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단적 선택은 복합적인 원인...함부로 비난 말아야
- 항상 낮은 강남 3구 자살률, 경제적 원인 있다
- 취업으로 고민하는 청년 환자 볼 때 가장 아쉬워
- 유가족 존중하는 언론 보도, 베르테르 효과 줄인다

2017년 통계청 생명표는 우리나라에서 2017년에 태어난 출생아가 평균 82.7세까지 살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OECD 평균보다 여자는 2.4년, 남자는 1.7년이 더 높았다.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둔 ‘기대수명 선진국’인 것이다.

특히 통계청은 암과 뇌혈관, 심장질환만 제거해도 기대수명이 6.8년 이상 증가할 것으로 봤다. 각종 질환은 수명에 더해 삶의 질과도 관련된 중요한 사안. 이에 본지는 100세 시대 도정을 위협하는 질병을 예방하고, 우리의 건강한 삶을 좀먹는 질환의 치료법을 알려주는 <백세건강> 시리즈를 기획했다. - 편집자 주

전진용 과장은 충고는 극단적 선택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전진용 과장은 충고는 극단적 선택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극단적 선택의 징후가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혼자 두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데요. 술에 취해있다면 특히 위험할 수 있어요. 술을 마신다고 스스로 목숨은 끊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극단적 선택으로 응급실에 오는 분들을 보면 술에 취한 경우가 많아요. 평소 우울감이 있는 분들이 술 때문에 충동적으로 된 거죠. 대화할 때는 ‘좋아질 거야’, ‘다 지나갈 거야’, ‘힘내’, ‘왜 죽을 각오로 살지 못하니’ 등등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사람의 상황을 가볍게 보는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가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을 두고 ‘정신력이 약하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제 환자 중에 목을 맸는데 살았어요. 막상 자살시도를 하니까 정말 살고 싶었다고 해요. 그런데 끈이 도저히 안 풀렸다는 거예요. 다행히도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끈을 풀었죠. 사실 죽는 게 얼마나 두렵겠어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에게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어요. 사회경제적인 배경이나, 유전, 성향, 충격적인 사건, 우울증 등 바로 그 시점에, 그 사람이, 그렇게 하도록 종용하는 복합적 이유가 있는 거죠. 그 상황에 놓인 심정은 개인만 아는 것이고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인데 ‘정신력이 약하다’고 비난해버리면 자살시도 확률이 더 높아지죠.”

▶분양 아파트보다 임대 아파트의 자살률이 2배 이상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어요. 소득에 따라 자살률에 차이가 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한 씁쓸한 연구결과인데요.
“서울시 자살 통계를 보면 흔히 강남 3구라 부르는 서초구와 강남구, 송파구의 자살률은 다른 구에 비해 항상 낮은 편이에요. 서초구는 가장 낮고요. 정신과 의사들이 금천구나 강북구, 관악구처럼 자살률이 높은 곳에서 일하면 열심히 해도 티가 안 난다고 해요. 그런데 강남 3구에서 일하면 보건소에서 놀고만 있어도 자살률이 올라가지 않는다고들 하죠. 분명히 경제 수준에 따른 영향이 있습니다.”

▶성별에 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율이 다르기도 하나요?
“성별로 말하자면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2~3배 이상 높아요. 10대부터 40대까지는 남성 자살률이 2배 정도 높고, 50대부터는 3배 이상 높죠. 자살시도는 여성이 더 많이 하는데요. 남성은 극단적 선택을 할 때 돌이킬 수 없는 센 방법들을 사용해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또 여성은 자살시도를 한 다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성은 그런 경우가 적죠.”

▶세대별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청소년과 청년은 입시 스트레스와 스펙 경쟁, 취업난이 크고요. 최근에는 학교폭력과 집단 따돌림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중장년층은 조기 퇴직과 경제적 문제, 노인은 빈곤과 질병, 고독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이런 부분들은 정신과 의사로서 우울증을 진료해서 일정 부분 역할은 하겠지만, 사회경제적 문제가 자살률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들을 보면서 아쉬운 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마음의 병을 고쳐서 당장 극단적 선택을 막는다고 해도 근본적인 사회문제가 그대로예요. 청년층 환자 한 명은 취업난 때문에 편의점에서 계속 일하면서 생활을 해요. 그러면서 가족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거예요. 자존감도 낮아지고 대인관계 능력도 떨어지고요. 그렇게 해서 저를 찾아온 건데. (한숨) 제가 할 수 있는 건 엄청 제한적이잖아요. 상담하고 약 처방하는 건 해줄 수 있지만, 취업알선을 해줄 수도 없고 취업문을 넓혀줄 수도 없고요. 그런 게 상당히 안타깝죠.”

