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음이 훈장 아니듯, 늙음도 죄 아냐...세대 간 공유하고 배워야”
- “언어는 인격...노인 비하하는 청년 세대 보복 무서워 잘못 못 짚어줘”
- “누구누구 엄마로 산 지 수십 년...이제는 이름으로 불러줬으면 좋겠다”

바야흐로 벌레의 시대다. △급식충 △틀딱충 △맘충 △연금충 △한남충 △진지충 △지방충 △난민충 등 느닷없이 출몰하는 수많은 벌레(蟲)떼가 우리 삶을 좀먹고 있다. 최근에는 ‘오륙남’이나 ‘할매미’ 같은 변종도 등장한 형편이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말하는 사람에게 있어 말은 이미 형성된 사유를 번역하는 게 아니라 사유를 완성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에 앞서 생각도 없고, 말하는 동안에도 생각이 없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말은 사유를 완성하면서, 곧 사유 자체인 셈이다.

오스트리아 출생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에서 언어를 게임의 일종으로 봤다. 그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 안에서도 그 위계에 따라, 같은 낱말이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판의 졸(卒) 하나를 잃어버리면 옷의 단추 하나를 뚝 떼어 대신 사용하듯, 개별 낱말의 쓰임이 각 사회가 쓰는 언어게임판에 따라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층위의 삶을 긍정하면서도, 그 언어가 사용되는 규칙과 배경을 떠난 자아라는 개념은 허구라는 지적이다.

메를로-퐁티와 비트겐슈타인이 벌레가 들끓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모든 위계에 속하는 이들의 언어와 사유가 벌레로 가득 찬, 혐오 게임을 즐기는 매우 위험한 공동체”라고 진단하지 않았을까. 뉴스포스트는 이번 기획 기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비하표현’를 짚어보고 그 해결책을 찾아본다. -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해리, 이상진 기자] “언어는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해주잖아요? 말이란 상대방도 듣지만 본인도 듣습니다. 그 사람을 비하하는 건 곧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거예요. 상대방과 자신을 배려하는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 심은실(59)

서울 강남구 강남70+라운지의 보태니컬 아트 수업을 듣고 있는 어르신 . (사진=이별님 기자)
서울 강남구 강남70+라운지의 보태니컬 아트 수업을 듣고 있는 어르신 . (사진=이별님 기자)

뉴스포스트가 만난 5060세대들은 자신들의 세대를 비하하는 △틀딱충 △오륙남 △할매미 등의 표현에 대해 “편견이 담긴 언어를 사용하는 자체가 세대 간 갈등과 반목을 일으키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본지는 노년 세대를 지칭하는 편견언어에 대한 5060세대의 생각을 들어봤다. 모든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서면 또는 유선으로 진행했다.


“노년 비하하는 편견언어 들으면 분노 감정 든다”


5060세대는 노인을 혐오하는 표현을 들으면 ‘분노’의 감정이 든다고 토로했다. 그런 표현을 하는 일부 40대 이하 세대를 이해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심은실(59) 씨는 “일단은 분노가 생긴다. 일부의 잘못을 왜 전체의 모습으로 몰아가는 것인지, 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게 표현하는 젊은 세대도 나이가 들었을 때 지금보다 더 험한 말을 들을 수도 있다. 혐오 표현을 쓰기 전에 그때의 기분을 상상해보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청년들 행동도 다 옳지는 않다. 청년 세대 몇몇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다른 세대가 전체를 비하해 부른다고 생각하면 어떨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50대 이상 세대 대부분도 청년 세대를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있지만 비하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노인 혐오 표현을 듣고 난 뒤 분노의 감정이 든다고 고백한 5060세대. (사진=Pixabay)
노인 혐오 표현을 듣고 난 뒤 분노의 감정이 든다고 고백한 5060세대. (사진=Pixabay)

하헌숙(61) 씨는 “노년 세대에 대한 편견이나 혐오를 담은 단어를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대들의 젊음이 훈장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면서 “젊음이 훈장이 아니듯 늙음이 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청년 세대가 젊음이 상록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연숙(56) 씨는 “충효 전통의 나라에서 부끄러운 현실이라고 본다. 틀딱충 등의 편견을 담은 용어와 세대 간 대립 갈등 조장은 국민을 편 가르고 이간질하려는 정치·이념 세력의 농간이라고 본다. 한때 청년이었던 우리 세대가 부모님과 조부모님 세대를 그렇게 폄하하지 않고 존경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라면서 편견언어 사용을 정치권이 조장했다고 분노하기도 했다.
 


“언어는 곧 자신의 인격...품격 높이는 언어 사용해야”


5060세대는 언어는 자신의 인격이기 때문에 청년 세대에게 올바른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이들은 청년 세대에게 이런 말을 직접 건네기에는 “보복이 무서워서 하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김영규(59) 씨는 “노인 혐오 표현이 바른 기준이나 척도, 존경할 만한 어른을 찾아보기 힘든 우리 사회를 표상하는 것이라면, 5060세대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언어는 곧 스스로의 인격을 나타내기 때문에 청년들이 혐오가 아닌 품격을 높이는 바른 표현을 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이어 “예쁜 청년들이 느닷없이 격한 언어를 쓸 때 잘못된 언행을 짚어주고 싶지만, 어떤 보복이 올지 몰라서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철용(61) 씨는 “청년 세대들도 언젠가는 장년, 노년 세대가 되기 마련”이라면서 “청년 세대도 지금 바른 표현으로 어른을 공경할 줄 알아야 나중에 나이 들어서 존중받는다”고 했다. 이어 “SNS 댓글창에서 노인 혐오 표현을 많이 접했고, 다행히 실제로는 그런 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지만 듣더라도 망신당하기 싫어서 못 본 척, 못 들은 척 넘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노년 세대도 이름으로 불러주길...”


5060세대는 누구누구 엄마나 아빠가 아닌 이름으로 불러주기를 바랬다. (사진=Pixabay)
5060세대는 누구누구 엄마나 아빠가 아닌 이름으로 불러주기를 바랬다. (사진=Pixabay)

5060세대는 자신들을 이름으로 불러주기를 바랬다.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자신의 이름 대신 ‘누구누구 엄마’ 등으로 불리면서 산 세월이 긴 까닭이다. 최근 유행하는 꽃중년, 꽃할배 등의 표현은 낯간지럽다는 의견도 있었다.

심은실(59) 씨는 “누구 엄마, 누구 아빠, 그렇게 결혼하고 나서 이름을 잊고 산 세월이 수십 년이라, 최근엔 서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은실 씨 하는 게 가장 좋다. 사실 여자들의 경우는 특히 집에 있으면 누구누구 엄마로 불리는 게 일반적이어서 자기의 이름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미숙(56) 씨는 “이름으로 불러주는 게 가장 좋지만 아저씨나 아줌마, 할머니, 할아버지 등 친숙하게 부르는 것도 좋다”면서 “요즘 유행하는 꽃중년, 꽃할배 같은 표현은 조금 낯간지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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