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생양 찾는 ‘혐오와 비난 반응’ 더 큰 불안과 공포 뒤따르게 해
- 방역지침 따르는 ‘책임감’, 의료진 믿는 ‘신뢰’, 확진자 품는 ‘포용’ 중요
- 코로나19 확산 이후, 일반인 우울 위험군 3.79%→18.6% 증가
- 코로나19 감염 공포가 ‘대인관계’ ‘일상생활’ 영향 주면 ‘코로나 우울’
- ‘코로나 우울’ 자체는 심각한 정신질환 아냐... 정상적인 스트레스 반응
- 전염병 다루는 자극적인 기사나 SNS 접촉 줄이는 ‘심리적 방역’ 해야
2017년 통계청 생명표는 우리나라에서 2017년에 태어난 출생아가 평균 82.7세까지 살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OECD 평균보다 여자는 2.4년, 남자는 1.7년이 더 높았다.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둔 ‘기대수명 선진국’인 것이다.
특히 통계청은 암과 뇌혈관, 심장질환만 제거해도 기대수명이 6.8년 이상 증가할 것으로 봤다. 각종 질환은 수명에 더해 삶의 질과도 관련된 중요한 사안. 이에 본지는 100세 시대 도정을 위협하는 질병을 예방하고, 우리의 건강한 삶을 좀먹는 질환의 치료법을 알려주는 <백세건강> 시리즈를 기획했다. -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 우리가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방법이 희생양을 찾는 거예요. 책임을 돌릴 특정 집단을 찾는 거죠. 문제는 이런 대응이 더 큰 불안과 공포를 부른다는 겁니다.”
이정현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사업부 과장은 ‘코로나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선 타인에 대한 ‘혐오와 비난 반응’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정 집단에 전염병 책임을 돌리는 대응이 더 큰 공포를 불러온다고 말하면서다.
벌써 5일째다. 정부는 지난달 31일부터 오는 6일까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시행하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재유행하는 데 따른 것이다. 사실상 3단계에 준하는 조치다.
2.5단계 시행에 따라 수도권 내 음식점 등은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정상 영업이 제한된다. 이 시간에는 포장이나 배달만 가능하다. 프랜차이즈 카페는 정상 영업이 아예 금지돼, 포장과 배달만 한다. 당구장과 탁구장, 헬스장 등 실내 체육시설은 운영을 중단했다.
코로나19가 우리를 포위하면서, 생활이 제한되고 삶이 팍팍해졌다. 기업 경영활동엔 먹구름이 끼고 자영업자는 주머니 속 쌈짓돈이 바닥났다. 직장인은 당장 다음날 출근길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궁핍한 곳간 사정은 우리 마음도 가난하게 만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우울하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늘어만 가는 상황이다.
<뉴스포스트>는 4일 이정현 국립정신건강센터 과장과 ‘코로나 우울’에 대처하는 심리적 방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유선 통화로 진행했다.
▶코로나19로 발생하는 심리적 우울 상태의 개념과 증상이 궁금합니다.
“정부 보건복지부에서 ‘코로나 블루’를 사용하다가 ‘코로나 우울’로 바꿨습니다. 코로나 우울은 코로나19 감염 상황이 지속하면서, 사회활동 위축에 따른 스트레스가 증가로 일어납니다. 우울과 불안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현상인데요. 이런 우울감이 일상생활이나 대인관계나 학업 등에 영향을 줄 정도라고 하면, 코로나 우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산 이후로 우울감이나 우울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늘었나요?
“상담할 때 코로나19와 관련된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심해진 환자가 체감적으로 늘고 있어요.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두 달 동안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는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요. 이 기간에 일반인 우울 위험군이 1차에서 17.5%, 2차에서 18.6%로 조사됐습니다. 이 수치는 상당히 높은 거라고 볼 수 있는데요. 2018년 실시한 지역사회건강조사의 일반인 우울 위험군 3.79%보다 매우 높은 수준인 까닭입니다.”
▶기존에 우울증을 앓던 환자의 증상이 심해졌을 것 같기도 합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실직해 증세가 심해진 환자도 있고요. 학생이나 수험생 환자들은 시험이 연기돼 우울증이 재발한 사례도 있습니다. 주부 환자들은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데 예전과 다르게 화를 많이 내고 힘들다’고 하시죠. 예전에는 우울증 재발을 막기 위해 낮에 운동도 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했는데요. 코로나로 활동이 제약되면서 심리적으로도 어려워진 거죠.”
▶코로나 우울 환자를 어떻게 진단하시나요?
“코로나 우울이 정신의학적으로 진단 기준이 아직 없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코로나 우울이라고 진단하지는 않고요. 실제로 생각해보면 저희가 늘 굉장히 많은 스트레스와 싸워가고 있어요. 그 와중에 코로나라고 하는 강력한 상대가 나타난 거죠. 그렇기 때문에 임상에서 우울증 원인이 코로나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게 크게 중요하진 않습니다. 환자분이 현재 겪고 있는 복합적인 어려움에 대해서 진료하고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강력한 요소이긴 하지만, 코로나 우울이 심각한 정신질환은 아니라는 말인가요?
“맞습니다. 코로나 우울 자체가 위험한 정신질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전반적으로 코로나 때문에 우울하다, 이런 말을 많이 하세요. 하지만 대부분의 스트레스 증상들은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봐야 합니다. 코로나로 내가 힘들다, 예전보다 우울하다, 이런 반응들은 정상적인 반응이고, 상황이 좋아지면 회복이 됩니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초래할 정도면 문제가 되죠. 예를 들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준다든지, 학업이나 직장 생활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 우울이 상황에 따라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코로나 우울에 대처하는 심리적 방역 방법이 궁금합니다.
