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 시각 체험 ‘고글’ 끼니 유통기한 안 보여
- 보조손잡이 없이 침대·소파 이용에 진땀
- 체험자 서경복 씨 “느릿느릿 걷는 노인 이해하게 돼”
- 베이비부머 세대 고령화, 노년 정책과 노인 인식 변화 필요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지난 2017년 대한민국은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4%를 넘긴 것이다. 21세기가 막을 올린 지난 2000년 고령화사회를 맞은 지 불과 17년 만이었다. 고령화사회는 전체 인구의 7%가 65세 이상일 경우를 말한다.

그사이 우리 사회에서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불편’해졌다. 취업난을 겪는 청년층은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세대로, ‘낀 세대’인 장년층은 부양해야 할 대상으로 노인에 대해 부정적인 낙인을 찍었다.

노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러한 인식은 정당한 것일까. <뉴스포스트>는 실제 노인의 삶을 체험하기 위해 17일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에 위치한 ‘노인생애체험센터’를 찾았다. 취재진은 80대 노인의 신체 능력 수준으로 움직임을 제한하는 슈트를 입고 잠시나마 노인의 일상을 경험했다.

기자가 80대 노인의 신체 능력으로 움직임을 제한하는 슈트를 입고 세탁기에서 옷을 꺼내고 있다. (사진=홍여정 기자)
기자가 80대 노인의 신체 능력으로 움직임을 제한하는 슈트를 입고 세탁기에서 옷을 꺼내는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홍여정 기자)

▲걸어도, 앉아도, 누워도, ‘뭘 해도 숨차다’

취재진은 오전 10시쯤 노인생애체험센터에 도착했다. 함께 체험을 진행할 조원들 10명이 모두 모인 뒤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체험을 시작했다. 조원들은 대학생과 직장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시민들이었다. 연령층도 20대 초반부터 50대 후반까지 다양했다.

오리엔테이션 동안 기자를 포함한 조원들은 노인의 삶을 엿보는 드문 경험에 대한 기대감으로 수런거렸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뒤 80대 노인의 신체능력으로 활동을 제한하는 슈트를 지급받았다.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차례차례 장비를 착용했다. 안내자에 따르면 해당 슈트는 개별 300만 원 정도라고 했다.

팔목과 발목에 약 5kg 무게의 모래주머니를 두르는 것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릎관절과 팔꿈치 관절, 목과 몸통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장비를 착용하자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평소 안경을 착용해 가끔 콧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안경을 다시 손으로 추켜세우는데, 팔꿈치 관절이 잘 움직이지 않아 습관적인 동작마저 힘들었다.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다보려 해도 담이 걸린 마냥 목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 불편함은 쉬이 웃어넘길만한 가장 큰 고난이 있었으니, 80대 노인의 평균 시각을 재현했다는 ‘고글’이 그것이다.      

고글을 착용하고 보는 시야. (사진=홍여정 기자)
고글을 착용하고 보는 시야. (사진=홍여정 기자)

고글을 착용하면 시선이 가로 10cm, 세로 3cm 정도로 고정된다. 보이는 게 코딱지만 하니 걷는 순간마다 발밑을 살피지 않고는 못 배긴다. 좁은 시야 때문에 내 앞에 놓였을지 모를 장애물의 존재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기자를 포함한 10명의 조원들은 40여 분 동안 슈트를 입고 △신발 갈아 신기 △음료수 유통기한 확인하기 △빨래 개기 △욕실·화장실 이용 △잠자리·소파 이용 △계단 올라가기 등 다양한 활동을 체험했다.

체험 장소는 약 10평 규모의 공간이었는데, 체험을 위해 순서대로 이곳에 놓인 냉장고와 세탁기, 침대, 화장실, 계단까지 걷는 것만 해도 숨이 찼다. 몸에 꽉 끼는 슈트도 문제였지만, 시야 확보가 안 돼 걸음걸음마다 시선을 땅으로 내리꽂고 발바닥에 힘을 줘 나아가야 했다. 모래사장에서 걷는 느낌이었다.

실내에 들어가기 위해 실내화로 신을 갈아 신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척추에 쇠꼬챙이를 꽂은 듯 몸통을 빳빳하게 고정한 슈트 덕에 허리를 굽히는 게 불가능했다. 마침내 한 켤레. 실내화 하나 신는 데 입에서 쇳소리가 났다.

고글을 끼고 유통기한을 확인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사진=홍여정 기자)
고글을 끼고 유통기한을 확인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사진=홍여정 기자)

가장 충격적이었던 체험은 냉장고 문을 연 뒤 음료수의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활동이었다. 아무리 살펴도 유통기한이 보이지 않았다. 잘 보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숫자처럼 생긴 끄적임의 자취가 없었다. 하도 답답해 잠시 고글을 벗고 맨눈으로 확인하니 유통기한이 바로 보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고글은 시각도 제한하지만, 색을 구별하는 80대 노인의 망막도 재현했다고 했다.          

슈트를 입은 채 앉고 눕는 것은 쉽지 않았다. 보조 손잡이가 없으면 벌러덩 자빠져야 할 정도로 무게중심이 잡히지 않았다. 실제 80대 노인이라면 뼈가 약해 몸을 던져 침대에 드러눕거나 의자에 쓰러지듯 앉는 것은 위험하니, 생활하려면 필시 보조 손잡이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기자와 함께 노인의 생애를 체험한 서경복 씨(남, 52)는 “직장이 청량리역 인근이기 때문에 출퇴근길에 청과물 시장을 오가는 노인들을 자주 본다”며 “짐을 들어달라고 하면 들어줄 때도 있지만, 사실 가끔 느릿느릿 걷는 노인들이 답답할 때가 많았는데 오늘 체험을 해보니 어르신들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상생활도 힘든 노인 덮치는 빈곤·고독·질병·무위

흔히 노인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로 빈곤과 고독, 질병, 무위(無爲) 등 4가지를 꼽는다. 무위는 할 일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데, 노인 빈곤 문제를 야기한다. 빈곤은 경제적으로 살아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 고령자의 46.5%가 빈곤으로 고통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의 빈곤 문제는 노인들을 생계형 범죄로 내모는 요인이다.

빈곤에 더해 노인들은 외로움과 고독을 가장 두려워한다. 이들 문제가 집에서 홀로 사망해 수일, 또는 수개월 뒤 발견되는 고독사라는 사회적 문제와 결부된 까닭이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자가 혼자 사는 비율은 23%로, 18%인 일본보다 높다. 외로움은 노인들에게 우울증을 유발하는데, 우울증은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의 원인이 된다.

우리나라는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가 본격적으로 고령화되는 시기를 맞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역이지만, 자녀 양육 등으로 자신의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세대다. △장기요양급여 개편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확충 △사회적 주체로서의 노인에 대한 인식 변화 등 노년 정책과 노인 인식에 대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자료

박채리 외, <노인에 대한 낙인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 연령집단별 비교>, 노인복지연구 제73권 1호, 한국노인복지학회, 2018.
최승호, <고령화와 노년의 사회문제>, 충북 Issue & Trend(31), pp.39-4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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