다. ‘락손’을 산정특례 약으로 지정해달라”라고 주장했다.

현재 희귀 질환 중 치료제가 존재하는 것은 5% 미이며, 이마저도 해외 개발이 대부분이라 약값이 매우 비싸다. 그래서 환자들은 보험 적용을 꾸준히 요구한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이 악하화되지 않도록 관리하기 위해 ‘약’은 이들에게 생존의 문제다.

뉴스포스트는 다음 기사에서는 희귀질환을 겪고있는 환자들의 이야기와 의료제도 운영의 문제점을 다룬다.


<참고>

희귀난치질환 치료를 위한 유전자 교정 치료제 개발 동향. 2017년. p2

질병관리청 희귀질환헬프라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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