“우리는 감염병을 포함한 모든 재난 상황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끼게 돼요. 그래서 이런 스트레스를 풀어낼 희생양을 찾습니다. 혐오하거나 비난할 대상을 찾는 건데요. 일종의 마녀사냥이죠. 정신의학적으론 이걸 ‘혐오와 비난 반응’이라고 얘기합니다. 코로나19 1차 유행 당시 특정 지역이나 집단, 성향을 가진 집단을 희생양으로 찾았죠. 지금 2차 유행에선 특정 종교와 직업군을 혐오와 비난을 쏟아낼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요. 이 반응부터 멈춰야 합니다.”
▶‘혐오와 비난 반응’이 심리적 방역에 문제가 되는 이유가 뭔가요?
“‘혐오와 비난 반응’은 순간적인 안도감만 줄 뿐이지, 금방 더 큰 불안이나 공포를 뒤따르게 합니다. ‘나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 때문에 재난이 발생했다’ 이렇게 책임을 회피하거나 비난을 통해 잠시 안도할 수 있거든요. 우리 모두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렇게 반응하죠. 정신건강에 쓸 에너지를 계속 다른 희생양을 찾는 데 써버리는 겁니다. 정부나 언론, 그리고 국민들께서 타인에 대한 비난과 혐오를 지양하는 게 감염병 재난에서는 중요한 심리적 방역 방법입니다.”
▶요즘 어딜 가나 코로나19 재난 문자가 옵니다. 구마다, 지자체마다 실시간으로 방역 정보를 전달하는 건데... 이걸로 스트레스 받는다는 분들이 계신데요. 코로나19 정보, 어느 정도 흡수해야 할까요?
“정보를 접촉하는 양을 제한하고 줄이시는 게 심리적 방역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정말 그런 것들이 많이 본인에게 감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일시적으로 차단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진짜 문제는 보통 그런 문자를 받은 뒤에 다양한 SNS나 뉴스를 접속해서 추가 정보를 과다하게 흡수하는 건데요. 일부 자극적인 기사나, SNS에서 배포된 이야기를 들으면 한층 더 불안해집니다. 공식적인 정보 정도만 접촉하고, 그 이외는 덜 접촉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시는 게 좋습니다. 기사를 100번 본다고 해서 100가지 정보를 알게 되는 건 아니니까요.”
▶코로나19로 우리 삶의 반경이 많이 좁아졌습니다. 제한된 환경에서 코로나 우울을 극복할 활동을 추천하신다면.
“‘행동활성화요법’이란 게 있는데요. 네 가지 카테고리로 나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즐거운 활동 △생활 습관 등 자기 관리와 관련된 활동 △성취와 목표가 있는 활동 △신체 활동 등이죠. 구체적으론 영화 보기, 음식 먹기, 퍼즐 맞추기, 컬러링북,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기라든지, 매일 일정한 시간에 목욕하기, 새로운 외국어 배우기 등이 있습니다. 국가트라우마센터 홈페이지나 카카오 채널에 공개된 자료니까요. 자신의 상황에 따라 네 가지 카테고리 가운데 선택해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영화 보기에 포함될 것 같은데... 코로나19로 외출이 제한되면서 우리가 넷플릭스나 왓챠, IPTV 등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데요. 이런 활동이 코로나 우울 극복에 긍정적으로 작용할지요?
“적절한 수준에서는 대안적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을 찾는다는 점에서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이제 그런 것으로 위안을 받는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데요. 하지만 우리 뇌나 신체는 다양한 활동을 원합니다. 우리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몸을 안 쓰고 쉽게 할 수 있는 활동을 먼저 선택하는 경향이 있어요. 사실 디지털이나 미디어에 노출되는 건 뇌에 쉽게 자극을 주고 금방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쉬운 자극들이거든요. 이런 자극들의 특징은 중독성이 있다는 겁니다. 정신의학적으론 미디어나 디지털, 게임, 술 등 중독 문제가 코로나 상황에서 증가하는 걸 우려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재유행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활동이 있다면.
“미디어는 수동적인 자극이면 독서는 능동적인 자극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SNS를 켜거나 넷플릭스를 켜는 건 쉬운데, 책을 펴는 건 어렵죠. (웃음) 그것만 봐도 이런 자극들이 우리 뇌에 주는 전달 방법에 차이가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는데요. 미디어 소비와 함께 독서라든지, 글쓰기 등을 통해 균형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감염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대와 싸우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무력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겁니다.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걸 이해하셔야 대응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상하다고 하면, 점점 불안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어느 정도 스트레스 반응은 정상적이라는 걸 꼭 알려드리고 싶고요.
또 중요한 가치들을 공유하고 그것들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것도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노력이라고 하는 건 첫 번째는 방역지침을 따르려는 ‘책임감’이고요. 둘째는 의료진이나 방역업무 종사자들을 지속적으로 응원하고 믿어주는 ‘신뢰’입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로 고통을 받고 있는 분들에 대한 ‘포용’인데요. 책임감, 신뢰, 포용, 이런 이타적인 가치들을 생각하는 게 면역력도 증가하고 스트레스에서 회복할 때 분노나, 혐오 반응 대비 훨씬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이정현 국립정신건강센터 과장 약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화여자대학교 의학학사/서울대학교 의학박사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전임의
이화여자대학교 뇌융합과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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