▶청소년은 자아 형성 단계여서 불안과 스트레스에 쉽게 노출될 것 같은데요. 이들의 스트레스를 줄일 방법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인데요. 청소년들은 정말 돌파구가 없는 것 같아요. 최근 청소년들의 자해가 크게 늘었습니다. 자살과 자해는 다른데요. 자살은 정말로 생명을 끊으려는 것이고 자해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거예요. ‘나 여기 있어’, ‘내 말 좀 들어줘’라고 주변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죠. 이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걸 막기 위해선 학교에서 자살 예방 프로그램 등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청소년들의 참여를 독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년층은 고독·질병·빈곤·무위 등에 노출돼 있습니다. 자살률도 가장 높은 세대인데요. 해결책이 있을지요.
“대표적으로 보건소나 일반 내과에 진료를 보러 온 노인의 정신건강을 살펴서 정신과로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마음먹은 노인들은 대부분 뚜렷한 병명 없이 여기저기 몸살처럼 아프거든요. 그래서 내과나 가정의학과를 방문해요. 그럼 내과나 가정의학과에서 정신과로 연결해주는 거죠. 이런 프로그램들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겠죠.”

극단적 선택을 보도하는 언론과 미디어의 책임 있는 자세가 베르테르 효과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하는 전진용 과장. (사진=이상진 기자)
극단적 선택을 보도하는 언론과 미디어의 책임 있는 자세가 베르테르 효과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하는 전진용 과장. (사진=이상진 기자)

▶언론 보도 관련해 여쭤볼게요. 극단적 선택에 대한 언론과 미디어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신다면.
“얼마 전 자살을 다뤘던 언론의 행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죠.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 이후 비공식 장례식을 한다는 유가족의 뜻에도 불구하고 한 언론에서 장례식장 위치를 보도했어요. 유가족을 생각하지 않는 보도는 당연히 지탄받아 마땅하고요. 또 구체적인 자살 방법을 밝히는 보도도 지양해야 합니다. 그런 표현은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을 충동적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베르테르 효과도 있고요.”

▶베르테르 효과가 실제로 자살률에 영향을 주나요?
“베르테르 효과는 아시다시피 괴테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했죠. 주인공 베르테르는 실연의 상처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데요. 오늘날에는 심리학적으로 유명인이나 존경하는 인물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 따라서 같은 선택을 하는 현상을 말하게 됐습니다. 2004년 홍콩 배우 故 장국영 님의 극단적 선택 이후 홍콩에서 6명이 같은 방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008년 10월 배우 故 최진실 님과 2005년 2월 배우 故 이은주 님의 극단적 선택 이후 자살률이 평년보다 500~1000명 정도가 증가했어요. 상당히 높은 수치죠. 그래서 극단적 선택을 보도하는 언론과 미디어의 책임의식이 중요합니다.”

▶끝으로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극단적 선택은 우리가 막으려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정신 상태가 이상한 것’이라거나 ‘나약하기 때문’이라고 낙인찍는 건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우리 주변에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늘 있을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징후나 신호가 있을 때 비난이나 평가가 아니라,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으면 합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전진용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지원과 과장 진료분야·약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톨릭관동대학교 의학 학사, 박사 수료/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전임의/통일부 하나원 /국제이주기구(IOM) 컨설턴트/광진구 정신건강증진센터장/통일마음(북한이탈주민) 클리닉/불안장애/외상후스트레스장애/우울장애 통일정신의학(북한이탈주민)/사회문화정신의학(다문화, 난민 및 이주민)


※ 참고문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신경정신의학>, 서울:아이엠이즈컴퍼니, 2017.

보건복지부·중앙자살예방센터, <2019년 자살예방백서>, 2019.

김영욱 외, <고층아파트의 저층과 고층의 자살률 비교 연구>, 대한건축학회 논문집-계획계 35(8), pp.57-64, 2019.

전민, <청소년의 스트레스가 자살사고에 미치는 영향 : 자기자비의 조절효과>, 아주대학교 대학원, 2012.

김인숙, <연예인 자살보도와 제 3자 효과 : 언론의 연예인 자살보도에 대한 태도, 미디어 이용, 미디어 규제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언론과학연구 제9권3호, pp.5-3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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